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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다시 키우면 종이접기 시킬것" 양자정보과학자의 공부법 [오밥뉴스]

중앙일보

입력 2021.09.27 06:00

업데이트 2021.09.2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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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밥상머리 뉴스, 오밥뉴스에서 준비한 『미래부모를 말하다』시리즈 마지막 인터뷰 주인공은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김재완(63) 교수입니다. 고등과학원 부원장이자, 양자정보과학 분야 권위자인 김 교수가 대한민국 부모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실까요.

지난 3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고등과학원. 긴 복도를 지나 연구실 문을 열자 10대는 족히 되어 보이는 모니터와 각종 책더미와 벽을 가린 커다란 화이트보드가 한눈에 들어왔다. 딱 한 사람이 몸을 움직여 모니터 사이를 지날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그의 연구실에 철제 의자를 하나 가져다 두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양자(量子·quantum)의 세계부터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인터뷰는 4시간 가까이 종횡무진 이어졌다.

신문 기사 하나가 바꾼 그의 인생

김재완 교수가 지난 3일 연구실에서 양자물리학을 설명하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전통놀이인 윷놀이에 빗대 비트를 설명했다. 임현동 기자

김재완 교수가 지난 3일 연구실에서 양자물리학을 설명하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전통놀이인 윷놀이에 빗대 비트를 설명했다. 임현동 기자

더는 쪼개지 못하는 물리량의 최소 단위인 ‘양자’를 연구하게 된 건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저는 어릴 때부터 천주교 신자였거든요. 학교에서 국민윤리 시간에 철학을 배우잖아요. 근데 선생님이 이러시더라고요. ‘인간이 태어나면 어디로 갈지, 지옥인지 천국인지 천지창조 때 모두 정해져 있다’라고요.”

선생님의 말 한 마디는 소년 김재완을 흔들어놨다. 충격이었다.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나는 살아서 뭐하나’ 싶었다. 성당으로 뛰어가 신부님을 만났다. “신부님, 정말 모든 것이 다 정해져 있는 겁니까? 하느님의 절대 의지로 정말 모든 사람의 운명이 정해져 있어요?” 얼굴이 벌게진 그에게 신부가 말했다. “아니다. 하느님은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줬다.” 그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1976년 12월16일 중앙일보 4면에 실린 기사. 그의 연구실 화이트보드엔 이 기사가 붙어있다. 중앙포토

1976년 12월16일 중앙일보 4면에 실린 기사. 그의 연구실 화이트보드엔 이 기사가 붙어있다. 중앙포토

왜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했던 그때. 대입에선 논술이 중요하니 입시를 위해서 신문을 읽으라던 선생님 말씀에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1976년 12월 16일 자 중앙일보 4면. ‘양자 역학 50돌…뉴턴 역학 뒤엎다’는 제목의 기사였다. “학교에서 양자물리학을 조금 배우는데, 그때 불확정성 원리를 듣게 됐어요. 똑같은 조건에서 총을 쏜다고 생각해보세요. 뉴턴의 고전역학에 따르면 똑같은 자리에 총알이 박혀야 해요. 운명론처럼요. 근데, 양자물리학은 그게 아니라는 거에요. 똑같은 조건에서도 다른 데 맞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게 인간의 ‘자유의지’랑 연관이 있잖아요.” 그는 그 길로 서울대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김 교수는 인생길을 바꾼 그 신문기사를 연구실에 붙여놓고 산다.

60대 과학자가 말하는 양자의 세계

그는 양자정보과학 1세대로 자신은 “누리고 산 편”이라고 했다.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양자 연구를 하다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으로 옮겨가 양자암호 실험을 했다.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정부 부처 사무관이었다. “부처 통폐합으로 예산을 조정해야겠는데요?” 이후 정부 예산이 삭감되면서 아예 양자암호 연구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2000년대 후반 그렇게 정부 지원의 양자암호 연구는 정지 상태가 됐다. 이후 양자정보과학이 첨단기술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그는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됐다. “첨단 기술 쪽에 있으면 벌거숭이 임금님 생각이 나요.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해서 속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 정도거든요.” 양자정보과학의 세계가 1900년대에 싹을 틔운 만큼 미지의 분야로 존재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김재완 교수는 언어학에도 관심이 깊다. 한글을 외국인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고안한 방법으로 양자암호를 발명한 IBM의 찰스 베넷 박사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이 한장의 교본(?)으로 5개 한글 발음을 가르쳤는데, 찰스 베넷 박사는 15분을 배운 뒤 이 종이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두번째 방문 때는 간판을 읽고, 세번째 방문때는 한글을 썼다. 임현동 기자

김재완 교수는 언어학에도 관심이 깊다. 한글을 외국인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고안한 방법으로 양자암호를 발명한 IBM의 찰스 베넷 박사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이 한장의 교본(?)으로 5개 한글 발음을 가르쳤는데, 찰스 베넷 박사는 15분을 배운 뒤 이 종이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두번째 방문 때는 간판을 읽고, 세번째 방문때는 한글을 썼다. 임현동 기자

그는 “우리 주변의 것들엔 양자물리학이 있다”고 했다. 예컨대 눈으로 보는 것도 양자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빛 알갱이가 인간의 망막을 거치면서 분자 구조가 변해 신경세포를 때린다. 광합성, 플라스틱을 합성하는 것, 정보통신과 반도체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양자물리학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암호 화폐도 양자컴퓨터가 나오면 풀리게 될 것이라는 설명도 보탰다. 기존 컴퓨터로 풀 수 없었던 불가능한 문제를 풀고, 영화 ‘어벤저스’에 나온 시간 이동 역시 양자 텔레포테이션으로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다시 아이 키운다면 종이접기시킵니다”

어느 날, 그의 연구실에 유명세를 탄 한 천재 소년이 찾아왔다. 양자컴퓨터에 관심이 있다며 소년이 보여준 건 자신의 노트 PC.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양자물리학의 얽힘 현상을 연구했다는 것이었다. 시뮬레이션을 보고, 마주 앉아 대화를 해보니 아쉬움이 밀려왔다. 천재 소년은 시뮬레이션을 만들 수는 있었지만 정작 물리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일을 회상하며 “양자물리학은 자연현상에 관한 것으로 자연에 관한 일상 경험이 필요하다”고 했다.

양자정보과학 국내 1세대로 꼽히는 권위자 김재완 교수의 연구실은 두 사람이 들어서면 비좁게 느낄 정도로 책과 자료, 컴퓨터로 가득차 있다. 임현동 기자

양자정보과학 국내 1세대로 꼽히는 권위자 김재완 교수의 연구실은 두 사람이 들어서면 비좁게 느낄 정도로 책과 자료, 컴퓨터로 가득차 있다. 임현동 기자

천재 소년 이야기에 이어 요즘 교육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놨다. 아이들이 어지르고 놀 만한 공간과 시간이 부족하단 것이다. 이야기는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갔다.

“집이 시장통 근처에 있었어요. 용접하는 것도 구경하고, 기계 파는 것도 구경하고요. 중산층이었는데 집에 광이 있었어요. 거기에 온갖 것들이 다 있잖아요. 톱도 있고 망치도 있고. 나뭇조각을 주워다가 배도 만들고 했거든요. 근데 요즘 아이들은 그걸 못해보고 크는 게 너무 아쉬워요.” 아파트 생활을 포기하고 광이 있는 곳을 가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경험이 없는 추상적인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아이들에게도 부모세대가 ‘광’에서 했던 많은 일상의 경험, 자연에 대한 경험이 있어야 앞으로 진짜 천재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아이를 다시 키운다면 종이접기를 시키겠다”고도 했다. 종이접기는 아이들의 놀이로 보이겠지만 그 속에 수학적인 것들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종이학을 접으려고 해도 잘못 접으면 공이 될 수 있는데, 그 속에 알고리듬이 있다는 얘기다. 그는 “너무 복잡한 종이접기는 시간 낭비지만, 종이접기를 통해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경험을 시켜줄 수 있다”며 웃었다.

‘자유의지’ 가르쳐주세요

"수학엔 천재가 있을 수 있어도 물리학엔 천재가 나기 어렵다"고 말하는 김재완 교수. "물리학은 자연을 경험하고 일상에서 이해를 해야 폭을 넓힐 수 있는 학문이기 때문"이라며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켜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현동 기자

"수학엔 천재가 있을 수 있어도 물리학엔 천재가 나기 어렵다"고 말하는 김재완 교수. "물리학은 자연을 경험하고 일상에서 이해를 해야 폭을 넓힐 수 있는 학문이기 때문"이라며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켜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현동 기자

그는 어른 세대가 양자물리학적인 세계관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운명론이나 결정론이 아닌, 자신의 의지만으로도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부모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줘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자신의 딸의 고등학교 졸업식 때 기억을 꺼냈다.

“졸업식 연사로 외부인이 연단에 섰어요. 그런데 ‘학생 여러분 정말 미안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살아야 하는 세상을 정말 완벽한 세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하는 거예요. 기절초풍했어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세상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어려움이 많은 겁니다. 그렇지만 씩씩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해야지, ‘미안합니다’ 해버리면 안 되는 것이거든요. 양자물리학적인 세계관으로 보면, 세상은 아직 상태가 정해져 있지 않은 거잖아요. 그렇기에 뭐든지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비유적으로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날이 저물고 캄캄한 밤이 돼서야 끝난 인터뷰 말미에 그가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들께 하고픈 말이 있어요. 아이들과 꼭 같이 시간을 보내라고요. 저도 딱 한 번 아이 셋을 데리고 미국에 홀로 한 학기를 있었던 적이 있거든요. 평생에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을 가르쳐보려고도 했지만, 이후론 시간이 너무 없었어요. 요즘 아이들 정말 바쁘잖아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학교, 학원, 컴퓨터가 시간을 다 뺏어가요.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꼭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김재완 교수가 말하는 '공부'
나이에 맞는 공부를 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학생 땐 교과서를 읽어보고, 중요한 개념은 책 위에 느끼거나 깨달은 걸 썼어요. 시험치기 전에는 책 앞에 순서부터 다시 훑어봤죠. 그때도 수학 정석이 있었는데, 다 못풀어봤어요. 근데 요즘 아이들이 공부하는 걸 보면 안타까워요. 너무 힘을 빼고 있거든요. 수학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조차, 힘빼는 공부를 하라고 해요. 산업구조는 과학기술로 먹고 살도록 되어 있는데, 잘 할 수 있는 아이들도 입시 때문에 지치거든요. 여러 난이도를 갖고, 어떤 것을 하는 것이 장래에 도움이 되는지를 선택하게 해야 해요.

정사각형인데, 가로와 세로가 각각 1㎝인 경우 빗변 길이는 얼마냐고 묻는 문제는 대입수학능력시험에서 안나오잖아요. 하지만 중요한 지식 중 하나거든요. 올림피아드라면 모를까, 가장 필요한 지식을 테스트해야 하는 시험인데도 이 세상에서 한 번도 안나왔던 문제로만 나오는 건 문제가 있어요.

김재완 교수는 물리학은 자연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김재완 교수는 물리학은 자연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옛 이야기지만 초등학생 때 뺨을 수십대 맞은 적이 있어요. 수학 문제를 선생님이 냈는데, 사거리에서 건물의 방향을 묻는 문제였거든요. 저는 북동쪽이라고 답했는데, 선생님은 동쪽이라는 겁니다. 동쪽 길에 붙어있는 거라고요. 그게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가 수십대를 맞았어요. 또 중학교 때 그래프를 공부하는데, 모눈종이에 그려보니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선생님께 “제곱으로 했더니 차이가 1,3,5,7,9로 가는데요!”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무시하시더라고요. 그럴 때 선생님께서 ‘아, 맞아’ 이렇게 해주셨더라면 아이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을텐데도요. 학교엔 아이와 토론할 수 있는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1918~1988)도 ‘간단한 물리 개념도 쉽게 설명해야 한다’고 했어요. 우리가 어떤 현상을 대학교 1~2학년에게 설명하지 못하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거든요. 결국,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알고 있는 것과 비교해서 아는 것인데요, 주변 지식에 빗대서 알고, 비유를 통해 알아야 해요. 그래서 아이들이 자연현상에 대해 익히고 손으로 해보는 것이 중요해요. 그게 진짜 공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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