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날 야산서 공공근로 중 심근경색 사망…대법 "업무상 재해"

중앙일보

입력 2021.09.27 06:00

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심혈관계 질환이 있던 남성이 추운 날씨에 야산에서 작업하던 중 쓰러져 사망했다면 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있을까. 2심 법원은 “업무상 재해는 아니다”라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이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은 남성이 평소 심장 질환을 잘 관리해오고 있었고, 사고 당일 업무뿐 아니라 그 이전에 수행한 작업이 심혈관계에 부담을 줬을 가능성도 고려해야한다고 판결했다.

야산 작업중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근로자

30년간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다 2014년 전역한 A씨는 이후 공공근로사업을 다니며 일용직으로 일했다. 2017년 3월 사고 당일 A씨에게 주어진 업무는 무릎 아래 높이의 소나무에 구멍을 뚫어 약제를 주입하는 일이었다.

강원도 철원의 한 야산에서 10kg가량의 천공기를 등에 멘 채 몸을 숙였다 폈다를 반복하며 나무에 구멍을 내던 A씨는 4시간가량의 오전 작업을 마치고 식사를 한 뒤 다시 야산으로 복귀하는 길에 쓰러졌다. 약 열흘쯤 뒤 사망한 A씨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A씨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업재해를 인정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1심은 산재→항소심은 "기존 질환 탓" 산재 취소

법원의 판단은 심급마다 달라졌다. 1심 법원은 A씨의 산업재해를 인정했지만 항소심은 산재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를 취소됐다.

2심은 A씨가 이전에 당뇨병과 고혈압, 협심증, 심부전 등의 기존 질환을 진단받고 치료받아온 점을 지적했다. 산업재해로 인정되려면 업무와 질병 사이 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하는데 A씨가 앓던 기존 질환이 공공근로사업으로 갑자기 악화해 사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반면 대법원은 A씨가 기존 질환을 갖고 있던 것은 맞지만, 병을 잘 관리해오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A씨의 의료진은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초창기 진단 때보다 호전된 상태로 고혈압이나 협심증이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었다”고 했다. 의료진은 “기존 질환이 악화하는데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 한랭기온 등이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사건 당일 업무뿐 아니라 이전 작업도 고려

추운 날씨에 실외에서 지속적인 업무를 해온 점도 고려됐다. A씨 사고 당일 및 직전 며칠은 꽃샘추위가 찾아온 기간이었다. 사고 전 사흘간은 일 최저기온이 영하 5.6도에서 영하 9.4도였는데 A씨는 강가에서 낫으로 잡목을 제거하는 일을 하루 8시간씩 했다. 사고 당일은 최저기온이 영하 6도 정도였다.

대법원 판례는 여러 개의 사업장을 옮겨 다니며 일하던 근로자가 작업 중에 사망한 경우 각 사업장이 모두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 대상이라면 사고 당시 업무뿐 아니라 그 이전의 업무도 산재 여부 판단의 자료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A씨의 경우 사고 당일 산에서 했던 업무뿐 아니라 며칠간 강가에서 한 작업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결국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심혈관질환을 갖고 있던 A씨는 평소에는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했는데 추운 날씨에 실외에서 과도한 업무를 하다 기존 질환이 자연 진행 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해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며 항소심 판결을 파기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