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 고발 사주 의혹의 제보자인 조성은(33)씨가 지난 4월 정보통신(IT) 벤처기업 A사와 “정책자금 등 200억원을 유치해올 테니 성과금으로 유치금의 7%를 달라”는 내용의 계약서를 쓰고 임원에 취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A사가 리스를 받아 조씨에게 제공한 마세라티 차량 역시 정책자금 유치 활동을 위한 인센티브 계약조건에 포함된 내용이었다.
이 같은 임원 계약을 놓고 법조계에선 “나랏돈 유치를 조건으로 불법 브로커 활동을 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A사 측은 별도로 “조씨가 실제론 한 푼도 유치하지 않은 채 법인리스 차량만 받아가 사기를 친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성은 계약서 3건 보니…조씨 “지분 20%에 마세라티도 달라”
26일 중앙일보가 조씨 측이 A사 측과 맺은 계약서 3건 등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지난 4월 5일 조씨 소유의 올마이티컴퍼니는 A사와 “투자를 유치해주는 대가로 그 금액의 7%를 보수로 받는다”라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조씨가 끌어오기로 약속한 금액은 200억원가량이었다. 같은 날 맺은 ‘주식 증여 계약서’에 따르면 조씨는 A사에 “100억~200억원 이상을 유치해오고 기업 가치를 500억~1000억원 규모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면 A사는 조씨 측에게 A사의 주식 20%를 넘기기로 했다.
A사는 2020년 말 현재 자산이 3억 1000만원(자본 1억 3700만원, 부채 1억 7400만원)에 불과하고 2020년도 매출이 8억 4700만원(영업이익 5억 900만원)에 그친 소규모 업체다. 발행주식 총수는 20만주이고 1주당 액면가액은 500원이다.
이런 A사에 조씨는 구체적으로 “정책자금 등을 유치해오겠다”는 취지로 계약했다. 조씨에 대한 A사의 ‘임원 위촉 계약서’를 보면 “1차 정책자금 유치 직후 계약금 3000만원을 인센티브와 함께 지급한다”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 정책자금이란 정부 부처(산하기관 포함) 등이 예산이나 공공기금 등을 재원으로 삼아 시장보다 낮은 금리로 기업에 대출하거나 투자하는 돈이다.
해당 계약서에는 ‘조씨가 요청하는 차종의 법인리스 차량 제공(월납 150만~160만원 전후)’이라는 조항도 들어 있다. 이를 근거로 조씨는 A사 명의로 고급 외제차인 마세라티 기블리 리스로 제공 받아 타고 다니는 중이다. 조씨와 A사의 계약기간은 2024년 4월 4일까지 3년간, 조씨의 A사 내 직책명은 CSO(총괄전략디렉터)였다.
조씨가 정책자금 등을 유치하기 위해 주요 타깃으로 삼은 정부부처는 중소벤처기업부로 보인다. 지난 4월 8일 A사가 조씨와 별도로 김종구 전 국민의당 대변인을 대표이사로 영입하며 체결한 임원 위촉 계약서에는 주요 업무 사항으로 “(중기벤처부 산하의) 중소기업진흥공단, 기술보증기금 등 각 기관들의 업무를 위하여 요청하는 업무내용을 원활하게 협력한다”라는 문구가 있다. 김 전 대변인과 조씨는 올해 4월 8일 동시에 A사에 취업했고 현재까지 A사의 등기 임원은 이들 두 명뿐이다.
최근 조씨는 “김 전 대변인이 A사의 자금 유치를 위해 박지원 국정원장이나 박영선 전 중기벤처부 장관에게 이야기해보라고 했지만, 거절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법조계 “알선수재 혹은 변호사법 위반 가능성”
법조계에서는 “조씨가 불법 브로커 행위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검찰 출신인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계약 내용이 사실이고 조씨가 계약을 이행하려고 했다면 계약 자체만으로도 조씨는 알선수재 혹은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적용 받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라고 밝혔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3조에 따르면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하여 금품이나 이익을 수수·요구·약속하면 안 된다. 또 변호사법 111조 1항 역시 공무원이 취급하는 사무에 관하여 청탁 또는 알선을 한다는 명목으로 금품·향응, 그 밖의 이익을 받거나 받을 것을 약속하는 걸 금지하고 있다.
법무법인 차원의 박성룡 변호사는 “알선수재 등 위법 소지가 상당해 보인다”라면서도 “다만 계약서만 보고는 어느 기관을 타깃으로 하는지, 어떻게 투자 유치를 하겠다는 건지 분명하지 않아 위법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반면 A사의 최대주주인 이모씨는 “조씨와 김 전 대변인이 사기를 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씨는 중앙일보에 “조씨 등이 10원짜리 하나 유치해오지 못한 채 법인 리스 차량을 반환하지도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10월 5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조씨를 등기이사에서 해임한 뒤 마세라티를 되찾아오겠다는 계획이다. 조씨를 별도로 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할지도 검토 중이다. 김 전 대변인은 사의를 밝힌 상태다.
이씨는 또 “이런 식의 피해를 본 기업이 우리 말고 여러 곳 더 있는 것으로 안다”며 “조씨가 계약 전에 ‘다른 여러 기업들에 비슷한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라고 밝혔다.
조성은 “합법적 컨설팅…대주주 횡령 등으로 유치 못해”
조씨는 중앙일보와 수차례 전화통화·문자메시지에서 우선 “정책자금 등 유치 업무를 한 건 A사가 처음이다”라고 밝혔다. 다만 “회사들의 디벨롭먼트(development·성장) 분야에서 많이 일을 하긴 했다”고 밝혔다.
A사와 맺은 계약의 성질을 두고선 “합법적으로 정책자금을 신청하는 등의 절차를 설명해주는 식의 컨설팅 계약이었다”라고 설명했다. A사 최대주주 이씨 등과 갈등을 겪는 배경에 대해선 “취업 직후 회사 사정을 살펴 봤더니 횡령과 탈세 정황을 발견해 문제를 제기했고 자금 유치 등의 업무를 시작할 수 없었다”라며 “이씨가 부당하게 나가라고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대주주 이씨는 “헛소리”라는 입장이다.
조씨는 마세라티 차량을 회사에 반납하지 않는 이유와 관련해 “지금 리스 계약을 해지하면 대표이사인 김 전 대변인이 위약금을 다 물어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또 “A사는 명의만 제공했을 뿐 차량 유지 비용은 모두 내 돈으로 대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변인은 수차례에 걸친 중앙일보의 인터뷰 요청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업계 일각에선 “조씨가 정책자금 브로커 일을 해오다 최근 고발 사주 의혹을 제기하면서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자 A사 투자 유치에도 차질이 벌어졌고 결국 A사와 분쟁이 벌어진 게 아니냐”라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