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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1미터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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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대단히 교육받지 않은 사람들도 1미터가 얼마나 긴지는 안다. 자기의 키가 몇 센티미터(cm, 1미터의 100분의 1)인지, 자기가 100미터를 몇 초에 뛸 수 있는지도 알 것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1킬로미터가 1천미터라는 것도 안다. 이렇게 우리 생활에 속속들이 박혀 있는 것이 미터이며, 또 그 이외에도 리터, 그램 등 여러가지 측정 단위를 규정해 놓은 것을 미터법이라 한다.

생각없이 상용하고 있는 이 미터법이 한국에 정착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우리 정부에서 미터법을 전면 실시한 것은 1964년이었다. 그 후에도 다년간 고기는 그램이 아니라 근으로, 곡식은 말이나 되로 흔히 판매되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런 전통적 단위는 거의 모를 것이다. 길이의 단위 ‘척’, 또 그 10분의 1인 ‘치’도 이제 거의 사용되지 않고, ‘삼척동자’라든지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다’는 등의 표현에만 숨어 있다.

우리 생활에 깊이 파고 든 미터법
미터법은 프랑스 혁명의 유산
전통적 권위를 거부한 자연주의
진정한 세계적 교류의 밑받침

미터법은 18세기말에 일어났던 프랑스 혁명의 산물이다. 모든 구태의연한 것을 배격하고 새로운 사회를 창출하자는 꿈에 가득 찬 그 혁명가들은 정치체제를 새로 만들어낼 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모든 면을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개혁하고자 하였다. 그 일환으로 모든 것을 측정하는 법을 새로 만들어 낸 것이다. 전통적 측정법은 기준이 제멋대로였고, 또 각 나라마다 달랐다. 프랑스의 전통적 단위는 생소하겠지만 영국 것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길이의 단위인 피트(feet)는 발이라는 foot의 복수형이다. 그런데 누구 발을 얘기한 것일까? 그것을 또 계산하기 힘들게 12개로 나눈 것을 인치(inch)라 한다. 미터법에서는 같은 개념을 다루는 다른 단위간의 관계를 전부 십진법으로 계산하기 편하게 정했다.

그런데 1미터라는 기본 단위의 실제 크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여기에 프랑스 혁명가들의 놀라운 자연주의가 들어 있다. 그들은 임의적으로 정해졌던 전통적 단위의 권위를 배척하고, 새로 만드는 단위의 근거를 자연에서 찾고자 한 것이다. 복잡한 토의를 거쳐 결국 채택된 안은 지구의 둘레를 측정해서 거기에 기반하여 1미터의 길이를 정하자는 것이었다.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최고의 측량사들을 동원하여 지구의 둘레를 애써 측정하였고, 그때 기술로는 아주 대단한 사업이었다. 1미터는 지구 둘레를 4분의 1로 나눈 후, 그 거리의 1천만분의 1로 정의하였다. 즉, 북극에서 적도까지 지구 표면을 따라 바로 가는 거리를 1천만 미터, 즉 1만 킬로미터로 정한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1천만분의 1로 했을까? 그것은 1미터라는 길이가 사람의 크기와 대략 비슷하도록 정해서 인간들에게 최대한 유용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자연주의와 인본주의의 기가 막힌 조화이며, 우주의 객관성과 인간의 주관성을 겸비한 조치였다. 프랑스 혁명가들은 사회제도를 개선하면서 인각과 자연관의 관계를 그렇게 근본적으로 재고했던 것이다.

미터를 정한 후에 무게의 단위도 거기에 기반하여 고안했다. 1킬로그램을 1리터 부피의 물의 무게로 정했다(1리터는 모든 모서리가 10센티미터인 정육면체의 부피). 무게와 길이를 자연스럽게 연결한 것인데, 인간의 생활에 가장 중요한 물질인 물을 통해서 하였다.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만들어 내었으며, 달력까지도 개혁하였다. 왜 일주일은 7일이며 (성경 창세기에서 나왔다지만), 한달의 길이는 30일이었다 31일이었다 하며, 게다가 2월은 왜 28일밖에 없는가. 그렇게 제멋대로 정해놓은 방식으로 삶을 사는 것이 타당치 않다 하여 ‘혁명력’ 또는 ‘공화력’이라 칭한 새로운 역법을 만들었다. 일주일은 10일, 한달은 30일로 매달 3주일씩 딱딱 맞아떨어지게 하였고, 그렇게 해서 1년에 12달이 들어간 후 365일중 남은 5일은 ‘혁명 전사의 날’이라는 공휴일로 제정하였다. 이 공화력을 약 12년간 실시하였는데, 나폴레옹이 정권을 잡은 후에 폐지하고 옛날식으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미터법은 보존되었고, 이것은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 3원칙에 못지 않게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정신적, 물질적 유산이 되었다. 혁명 이후에도 프랑스는 미터법을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노력을 했고, 자기들의 측정법을 퍼트리려는 영국과 충돌하여 결국 승리했다. 이제는 피트, 마일, 파운드 등 영국식 단위를 고집하는 미국과 같은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 미터법을 공용하여 서로 편리하게 교류하고 있다. 특히 과학자들은 철저히 미터법을 따른다. 영국에서도 결국 포기하고 공식적으로 미터법을 채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현 영국 정부는 다시 영국 고유의 ‘제국척도’로 돌아가자는 말들을 흘리고 있다. 특별한 실용적이나 과학적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배타적 국수주의의 표현일 뿐이다. 측정 단위의 통일은 획일적 사고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다양한 생각을 가지면서도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공동 언어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하면 가장 합리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심했던 200년전 프랑스 혁명가들의 정신을 되살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