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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자영업자, 그리고 관리자

중앙일보

입력 2021.09.2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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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여성국 기자 중앙일보 기자
여성국 탐사팀 기자

여성국 탐사팀 기자

지난달 동네 버스정류장, 배낭을 멘 중년 아저씨와 버스를 기다렸다.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뜬 날이었다. 근처 인력사무소에서 막 나온 것 같은 그는 자전거를 타고 정류장을 지나치는 다른 아저씨에게 손을 흔들었다. “김씨 오랜만. 나 드디어 일 나간다. 부천. 9만원이래.”

한 손에 쥔 우산을 내려놓은 그는 열 손가락을 편 뒤 오른손 엄지를 접어 숫자 9를 만들어 보였다. 그의 천진한 눈과 표정은 마스크도 가릴 수 없었다. 얼마나 애타게 이 일자리를 기다린 걸까. 같은 버스를 탄 그는 홍대입구역 앞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러 갔다. 걸음은 낭창했다. 모처럼 받을 일당에 설렐 그가 폭염에도 무사히 마음껏 일할 수 있길 바랐다.

문득 지난해 여름 폭염으로 쓰러진 일용직 노동자를 취재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는 제철소 크레인 에어컨을 고치다 쓰러져 끝내 사망했다. 당시 인근 병원 관계자는 내게 “매년 열나고 쓰러지는데 올해 특별히 (취재)온 목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일상화한 부상과 죽음을 처리하는 이의 악의 없는 질문 같았다. 부끄러움을 느껴서인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올해 온열질환자가 작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하니 폭염 속 누군가는 일하다 죽거나 다쳤을 거다. 일용직·하청 등 열악한 여건에 놓인 이들은 더 쉽게 사고를 당한다. 여름은 끝났지만 죽음은 계속된다.

지난 7일 사망한 마포구 자영업자는 죽기 전 방 보증금을 빼 직원들에게 밀린 월급을 줬다. [연합뉴스]

지난 7일 사망한 마포구 자영업자는 죽기 전 방 보증금을 빼 직원들에게 밀린 월급을 줬다. [연합뉴스]

취약한 상황에 놓여 죽음을 마주한 건 몸 쓰는 노동자만이 아니다. 코로나19 기간 더 버티기 힘든 자영업자들도 죽음에 내몰렸다. 전국자영업자 비대위는 코로나19 이후 자영업자 최소 22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밝혔다. 산재 사망과 코로나19 자영업자 사망은 취약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 겪는 구조적인 고통이라는 점에서, 관리 책임이 있는 관계자들이 이를 회피하고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이런 죽음을 예방하고 관리해야 하는 이들은 어디에 있었나.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할까. 소설가 이혁진은 “죽음은 어떤 것으로도 번복할 수 없는 진실”이라고 썼다. 건설 노동자 사망을 다룬 그의 장편소설 『관리자들』에서 죽음을 왜곡하고 은폐하려는 현장소장은 책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책임은 지는 게 아니라 지우는 거지. 세상에 책임질 수 있는 일은 없거든. (…) 멍청한 것들이나 어설프게 책임을 지네 마네 그런 소릴 하는 거야. (…) 텔레비전에서 정치인들이 하는 게 다 그거야.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지우는 거, 자기 책임이라는 걸 아예 안 만드는 거. 걔들도 관리자거든.”

멈추지 않는 이 죽음의 관리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정말 책임을 다하고 있나. 지난 7일 숨진 채 발견된 서울 마포구 맥줏집의 50대 자영업자는 목숨을 끊기 전 자신의 방 보증금을 빼 직원들의 밀린 월급을 챙겼다. 관리자의 책임을 다한 것,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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