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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장으로 읽는 책

데즈먼드 모리스 『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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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

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

내가 동물학자임을 알기에, 헨리는 함께 있을 때면 늘 동물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예를 들어, 그는 인도코끼리와 아프리카코끼리의 윤곽과 피부 질감 차이를 아주 상세히 분석하고 싶어 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이 거대한 동물들을 움직이는 조각품으로 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특히 그는 코끼리의 머리뼈 모양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데즈먼드 모리스 『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

‘나’는 『털 없는 원숭이』로 유명한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 ‘그’는 조각가 헨리 무어다. 초현실주의 예술가이기도 한 모리스가 프랜시스 베이컨·앙드레 브르통 등 초현실주의 미술가 32명에 관해 쓴 책이다. 1차 세계대전 후 기성체제를 비판하며 짧게 유행했던 초현실주의 운동은 분석이나 계획 없이, 이성의 개입이나 미의 추구 없이 “가장 어둡고 비합리적인 생각이 무의식에서 솟구쳐 나와서 캔버스에 자신을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었다. 모리스가 직접 교류했던 작가들의 개인사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마도 책의 핵심은 다음 문장일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초현실주의는 실패했다. 세계를 바꾸지 못했으니까. 다른 의미에서 보면, 초현실주의는 그것의 가장 원대한 꿈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 예술 작품들을 현재 전 세계의 수많은 이가 감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명과 분석을 원하는 이들을 제외해도, 화가의 무의식적 마음에서 관람자 자신의 마음으로 이미지가 직접 와 닿도록 하겠다는 생각으로 작품 앞에 서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