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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꿈이 아니다, 사람 뇌를 복사해 붙인 반도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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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는 2016년 이세돌 9단과 바둑 대결에서 4대 1로 승리했다. 하지만 알파고는 구동하는데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당시 알파고는 중앙처리장치(CPU) 1200개, 영상처리장치(GPU) 176개, 기억장치 920TB(테라바이트)를 갖췄다. 전력 소모는 약 12GW(기가와트)였다. 사람이 식사할 때 소모한 에너지(약 20W)와 비교하면 상당한 비효율이다.

복사한 뉴런 지도를 활용해 재현한 뉴로모픽 반도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복사한 뉴런 지도를 활용해 재현한 뉴로모픽 반도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알파고 같은 고성능 컴퓨터를 구현하면서 전력 소모를 줄이는 고효율 반도체를 현실에서 선보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이 나왔다. 삼성전자의 ‘차세대 AI 반도체’ 비전이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일렉트로닉스는 지난 23일 ‘뇌를 복사해 붙이는 뉴로모픽 전자장치’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논문의 공동 저자는 네 명이다. 함돈희 미국 하버드대 교수(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펠로), 박홍근 하버드대 교수, 황성우 삼성SDS 사장,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연구진은 기존 반도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의 비전을 제시했다. 현재 컴퓨터에선 CPU가 프로그램의 연산을 실행하고 D램과 하드디스크 드라이브가 저장을 맡는다. 지금까지 반도체 업계는 컴퓨터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크기를 줄이는 데 주력했다. 이런 방식은 반도체의 속도와 효율에서 한계에 부딪혔다고 연구진은 판단했다.

함돈희 교수, 박홍근 교수, 황성우 사장, 김기남 부회장(왼쪽부터).

함돈희 교수, 박홍근 교수, 황성우 사장, 김기남 부회장(왼쪽부터).

연구진은 뇌의 신경망을 복사한(뉴로모픽·neuromorphic) 반도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런 반도체라면 사람처럼 인지와 추론 등 고차원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봤다. 현재 컴퓨터에선 CPU와 저장장치가 별개로 작동하지만 새로운 반도체를 활용하면 사람의 뇌처럼 하나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의 뇌에 있는 신경세포(뉴런)는 전기 자극을 통해 정보를 전달한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뉴런을 연결한 ‘시냅스’라는 부위다. 사람의 뇌에선 시냅스 100조 개가 뉴런 1000억 개를 연결한다. 연구진은 일단 쥐의 뇌 구조를 파악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쥐의 뇌에서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미세한 전기의 흐름을 포착했다. 이런 전기 흐름을 증폭해 뉴런과 시냅스의 구조를 파악한 뒤 지도로 그렸다.

연구진은 이렇게 파악한 시냅스의 구조를 메모리 반도체에 붙여넣어 뉴로모픽 반도체를 만드는 방법을 제시했다. 사람의 뇌에서 뉴런이 신호를 주고받는 방식과 비슷한 반도체를 만들면 전력 소모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대용량 데이터의 처리도 쉬워진다. 이론적으로 최적의 조건을 구현한다면 뉴로모픽 반도체는 현재의 반도체와 비교해 에너지 소비량을 많게는 1억 분의 1까지 줄일 수 있다.

장준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장(전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은 “2025년이면 일부 선진국이나 글로벌 기업이 뉴로모픽 반도체의 상용화 초기 단계에 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뉴로모픽 반도체가 상용화하면 자율주행 자동차나 스마트 기기 등의 전력 소비량이 급격히 감소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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