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괴물 피아니스트, 스승의 조언 “사람을 떠올려봐”

중앙일보

입력 2021.09.2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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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년 전 15세에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등장한 피아니스트 임윤찬. 김호정 기자

2년 전 15세에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등장한 피아니스트 임윤찬. 김호정 기자

“아주 좋은 음악이야. 하지만 좋은 음악이 너무 많아서 넘쳐. 조금 더 인간적인 이야기가 나오도록 연주해보자.”

서울 서초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의 손민수(45) 교수의 방. 18일 오후 손교수가 학생 한 명과 함께 피아노 앞에 앉았다. 학생이 배우는 음악은 19세기 프란츠 리스트의 초절기교(超絶技巧) 연습곡 12곡 전곡. 리스트가 피아노 건반 다루는 기술을 과시라도 하듯 어려운 모든 테크닉을 요구한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 어려움의 극단에 있는 작품 12곡이다.

이날 배우는 학생은 2004년생 임윤찬. 7세에 피아노를 시작해 중학교 과정인 예원학교를 지난해 수석으로 졸업하고 올해 한예종에 영재 입학한 17세다. ‘괴물 같은’ 신인이다. 11세에 금호문화재단의 영재 콘서트로 데뷔, 15세에 윤이상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1위를 했다. 당시 콩쿠르에서 연주한 바흐·모차르트·쇼팽에는 뛰어난 기교는 물론, 주장이 확실한 해석이 있었다.

임윤찬이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으로 본격적인 자신의 시대를 선언한다. 이달 말부터 다음 달 초까지 전국 5개 도시에서 전곡을 연주할 계획이다. 첫 공연을 일주일 앞둔 이 날 레슨은 스승과 음악을 조율하는 시간이었다. 성장의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혜성 같은 연주자가 무엇을 배우는지 볼 수 있었다. 임윤찬은 4년 전부터 손교수에게 배웠다.

스승 손민수(사진 왼쪽)는 “믿을 수 없는 음악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사진 목프로덕션]

스승 손민수(사진 왼쪽)는 “믿을 수 없는 음악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사진 목프로덕션]

이날 손교수는 임윤찬이 가진 재주와 감성이 음악으로 완성되도록 도왔다. “본능적인 연주가 너의 큰 장점인데 잘못하면 서커스처럼 보일 수 있다. 갑작스러운 표현에는 한계를 설정하라.”“굉장히 실험적인 건 좋은데 기본에서 벗어나지 않는지 균형을 잡아야지.” 뛰어난 피아니스트의 장점이 단점이 되지 않도록 주의시키는 역할이었다.

어린 연주자에게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일도 스승의 몫이었다. “할아버지 혼자 기차를 타고 여행하면서 옛날을 회상한다고 생각해봐. 어떤 감정일까.” 연습곡 3번 ‘풍경(Paysage)’을 연주하는 임윤찬에게 손교수가 주문한 말이다. 1번 ‘전주곡(Prelude)’에서는 “당당하고 선언적인 것보다는 대지의 기운에 뿌리를 두고 에너지가 뻗어 나온다고 생각해보라”고 충고했다.

10대 연주자에게 쉽지 않지만 상상력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 주문이었다. 손교수는 나란히 놓인 피아노에 앉아 모든 곡을 함께 연주하며 레슨을 이끌었다. “말로 설명하기보다 옆에서 같이 치는 게 제일 편하다”고 했다.

손교수는 임윤찬을 두고 “연주하려고 태어난 사람 같다”고 했다. “무대를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자유로워진다는 게 어떤 건지 가르칠 필요가 없다.” 무대에 오르지 않았을 때의 임윤찬은 말이 거의 없고, 말을 하더라도 목소리가 작고, 감정표현은 드물다. 이날 레슨에서도 임윤찬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손교수는 “이렇게 레슨을 하다가 무대에서 연주할 때 보면 내가 아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상상 초월로 변한다”고 했다. “레슨 할 때는 내성적이라 걱정이 되는데, 무대에서 갑자기 뭐가 터져 나올 때는 거의 배신감을 느낄 정도다.”

무대에 쏟아지는 시선을 즐기는 과시적인 연주자는 아니다. 임윤찬은 “나의 기쁨은 무대보다는 연습실에서의 시간”이라고 했다. “할 수만 있다면 녹음만 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다만 연주를 잘하고 싶은 마음은 집착이라 할 정도로 강하다. “누구도 피아노를 치라고 시키거나, 연습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외국 콩쿠르에 나갔다가 돌아와 한국 공항에 내리자마자 나에게 전화해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악보 보고 싶다’고 한 학생이다.”(손민수 교수)

손교수 또한 10대 시절부터 주목받았던 피아니스트다. 중앙음악콩쿠르(95년 1위) 등 한국 내의 거의 모든 대회를 휩쓸었고 18세에 미국 보스턴으로 유학을 떠나 명피아니스트 러셀 셔먼(1930~)에게 배웠다. “레슨을 가면 선생님이 뭘 가르쳐주시는 게 아니고, 옆에서 함께 피아노 치고 노래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정신없이 나누고 나면, 돌아와 혼자 연주하는 음악이 달라져 있었다. 나도 윤찬이와 함께 노래하면서 더 크고 깊은숨을 음악에 불어넣고 싶다.”

손교수는 3년 동안 베토벤 소나타 32곡 전곡을 연구해 지난해 무대에서 완주했다. 당시 그는 인터뷰에서 “바흐 평균율,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을 전곡 연주해볼 계획”이라고 했다. 스승의 ‘위시리스트’를 제자인 임윤찬이 먼저 실현한다. 손교수는 “윤찬은 음악이 가진 힘을 느껴봤기 때문에 이 작품 전체를 연주할 특별한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윤찬의 초절기교 연습곡 전국 투어는 이달 25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시작해 다음 달 1일 광주광역시, 5일 대구, 7일 성남, 1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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