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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가분이 저격한다

"홍남기 부총리님, 조선시대도 아닌데 웬 곳간 타령입니까"

중앙일보

입력

박가분 연구자이자 작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문재인 정부 들어 정부 지출이 경제 성장률을 크게 앞지르면서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합리적 예산 조정 없이 무차별적인 선심성 지출 증가로 이어진 현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에 비판적입니다. 부동산값 폭등으로 가뜩이나 청년들의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상황에서 "일단 쓰고 보자"며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건 무책임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코로나 19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맞아 재정을 더 과감히 풀어야 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박가분 작가가 그렇습니다. 마침 노정태 작가는 도움이 꼭 필요한 자영업자는 외면하고 전 국민 돈 잔치에 불과한 재난지원금에 장단을 맞춘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저격하는 칼럼을 보내왔습니다. 전혀 다른 시각을 담은 두 칼럼을 27일과 28일 연속으로 내보냅니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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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경제부총리님.
나라 살림을 챙기는 동시에 정치권 안팎의 많은 공세에 대응하느라 고심이 많은 줄 압니다. 특히 코로나 19라는 유례 없는 위기상황에 그간 예산편성만 10번 넘게 하는 등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지금까지 제기된 숱한 비판에 숟가락을 얹는 게 아닌가 주저되지만 올해 계획 이상의 초과 세수가 예상되는 가운데 내년도 예산부터 ‘출구 전략을 마련한 게 아니냐'는 평가를 듣고 걱정이 됩니다.

지난 8월 발표된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올해 본예산 대비 정부 총수입 증가율은 13.7%지만 정부지출 증가율은 8.3%에 그쳤습니다. 아직 코로나 경제위기에서 탈출하지 못해 빚으로 연명하는 소상공인은 지금의 재정 집행도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청년들은 주거불안과 일자리 위기가 너무 심각합니다. 그런데 벼랑에 내몰린 이런 사람들의 살림살이보다 균형재정으로의 때 이른 복귀에만 집중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부총리님은 내년도 예산을 발표하면서 “확장재정 기조”라고 말했지만 제 눈엔 확장적 방향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실제로 부총리님은 지난 15일 국회 정책질의에서 “내년 이후에는 (재정 정책의) 정상화 수순을 밟아야 할 것”이라고 발언했습니다. 과연 본심이 무엇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입니다.

조선 시대도 아닌데 곳간 타령

최근 부총리님과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과의 설전을 지켜보며 의아한 게 있었습니다. 지난 6일 고 의원은 “곳간에 왜 곡식을 쌓아 두느냐”며 더 과감한 재정정책을 펼치지 못하는 행태를 비판했습니다. 부총리님도 인정하듯 우리나라 정부부채 규모가 선진국 대비 낮은 수준이기에 나온 발언입니다. 그러나 부총리님은 오히려 “나라 곳간은 쌓여가는 게 아니라 비어가는 상황”이라며 재정이 어렵다는 취지로 답하셨죠. 얼마 전 "확장재정" 의지를 말한 게 무색한 발언입니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흰옷)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부겸 총리(맨 오른쪽)와 인사하고 있다. 고 의원은 청와대 재직시부터 '곳간' 얘기를 많이 했다. 임현동 기자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흰옷)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부겸 총리(맨 오른쪽)와 인사하고 있다. 고 의원은 청와대 재직시부터 '곳간' 얘기를 많이 했다. 임현동 기자

이 말을 꺼낸 건 설전의 한쪽 편을 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나라 살림의 수장이라면 ‘나라 곳간’이라는 비유가 틀렸다는 것을 우선 지적하셨어야 합니다. 지금이 조선 시대라면 곳간에 곡식과 옷감을 쌓아두고 필요할 때 구휼을 했겠지만 오늘날 정부의 재정 여력은 쌀이나 귀금속 같은 현물자산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건 이제 주류경제학계도 인정하는 사항입니다.

무엇보다 자국화폐로 표시된 국채를 발행할 수 있고 이를 소화할 화폐 자본시장이 발달한 선진국의 재정 여력은 세입-세출에 구애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유력 경제지에서조차 나오는 실정입니다. 몇해 전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에서는 '선진국이라면 정부 부채 한계가 사실상 없을 수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습니다. 특히 포브스엔 정부부채는 민간부문의 입장에서, 특히 청년세대에게 훌륭한 안전자산이라는 주장이 실렸습니다. 이러한 상황 변화를 고려할 때 부총리님께서 지금 대한민국은 옛 현물경제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선진국이라는 점을 강조한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균형재정과 가계부채 위기는 동전의 양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비율은 202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43.8%로 선진국보다 훨씬 낮습니다. 공기업 부채까지 끌어와도 부채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7개국 중 우리나라는 2번째로 낮은 수준입니다. 지금 추세라면 2025년엔 GDP 대비 58.5%로 예상되는데, 2019년 기준 선진국 평균(110%)보다 한참 낮습니다.

부총리님은 이를 근거로 재정 여력이 탄탄하다는 말씀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부채 비율이 선진국보다 낮다는 건 안심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걱정해야 할 일 아닐까요? 정부가 서민 가계 구제를 위해 충분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방증이기 때문입니다. 낮은 정부부채 비율은 높은 가계부채 비율과 동전의 양면입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실질적 가계부채비율은 GDP의 97.9%로 39개국 중 1위였습니다.
정부가 덜 쓰면 민간부문이 더 허리띠를 졸라야 합니다. 실제 자금순환표를 보면 우리나라 정부는 금융부채보다 더 많은 금융자산을 쌓아두고 있는데 (이 점에서는 곳간에 곡식을 쌓아둔다는 고민정 의원 비유가 옳다고 봅니다) 이는 미국·EU·일본 등 다른 선진국과는 대조적입니다. 우리 정부가 재정을 오래 아낀 결과가 만성 수요부족, 일자리 위기, 부족한 사회안전망이라면 과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특히 청년들은 자산 대비 노동력의 가치가 하락하는 상황, 그리고 미래의 주거불안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단기적 재정수지에 매몰되기보다 미래를 담보로 빚을 질 정도로 막다른 골목에 놓인 청년들에게 질 좋은 경제와 일자리 그리고 주거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도 재정이 제 역할 해야

코로나 위기 와중에 재정준칙을 도입하겠다는 소식도 많이 의아했습니다. 부총리께서는 국가채무 비율을 GDP 대비 60% 이내, 통합재정수지는 GDP 대비 -3% 이내로 통제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하셨죠. 그러나 정부부채에 인위적 한계를 둬야 한다는 주장에 과학적 근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주장들이 최근에는 여러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인위적 재정준칙을 도입했던 곳들도 서민에게 고통을 전가한다는 논란과 함께 극심한 갈등비용을 치러야 했습니다. 위기회복을 오히려 더디게 할 수도 있고요.
재정준칙 도입은 코로나 이후 다양한 사회적 도전에 대응하는 국면에 정부가 스스로 두 손 두 발을 묶는 행동입니다. 탈 탄소 사회 이후 새로운 에너지 표준, 산업 표준을 선점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정부주도로 무제한 투자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코로나 위기 이후에도 에너지 전환, 정의로운 사회전환을 위해 더 적극적인 정부투자를 기다리는 곳들이 많습니다. 특히 미래 세대에게 희망이 되는 역동적 경제와 주거 안전망을 어떻게 물려줄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정부 재정의 한계는 민주적 정치과정과 국민 합의에 맡기면 안 될까요. 부디 국민의 봉사자로서 부총리께서는 그런 정치과정과는 거리를 두면 좋겠습니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는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관료들이 행한 정치 행위의 폐단들을 충분히 겪었습니다. 부총리께서도 그러한 정치 행위를 한다는 오해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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