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서 온 역대급 54㎝ 달항아리…"보자마자 '왕실용' 알았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26 16:37

업데이트 2021.09.26 16:45

북촌 중국미술연구소 전윤수 대표가 공개한 높이 54cm 백자 달항아리. 18세기 후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태토를 두껍게 썼고, 유약도 두껍게 발라 백자 표면에 유약이 흐른 자국이 보인다. 권혁재 기자

북촌 중국미술연구소 전윤수 대표가 공개한 높이 54cm 백자 달항아리. 18세기 후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태토를 두껍게 썼고, 유약도 두껍게 발라 백자 표면에 유약이 흐른 자국이 보인다. 권혁재 기자

높이 54㎝. 기존에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달항아리보다 더 크다. 형태 역시 온전하다. 서울 가회동 중국미술연구소 전윤수 대표가 2015년 일본 경매에 나온 것을 낙찰받아 이듬해 국내에 들여온 백자 달항아리다.
전 대표는 최근 그 실물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역임한 최건 전 경기도자박물관장의 조사의견서를 공개했다. 최건 전 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나는 평생 백자를 봐왔는데, 이건 처음 보자마자 ‘왕실용이다’ 싶었다”고 말했다.

국보 달항아리보다 더 크고, 깨끗하다

왼쪽부터 국보 262호 백자 달항아리(높이 49cm), 이번에 공개된 백자 달항아리(높이 54cm), 보물 1439호 백자 달항아리(높이 47.8cm). 중국미술연구소가 공개한 백자 달항아리 조사보고서의 일부다. 중국미술연구소

왼쪽부터 국보 262호 백자 달항아리(높이 49cm), 이번에 공개된 백자 달항아리(높이 54cm), 보물 1439호 백자 달항아리(높이 47.8cm). 중국미술연구소가 공개한 백자 달항아리 조사보고서의 일부다. 중국미술연구소

최 전 관장은 “국가지정문화재를 포함한 달항아리 대부분이 41~45㎝로, 54㎝는 우리가 알고 있던 조선 백자 제작 기술의 한계치를 넘어선 크기로 의미가 크다”며 “백자에 사용된 흙과 유약, 구운 기술 등도 기존 달항아리들에 비해 뛰어나다”고 덧붙였다. 달항아리는 무늬 없이 크고 둥글게 빚은 백자를 가리킨다. 절제와 담박함으로 빚어낸 순백의 빛깔과 둥근 조형미는 조선 백자의 정수이자, 중국·일본 도자기에 없는 조선 달항아리만의 특징으로 꼽힌다. 과거 백자대호(큰 항아리)로도 불렸는데, '달항아리'라는 친근한 이름은 김환기 화백이 1950년대초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달항아리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우학문화재단이 소장한 국보(262호)로, 높이 49㎝다.

“굽기 전엔 80㎝”… 크고 무거운데 휘지도 않았네

북촌 중국미술연구소 전윤수 대표가 공개한 높이 54cm달항아리. 평평한 바닥에 놓고 보면 살짝 비스듬한 입구와, 조금 다른 양쪽의 굴곡이 보인다. 최건 전 경기도자박물관장은 "달항아리는 모양이 조금씩 다른 게 매력"이라면서도 "이 작품은 약간의 비정형성을 가지면서도, 형태적으로 무너짐 없이 구워낸 것은 조선 백자 기술의 집약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혁재 기자

북촌 중국미술연구소 전윤수 대표가 공개한 높이 54cm달항아리. 평평한 바닥에 놓고 보면 살짝 비스듬한 입구와, 조금 다른 양쪽의 굴곡이 보인다. 최건 전 경기도자박물관장은 "달항아리는 모양이 조금씩 다른 게 매력"이라면서도 "이 작품은 약간의 비정형성을 가지면서도, 형태적으로 무너짐 없이 구워낸 것은 조선 백자 기술의 집약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혁재 기자

새로 공개된 달항아리는 흙과 유약도 최상급으로, 백자의 부드러운 느낌을 잘 담고 있다는 평가다. 최 전 관장은 “중국과 일본은 흙을 갈아서 도자기를 빚지만, 우리는 점토 그대로를 쓴다”며 “그래서 우리 도자기는 플라스틱 같은 느낌이 아니라 ‘손톱으로 누르면 쑥 들어갈 것 같은’ 백설기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시각적으로 부드럽게 표현된다”고 설명했다.
최 전 관장은 그 무게와 형태도 짚었다. 그릇의 두께가 두껍고, 유약도 두껍게 발라 다른 달항아리보다 무겁다. 최 전 관장은 “우리나라 점토는 수축률이 20~25%나 돼서, 54㎝를 구워내려면 70~80㎝로 만들었을 것”이라며 “흙과 유약을 두껍게 써서 무거울수록 처지고 휘어서 좌우 대칭이나 비례를 맞추기가 어려웠을 텐데, 이 정도 형태를 구현해 낸건 최상급 기술자 아니고서는 못 만들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18세기 말~19세기 이후 흙의 성분이 바뀌면서 이후에 발견된 백자는 휜 채로 완성된 경우가 많지만 이 백자는 전반적으로 동그란 굴곡을 비교적 균등하게 띠고 있다고 했다.

고급 흙, 고급 유약… “누르면 들어갈 듯, 백설기 느낌”

국보 309호 백자 달항아리. 높이 44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중앙포토

국보 309호 백자 달항아리. 높이 44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중앙포토

바늘로 콕 찌른 것 같은 자국인 ‘핀홀’도 적다. 핀홀은 유약을 씌우는 과정에 먼지가 들어가거나, 구울 때 수축이 빨리 될 경우 기포가 터지면서 생긴다. 핀홀이 많을수록 오염 가능성이 늘어난다. 최 전 관장은 “우리나라 백자에 쓰인 고급 유약은 작은 기포를 많이 포함해 빛을 난반사시켜, 번쩍이는 광이 아닌 은은한 광을 낸다”며 “유약을 바르고 굽는 과정에서 기포가 보이지 않게 구운 기술도 최상급”이라고 설명했다.

18세기 후반, ‘알항아리’ 시기에 유독 큰 ‘달항아리’

최 전 관장은 “달항아리의 형태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데, 이 항아리는 타원형에 가까운 형태와 굽, 입구 형태로 보아 18세기 후반즈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유약이 회청색을 띠는 것 역시 18세기 영조 말엽의 유약 성질이라고 한다. 최 전 관장은 “18세기 후반은 달항아리가 35㎝ 정도로 작아지는(‘알항아리’라고도 부름) 시기인데, 유독 54㎝ 크기를 만든 건 특별히 주문해서 만든 것일 것”이라며 “시기를 감안하면 더 희귀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전윤수 대표는 “그간 많은 귀한 작품들을 환수해왔지만, 기관 아닌 개인 소장으로 들어가면 일반에는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는 게 안타까웠다”며 “이렇게 큰 백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반인도, 연구자들도 알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직접 공개하게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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