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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는 없다"…시진핑의 칼에 벼랑 끝 몰린 헝다그룹 [똑똑, 뉴스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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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독자 권승현님의 질의를 받아 담당 기자가 심층 취재해 작성했습니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헝다센터 건물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상하이에 있는 헝다센터 건물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찻잔 속의 태풍이냐. ‘중국판 리먼 브러더스’ 사태냐. 중국 2위의 부동산개발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그룹의 파산 가능성이 커지며 금융 시장이 긴장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23일 위안화 채권 이자 지급을 협상을 통해 해결하며 한고비 넘기는 듯했지만, 이날 달러 표시 채권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며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는 다시 커지고 있다. 연이어 도래하는 이자와 원금 상환 스케줄은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이런 상황 속 국유화 시나리오에 중국 당국이 지방정부에 헝다의 파산에 대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향후 중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에 투자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헝다그룹은 어떤 회사

헝다그룹은 허난성 빈농 출신인 쉬자인(徐家印) 회장이 1997년 중국 광둥성 선전에서 설립한 부동산개발회사다. 대도시가 아닌 지방 소도시를 중심으로 대출로 땅을 사들여 규모가 작은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박리다매 전략을 앞세워 중국 2위의 부동산 개발사로 몸집을 불렸다.

중국의 부동산 열풍 속 2013~18년 연평균 38.8%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구가한 헝다그룹은 식품과 레저·전기차 등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이어갔다. 선분양을 통해 받은 계약금을 투자금으로 이용하는 한편 회사채 발행과 은행 대출로 자금을 조달하며 재무 상태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2013년 339%던 부채비율은 2017년 627%까지 치솟은 뒤 지난해 557%를 기록했다. 지난 6월 기준 헝다그룹의 부채는 1조9826억 위안(3065억 달러·362조원)까지 늘었다.

헝다그룹 부채구조 및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헝다그룹, 메리츠증권리서치센터]

헝다그룹 부채구조 및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헝다그룹, 메리츠증권리서치센터]

시진핑 ‘공동부유’ 기치에 유동성 위기로

헝다그룹의 운명이 전환점에 선 건 지난해 8월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 내세우는 ‘공동부유(共同富裕)’ 기치에 발맞춰 과열되는 부동산 시장을 잡기 위해 중국 정부가 부동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다.

헝다그룹의 발목을 잡은 건 이른바 ‘3개 레드라인 정책’으로 불리는 부채비율 관리 규제다. 부채와 관련한 3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신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했지만, 헝다그룹은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한 불량(레드)기업으로 분류되며 유동성 위기에 빠지게 됐다. 지난 1월부터 인민은행이 부동산 대출 총량 규제를 발표하며 그룹별 대출 제한 등에 나선 것도 헝다그룹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자산매각과 자회사 상장 등으로 유동성 확보에 나섰지만 상황을 되돌리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룹 경영진이 자사주를 매각하는 등 현금 확보에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헝다그룹 주가는 올해 들어 84% 넘게 급락했다. 할인 판매와 자산 매각에도 순이익은 29%나 감소했다.

커지는 파산 우려…연말까지 갚을 이자만 7억 달러

자금 경색 우려가 불거지며 지난 6월 무디스를 시작으로 전세계 신용평가사가 헝다그룹의 신용등급을 연이어 낮추고 있다. S&P는 지난 7월 이후 두 달 간 헝다그룹의 신용등급을 6등급이나 하향 조정해 현재 CC(신용상태 최악)까지 낮췄다. 무디스(Ca)와 피치(CC)도 모두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헝다의 파산 우려가 커진 것은 이달 중순부터다. 지난 14일 헝다그룹은 부채상환을 보장할 수 없다고 홍콩거래소에 통보했고 이틀 뒤에는 역내 채권에 대한 거래 중지를 신청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채권은행에 대출 이자 상환이 어려울 것이라고 통보하며 상황은 더 나빠졌다.

헝다그룹 금년 이자지급 일정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블룸버그]

헝다그룹 금년 이자지급 일정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블룸버그]

올 상반기 기준 헝다그룹의 부채는 362조원(1조9826억 위안)이다. 은행 등 금융기관 차입은 6007억 위안(약 109조원)이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은 없지만 상환해야 할 이자와 원금은 줄줄이 대기 중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헝다그룹이 올해발까지 지급해야 할 이자만 7억 달러(8246억원)에 달한다. 2022년까지 77억 달러(약 9조514억원), 2023년에는 108억 달러(약 12조7000억원) 규모의 채무를 갚아야 한다.

찻잔 속 태풍?…아시아 채권시장은 발작 중

유동성 경색에 따른 파산 우려까지 커지며 헝다 사태가 중국 경제 전반을 뒤흔드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헝다그룹은지난해 말 기준 중국 234개 도시에서 798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헝다그룹에 계약금을 선지급한 부동산만 150만개로 이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헝다 신용등급을 ‘CCC+’에서 ‘CC’로 강등한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헝다가 파산할 경우 대규모 채권을 보유한 중국 건설사와 중소형 은행의 연쇄 파산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금융시스템 전반을 뒤흔들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은행 대출 등을 포함한 헝다그룹의은행 관련 차입금 규모는 중국 전체 은행 대출의 0.29% 수준에 불과해서다. 게다가 상당수 은행 대출은 부동산 담보가 있는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송기종 NICE신용평가 금융평가3실장은 보고서에서 “헝다사태에 대한 금융시장의 우려는 규모보다는 시기”라며 “중국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민간의 경제활동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는 만큼 헝다그룹 부도가 부동산 시장 침체와 신용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헝다그룹 채무 만기도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블룸버그]

헝다그룹 채무 만기도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블룸버그]

오히려 긴장한 곳은 아시아 채권 시장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헝다그룹이 달러채권의 이자 8353만 달러를 갚지 못하면 중국 사상 최대 규모의 채무 재조정 촉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 금융시장에도 심각한 충격을 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미 시장은 헝다 쇼크에 반응하고 있다. 아시아 차입자들이 발행한 미국 달러화 표시 채권의 수익률은 올해 초 7% 정도였지만 최근 12%까지 상승했다. 코로나19팬데믹 초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제금융센터는 “헝다그룹이 발행해 시장에서 유통 중인 달러채권은 200억 달러 규모”라며 “아시아 하이일드 채권의 11%를 차지하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하이일드 달러 채권 발행자”라고 지적했다.

하이난항공이냐 핑안보험이냐…아니면 ‘중국판 리먼’?

헝다그룹의 운명은 결국 중국 정부의 선택에 달렸다는 것이 시장의 지배적인 예상이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정부가 부채 구조조정에 개입하는 것이다. 이른바 하이난항공(HNA 그룹) 방식으로 질서있는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다. 채권자가 일부 손실을 감수하게 하면서 핵심 자산 등을 국영기업에서 인수하는 방식이다. 헝다그룹이 진행한 개발프로젝트의 경우 은행이나 지방정부 등에 부담을 넘길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2016년 8월 베이징에 있는 빌딩에 하이난그룹의 로고가 붙어 있는 모습. [중앙포토]

2016년 8월 베이징에 있는 빌딩에 하이난그룹의 로고가 붙어 있는 모습. [중앙포토]

핑안(平安)보험이나 중국 최대의 자산관리회사인 화룽(華融)자산관리처럼 중국 정부가 적극적인 개입하며 채권자 손실을 보전해주는 방안도 있지만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게 시장의 판단이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가 "헝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라고 할 정도로 큰 기업이 아니다"라고 보도한 것도 이런 시각을 뒷받침한다.

헝다의 위기가 ‘중국판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될 가능성은 작을 전망이다. 구조화한 각종 금융파생상품 계약으로 얽혔던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달리 부동산개발회사의 자산과 부채 정리 작업은 상대적으로 복잡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게다가 중국 정부가 광범위한 재량권을 발휘해 위기의 전이를 막을 것이란 전망도 이런 시각에 무게를 싣는다. 부동산 부문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9%가량인 만큼 헝다그룹과 같은 대형사의 파산은 충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최설화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헝다그룹의 디폴트가 금융기관과 기업에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까지 연결되는 만큼 정부가 별다른 조치 없이 파산시킬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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