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나라 돈 마구 뿌려대다간 ‘잊힌 계층’ 만 늘어난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25 08:00

[더,오래]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87)

“프랑스의 귀족 자제 두 명이 사냥을 하려고 브르타뉴로 떠난다. 열흘 정도 묵을 요량으로 여인숙을 잡는다. 낮에는 멧돼지와 꿩사냥을 하고, 저녁에는 잡은 사냥감을 여인숙에 부탁해 요리를 해 먹고 술을 마시며 즐긴다. 그러던 어느 날 여인숙 하녀로 일하는 어여쁘고 풋풋한 아네트를 눈여겨본다. 한밤중에 그녀 방에 몰래 들어간다. 맹렬하게 발버둥치는 그녀를 제압하고 몹쓸 짓을 한다. 그로부터 20년 후 상원의원이 된 그는 추억을 더듬어 옛날 그 사냥터의 여인숙을 찾아간다. 당시의 주인은 노부부가 되었고, 아들이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하녀 아네뜨의 안부를 묻자, 20년 전에 아비를 모르는 애를 낳다 죽었다고 한다. 그가 낳은 아이는 바로 저기 있는 마구간 지기다. 상원 의원은 순간 자신의 아들이 아닌지 가슴이 철렁한다. 그의 얼굴을 유심히 뜯어본다. 누추한 차림새이지만 이마와 코의 선이 그를 빼박았다. 심한 죄책감으로 그에게 제법 많은 돈을 남긴다. 주인은 그는 평생 마구간에서만 살아서 돈이 뭔지를 모르니 주지 말라고 한다.”

귀족이 장난삼아 범한 하룻밤이 하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그 불장난으로 태어난 사생아는 대를 이어서 종으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 기드 모파상의 단편 『멧도요새 이야기』에 나오는 얘기이다. 당시 프랑스는 계층 사회였다. 귀족, 농민·상인, 종·양치기 등 3계층이었다. 단편 소설은 귀족이 장난으로 던진 돌멩이에 맞은 연못의 개구리와 같은 신세인, 하녀 모자의 불행한 일생을 그렸다. 당시 귀족의 무책임하고 문란한 사생활을 고발한 것이다.

평생을 안전지대에서 머물기는 어렵다. 잠시 계층이 떨어져도 일자리를 회복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평생을 안전지대에서 머물기는 어렵다. 잠시 계층이 떨어져도 일자리를 회복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 당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는 최근 『코로나 시대 새로운 계급의 분화와 불평등』에서 미국의 4계급론을 주장해 화제다. 그는 노동자를 원격근무 노동자, 필수 노동자, 임금 못 받는 노동자, 잊혀진 노동자 등 4가지로 구분한다. 원격근무 노동자(The Remotes)는 노트북이나 화상회의로 어디서든 근무가 가능한 전문·관리·기술 인력이다. 필수 노동자(The Essentials)는 의사, 간호사, 공무원, 약국, 위생 관련자, 소방 경찰관 등 위기 상황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다. 세 번째 계급인 무급 노동자(The Unpaid)는 소매점이나 식당,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다가 무급휴가로 쉬고 있거나, 실직한 사람을 가리킨다. 이들은 가족을 부양하고 집세를 내기 위해 돈이 필요하지만,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네 번째 잊힌 계층(The Forgotten)은 노숙자, 감옥이나 이민 수용시설, 이주민노동자 캠프 시설 등에 있는 사람이다. 요약하면 1, 2계층인 원격·필수 노동자는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3계층은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면 언제든지, 4계층의 ‘잊힌 계층’으로 전락한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떨까. 일자리 감소와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가 더 벌어졌다고 아우성이다. 고시 폐지로 계층 상승 사다리를 파괴했다는 시각도 있다. 우리도 미국처럼 일터와 삶의 조건에 따라 계층을 나누어보자.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전문직이나 대기업 정규직은 1계층이라 하자. 이삼십 년 근무가 보장되어 노후 걱정이 없어야 한다. 2계층은 전체 근로자의 약 40%에 해당하는 비정규직으로 장기근무가 보장되지 않는 애매한 직업군이다. 3계층은 오랫동안 직업이 없는 무직자나 생계를 국가복지에 의존하는 취약계층이라 하자. 이 구분은 직장의 안정성과 평생소득 가능 여부에 따라 나눈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 시대에 500만~600만 자영업자는 어떻게 분류해야 할까. 코로나로 힘들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영업제한 풀지 않으려면 차라리 죽여달라’는 구호는 처절하다. 코로나로 문을 닫고 앞으로도 문을 열기가 어렵다면 3계층으로 떨어질 것이다.

일회성 소비적 복지보다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생산적 복지가 진정한 복지다.

일회성 소비적 복지보다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생산적 복지가 진정한 복지다.

많은 사람이 안전지대에서 평생을 살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거기에 더해 뛰는 집값에 일자리 불안까지 겹쳐 ‘우리 사이의 격차’를 더욱 크게 벌리고 있다. 정부가 2, 3계층의 경제 활동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그들은 ‘잊힌 계층’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생색내기 선거용 복지로 국고를 낭비하는 것은 죄악이다. 이대로 돈을 허공에 막 뿌려대면 다음 세대는 개인당 1억 원상당의 국가 채무를 떠안게 된다는 분석도 있다. 일회성 소비적 복지보다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생산적 복지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복지이다.

누군가에게 부가 편중되고, 다른 누구는 잃기만 한다면 사회는 불안해진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공감대가 시급하다. 내 배가 부르다고 비틀거리는 이웃을 외면하면 위험한 사회가 된다. 무엇보다 자산 격차를 줄이는 정책과 변변치 않을지라도 일자리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위드 코로나’는 그런 측면에서 고민하고 국민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나는, 나의 자식은 먹고사는데 평생 걱정 안 해도 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다면 나와 내 자식이 잠시 2, 3계층으로 떨어지더라도 일자리를 회복,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좀 더 선하고 안전한 사회가 되도록 너와 내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시대적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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