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노무현 닮아가네” 빼닮은 대선…‘공약표절 논란’ 누가 덕볼까

중앙일보

입력

“어? 노무현 닮아가네”

2002년 12월 10일 중앙일보 1면에 실렸던 새천년민주당의 선거광고. 당시 민주당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정치개혁' 공약이 노무현 후보의 공약과 유사하다며 표절 논란을 제기했다.

2002년 12월 10일 중앙일보 1면에 실렸던 새천년민주당의 선거광고. 당시 민주당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정치개혁' 공약이 노무현 후보의 공약과 유사하다며 표절 논란을 제기했다.

2002년 대선을 9일 앞둔 12월 10일, 조간신문 1면에 이런 광고가 실렸다. 당시 노무현 후보를 대선 후보로 내세운 새천년민주당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발표한 ‘정치개혁’ 공약에 대해 “노 후보의 공약을 베꼈다”고 주장하는 선거광고였다.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각각 군 복무기간 단축과 정치개혁 공약, ‘효순이ㆍ미선이 사건’ 추모일정 등을 놓고 서로 상대방이 ‘표절’이라며 날 선 공방을 벌였다.

공약 표절은 대선 때마다 돌아오는 단골 공방 소재다.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처럼 본선에서 설전을 벌이는 경우도 있지만, 정책적 지향점을 공유하는 같은 당 경선에서 유사한 공약이 반복되는 경우가 적잖다.

군필자 청약가산점·원가주택…윤석열 공약 ‘표절논란’ 반복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외교안보 관련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20210907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외교안보 관련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20210907

지난 22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발표한 ‘군필자 주택청약 가산점 제공’ 공약을 놓고 국민의힘 내 경쟁 후보인 유승민 전 의원이 “부끄러운 표절”이라고 비난해 논란이 일었다. 윤 전 총장의 공약 중 ▶군필자 부동산 청약시 5점 가점을 주고 ▶현역병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현 6개월에서 18개월로 확대하는 내용이 유 전 의원이 앞서 발표한 ‘G.I.Bill’ 공약과 똑같다는 게 유 전 의원의 주장이다.

실제 유 전 의원은 지난 7월 발표한 안보 공약에서 군필자에 주택청약 가산점 5점을 부여하고 의무 복무 기간만큼 국민연금크레딧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유 전 의원은 22일 “남의 공약을 그대로 ‘복붙’하면 양해라도 구하는 게 상도 아닌가”라고 공격했다.

윤석열 캠프는 “청년 대상 국방공약은 청년들이 제안하거나 희망하는 정책 제안을 선별하고 다듬어 공약화한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비슷한 생각이나 유사한 목소리가 당연히 담길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유승민 캠프 권성주 대변인은 23일에도 논평을 내고 “노래를 표절해도 잘 부르면 그만이고, 기술을 베껴써도 상품 잘 만들면 문제 없단 건가”라며 “엄연한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앞서 윤 전 총장의 1호 공약인 ‘원가주택’도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무주택 청년 가구에게 주택 30만호를 원가에 공급하고, 해당 주택을 팔면 국가가 다시 사들인 뒤 재분양해 70%의 시세차익을 보장하는 내용의 해당 공약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주택’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지사 캠프 최지은 대변인은 “공급계획이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주택 공급계획과 너무 유사하다”고 주장했지만, 윤 캠프 측은 “원가주택은 임대가 아닌 분양 개념이어서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다.

박근혜-문재인도 “한 문제나 열 문제나 컨닝은 컨닝”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2012년 12월 16일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3차 TV토론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2012년 12월 16일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중앙선관위 주최로 열린 3차 TV토론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2012년에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캠프 사이에 ‘공약 베끼기’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당시 문 후보가 ‘울산 공약’으로 내세웠던 국립산업박물관 울산 유치 등에 대해 박 후보 캠프는 “한 문제를 컨닝하나 열 문제를 컨닝하나 컨닝은 컨닝이고, 많이 베끼나 적게 베끼나 베끼기는 베끼기”라고 공세를 퍼부었다.

반면 당시 민주통합당은 박 후보가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베꼈다”고 공격했다.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을 통한 행정정보 공개를 골자로 하는 박 후보의 1호 공약 ‘정부 3.0’이 이명박 정부가 기존에 추진하던 정책과 유사하다는 지적이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올해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2012ㆍ2017년 대선 당시) 공약 상당 부분을 내 것에서 가져갔다”며 “오죽하면 ‘문도리코’라는 말까지 나왔겠냐”고 주장했다. 대전을 4차산업 특별시로 육성하고 행정수도 이전 국민투표를 추진하는 등의 문 대통령 공약이 자신이 2012년 내세웠던 공약과 유사하다는 지적이었다.

다만 전문가들은 “‘시대정신’에 발맞추다보면 공약이 유사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장성호 건국대 미래지식교육원장은 “청년 문제에서 지금 가장 핵심적인 게 주택과 취업인데, 이런 시대정신에 정치가 따라가려면 공약이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청년ㆍ주택ㆍ복지 공약 등에선 국민의힘과 민주당도 차별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결국 누가 정권을 잡아서 실현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