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프리즘] 고은 사태를 되돌아보며

중앙선데이

입력 2021.09.25 00:26

지면보기

755호 31면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이달 초 한 중진 문인이 고은 시인이 관련된 근황을 알려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던 시인 고은 말이다(올해 노벨문학상 발표일은 10월 7일이다). 이 시대의 지성으로 통하는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가 ‘문학의 집·서울’ 소식지 9월호에 짧은 분량이지만 고은 시인의 문학 세계를 조명했다는 얘기였다. 그것도 당대의 사회학자였던 프랑스의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의 자본주의 비판 논의와 견주면서 말이다.

엇비슷한 시기에 이번에는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로부터 책 한 권을 얻게 됐다. 지난 7월 말 인도의 오리엔트 블랙스완 출판사가 출간한 『Conversations with Ko Un(고은과의 대화)』, 이란의 반체제 철학자 라민 자한베글루가 묻고 고은이 답하는 형식의 책이다. 아마존에서 33달러(약 3만8000원)에 팔린다. 인도 출판사에 이란 철학자라니, 생뚱맞을 수 있겠는데 자한베글루는 노엄 촘스키, 달라이 라마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오리엔트 블랙스완은 나중에 독립했지만 1948년 영국의 롱맨 출판사가 처음 세운 회사다. 한국문화에 낯선 외국인인 자한베글루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고은의 시 세계 탐문에 바쁜 눈치다. “한국인으로서 이 같은 주목을 외국의 지식사회로부터 받은 바 없을 듯”하다는 김병익씨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을 정도다.

최근 국내외에서 시세계 조명
성급하게 흔적 지웠던 건 아닌가

햇수로 벌써 4년 전 촉발된 ‘그일’이 아니었다면 이런 얘기들은 문단 화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딴판으로 받아들여진다. 오히려 착잡함과 궁금증들을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세상이 변했고 정신이 바뀌었다. 착잡함의 원인은 “인제 와서…” 하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궁금증들은 좀 따져보고 싶다. 흑백 논리 너머 흐릿한 영역을 문학이 끌어안을 수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먼저 자한베글루의 대담은 2019년 이후 진행됐다. 그는 한국에서 벌어진 일을 몰랐을까, 눈감았을까. 앞서 언급한 우리 문단의 ‘어르신’들은 이제는 시인 고은을 복권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복권의 권한은 이 시대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시민 법정에 있다. 대중 정서법 말이다. 어느 누구도 고은 시인을 퇴출해야 한다고 한 적이 없다. 시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젊은 독자들의 날카로운 윤리적 감수성이 두려운 문학 출판사들이 알아서 시인을 피해왔을 뿐이다.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지만 시인의 추락 속도도 석연치 않았다. 돌이켜보면, 시인에 대한 과도한 칭찬과 그 반대편의 완강한 부정 사이에서, 정작 시인의 문학적 액면에 대한 이해는 소홀히 한 채 큰 하자가 발생했다고 하니까 서둘러 흔적 지우기에 나선 건 아닌가.

시인의 복권 여부는 누구도 점치기 어렵다. 복권되든 사라지든 남는 문제는 결국 과오 있는(있다고 여겨지는) 예술가의 예술작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느냐일 것이다. 다시 한번 안타깝게도 이 문제야말로 답이 어렵다.

40대부터 70대까지 다섯 명의 시인·평론가들에게 시인 고은과 그의 예술을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물었다. 교과서 삭제 같은 흔적 지우기는 지나치다는 의견이 많았다. 물론 이런 전문가들의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계간 자음과모음 지난해 가을호에 발표한 ‘예술가로부터 예술을 분리해낼 수 있는가?’에 유익한 논의가 많은 것 같다. 구불구불한 논의를 거쳐 신형철이 도달한 결론은, 상식적이지만 그래서 설득력 있는, 섣부른 작품 삭제와 과오 용인 모두에 저항하면서 답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앞만 보고 내달리는 사이 무엇이 뒤에 남았는지 궁금한 이들이 읽어봤으면 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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