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도 신중 접근 주문, 언론중재법 폐기해야

중앙선데이

입력 2021.09.25 00:21

지면보기

755호 30면

문 대통령 “문제점 충분히 검토될 필요”  

문체부 장관도 ‘말 안 된다 느꼈다’ 제동  

여당, 강행처리 대신 법안폐기 결단해야

“지금 언론이나 시민단체, 국제사회에서 이런 저런 문제 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들이 충분히 검토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한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충분한 검토’란 언급을 통해 “개정안 처리에 신중해달라”는 주문을 여당에 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의 방미를 수행했던 핵심 친문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발언도 주목된다. 특파원 간담회에서 “민주당의 개정안을 처음 봤을 때 ‘말이 안 된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큰일 난다’고 반대했다”고 말한 것이다. 황 장관은 “청와대와 정부도 개정안 통과에 부담을 느낀다. 정부가 할 일은 언론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란 말도 했다.

정부 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가 “언론중재법은 헌법상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낸 데 이어 문 대통령이 ‘충분한 검토’를 주문하고, 언론 주무 부처 수장인 문체부 장관도 “말이 안 되는 법”이라 발언했다면 언론중재법은 폐기하는 게 상식일 것이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은 내일(26일)까지 야당과 합의가 불발되면 27일 본회의에서 법안을 강행 처리하겠다고 한다.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민주당은 지난달 법안 통과를 시도했다가 국내외 언론·인권 단체와 야당의 반발이 거세자 법안 처리를 이달 27일까지로 미루고, 여야 ‘8인 협의체’를 구성해 중재안을 찾기로 했다. 사회 각계의 다양한 의견 수렴 없이 8인 협의체 논의만 내세운 것부터 문제가 많았다.

게다가 민주당이 8인 협의체에 들고나온 개정안은 말만 개정일 뿐 내용은 더 ‘개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당이 협상을 위해 이런 개정안을 만든 것인지 의심스럽다. 개정안은 ‘고의·중과실에 따른 허위·조작 보도’ 조항을 삭제하는 대신 “법원은 언론의 ‘진실하지 아니한 보도’에 따라 재산상 손해를 입은 경우 징벌적 손해 배상이 가능하도록 한다”라는 규정을 추가했다. ‘허위·조작 보도’ 규정을 빼는 척하면서 더욱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진실하지 아니한 보도’란 문구를 넣어 징벌적 손해배상의 범위를 더욱 넓혀놓았다. 이에 따르면 ‘진실하지 않은 보도’란 사실만 원고가 입증하면 징벌적 손해가 성립되고, 피고인 언론사는 ‘고의·중과실’이 없었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개정안은 징벌적 손배액도 ‘5000만원 또는 손해액의 3배 이내 배상액 중 높은 금액’으로 수정했다. 이 역시 기존안보다 후퇴한 개악이다. 손배액 상한을 기존의 5배에서 3배로 줄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한선을 5000만원으로 못 박아 배상액을 오히려 높인 셈이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또 언론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은 유지한 채 공익을 위한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배 면책 규정은 삭제해버렸다.

결국 민주당의 개정안은 가짜 뉴스 박멸이란 미명하에 자신들에게 불리한 뉴스를 규제하겠다는 꼼수일 뿐이다. 월성 원자로 조기 폐쇄나 울산시장선거 개입, 이스타 항공 사태같이 현 정권 관련 의혹 보도를 원천 봉쇄하려는 속셈으로 언론 자유를 뿌리째 말살하려는 파시즘이나 다름없다.

120여 회원국을 가진 국제언론인협회(IPI)와 세계신문협회(WAN), 국제기자연맹, 국경없는기자회도 언론징벌법을 공개 비판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정부·여당에 서한을 보내 법안의 수정을 요구했다. 민주당은 이제라도 정부와 청와대, 인권위의 우려 표명과 국제사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언론중재법을 폐기하는 게 옳다. 언론 자유를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악법은 문구 몇 개 고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이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려면 당장 언론재갈법 강행 처리 입장을 철회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