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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학이 추적한 위인들의 고질병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55호 21면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이지환 지음
부키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출신의 전직 육군 장교시군요, 최근에 일을 그만두셨죠? 파병지는 바베이도스였고요.” 셜록 홈스의 소설과 영화엔 흔히 나오는 장면이다.

이지환 건국대 병원 정형외과 전문의는 “의학은 한 편의 추리다. 통증이라는 사건을 안긴 가해자인 질병을 탐정처럼 수색해 나간다”고 했다. 셜록 홈스를 쓴 아서 코넌 도일도 의사였다. 도일은 자신의 스승인 조지프 벨 박사를 모델로 홈스라는 인물을 창조했다. 벨 박사는 바베이도스에 다녀온 스코틀랜드 전역 장교를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뛰어난 추리를 했다. 관찰력이 좋고 상식도 많았지만 의학 지식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책은 병으로 고생한 유명인들이 실제는 어떤 질환이었는지 추리한다. 세종대왕을 비롯해 가우디, 도스토옙스키, 모차르트, 로트레크, 프리다 칼로, 니체, 모네, 밥 말리 등이다. 모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천재들인데, 정확한 병을 몰라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저자는 “질병은 악질 범죄자처럼 이들을 괴롭혔다”며 “이들 삶을 단서 삼아 탐정의 시각으로 질병을 잡아 보자”고 제안한다.

러시아 화가 바실리 페로프가 1872년에 그린 도스토옙스키 초상화. [사진 부키]

러시아 화가 바실리 페로프가 1872년에 그린 도스토옙스키 초상화. [사진 부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도박꾼이었다. 독일의 카지노가 이 VIP 고객을 기리는 기념상을 세웠을 정도다. 노름빚을 갚기 위해 쓴 소설도 있고, ‘노름꾼’이라는 제목의 소설도 썼다. 그의 소설에는 간질에 대한 묘사도 많다. 노름과 간질은 관련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간질 발작 환자는 흥분신경 전달물질이 많아 도박이 주는 자극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천재 철학자 니체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매독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철학자여서 신의 저주를 받았다는 종교계의 목소리도 컸다. 저자는 니체가 매독 환자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한다. 신경 매독 환자는 식욕이 없고, 팔다리를 심하게 떠는데, 니체는 폭식했다. 그는 편지를 쓰고 피아노를 쳤다. 니체의 병은 뇌종양이라고 진단한다. 종양이 자라면서 뇌와 신경을 압박했고, 어지럼증과 성격 변화 등을 초래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35세에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의 죽음은 드라마틱하다. 신분을 숨긴 누군가의 의뢰로 장송곡을 쓰다가 세상을 떴다. 모차르트를 시기한 누군가가 그의 정신을 무너뜨리려 레퀴엠을 의뢰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독살당했다는 음모론도 많았다. 모차르트에 앙심을 품을 만한 안토니오 살리에리 궁정 악장이 용의자로 지목됐다.

저자는 모차르트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설을 의학 지식으로 반박한다.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의 질시가 아니라 연쇄 구균 감염 후 사구체신염으로 사망했다고 본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뜬 1791년 전후 부종으로 사망한 사람이 유독 많았다. 당시 고열을 동반한 세균성 감기가 유행했는데, 모차르트처럼 허리 통증이 동반된 부종 증세가 있었다.

가우디는 자신이 지은 건물 곳곳에 뼈와 해골을 형상화했다. 어릴 때부터 심한 관절염으로 고생해 뼈에 탐닉했다. 그를 괴롭히고 한편으로 위대한 예술을 만들게 했던 관절염은 정확히 어떤 것이었을까. 저자는 가우디 사망년도가 1858년이란 데 주목했다. 와인 애호가에게 익숙한 해다. 와인이 맛있는 해는 일조량이 많고 더운 해다. 더운 날씨에 많이 걸리는 관절염은 반응성 관절염이다. 그러나 저자는 가우디의 관절염은 반응성이 아니라 소아기 특발성 관절염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했다.

저자는 당시의 의학 수준, 시대상, 역사 문헌, 일기, 초상화 등을 통해 추리한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세종의 강직성 척추염을 추측하는 논문을 쓰기도 했다. 쉽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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