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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뚫고 EU·유로화 안정 이끈 외교무대 ‘철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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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5호 15면

16년 만에 퇴임하는 메르켈

‘무티(Mutti·엄마) 리더십’으로 잘 알려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6년 만에 스스로 물러난다. 오는 26일 치러지는 독일 연방의회의원 선거에 총리 후보로 출마하지 않기로 오래전 약속했기 때문이다. 헬무트 콜과 함께 독일 최장수 총리 반열에 오르게 된 메르켈은 무티뿐 아니라 ‘철의 여제’라고도 불린다. 총선 후 차기 총리가 선출될 때까지 임기를 마무리하게 되는 메르켈의 정치적 족적을 살펴본다.

독일 총선이 치러졌던 2005년 9월 18일 저녁에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16년 재임을 위한 초석이 놓였다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메르켈 총리의 등장은 그만큼 의외였다. 당시 메르켈을 총리 후보로 내세운 중도 우파 기민·기사당 연합은 35.2%를 득표해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끌던 중도 좌파 사민당(34.2%)을 간발의 차이로 따돌렸다. 연정 협상 과정은 매우 힘들었지만 그해 11월 22일 메르켈은 독일 첫 여성 총리에 선출됐다.

스스로 퇴임, 후임자 결정에 관여 안 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난 21일 슈트랄준트에서 열린 기민·기사당 연합의 총선 유세 집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난 21일 슈트랄준트에서 열린 기민·기사당 연합의 총선 유세 집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동독 출신 물리학 박사인 메르켈은 총리로 선출되기 전과 후에 모두 정치권과 언론을 비롯, 학계와 외국에서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기민·기사당 연합과 사민당 간 좌우 대연정 하에서 메르켈 총리는 내치 분야는 어렵게 꾸려 나가겠지만 외교 분야에서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할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메르켈은 외교 분야에서 오랫동안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비판론자들도 메르켈이 헬무트 콜 전 총리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독일 국내 정치 그리고 그것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 유럽 정책과 관련해 메르켈 정부는 지난 16년간 쉴 틈 없이 숨 가쁘게 달려왔다. 메르켈 정부는 전임 슈뢰더 정부로부터 500만 명이 넘는 기록적인 실업자와 0%의 경제 성장률, 높은 부채율 그리고 유로화의 안정 기준을 명백하게 충족시키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을 승계했다. 여기에다 메르켈 총리의 첫 번째 임기 중에 세계 금융 위기와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채무 위기가 발생했으며 이러한 위기는 메르켈 총리의 두 번째 임기 중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기민·기사당 연합과 자민당 간 2기(2009~2013) 메르켈 보수연정은 그리스나 키프로스 등이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것을 방지하며 유로화에 대한 국제 금융 시장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독일 국내 정치와 유럽 정책을 통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당시 독일 국내외의 많은 사람이 유로화의 실패를 예상했다. 메르켈이 EU와 유로화에 대한 독일 국내에서의 동의와 국제 사회의 신뢰를 얻은 것은 역사적인 업적이라 하겠다.

나는 당시에 재무부 차관으로서 역사적 현장을 직접 경험했다. 국제사회가 유로화의 미래에 대한 신뢰를 독일 연방 총리의 역할 및 성공과 연계시켜 판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도 잘 기억하고 있다.

2005년 총선에서 승리해 독일 첫 여성 총리가 된 앙겔라 메르켈(오른쪽). [중앙포토]

2005년 총선에서 승리해 독일 첫 여성 총리가 된 앙겔라 메르켈(오른쪽). [중앙포토]

2013년 총선에서 기민·기사당 연합은 메르켈의 총리직 수행에 대한 최선의 결과로서 무려 41.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메르켈 총리의 사민당과의 두 번째 대연정(2013~2017)에서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새 부채가 발생하지 않는 균형 잡힌 연방 예산을 달성했다. 이는 메르켈 총리의 역사적 업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시기엔 ‘2015 난민 위기’ 가 발생했다. 메르켈 총리는 터키 그리고 헝가리와 같은 유럽 남동부에 위치한 EU 회원국과 인접국인 오스트리아로 밀려드는 난민 쇄도로 인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목적과 인도주의적 배경에서 100만 명이 넘는 시리아 등의 난민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메르켈 총리의 난민정책을 둘러싼 갈등은 하나의 변곡점으로 작용해서 바이에른주의 기사당과 연방 기민당 간에 격렬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은 난민 정책으로 인한 갈등 국면의 수혜를 등에 업고 모든 주 의회에 진출하더니 급기야 2017년에는 독일 연방 의회에까지 입성했다. EU 차원에서도 난민 정책을 둘러싼 갈등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2017년 총선은 메르켈 총리가 치렀던 4번째 총선인 동시에 마지막 선거였다. 이번에도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이뤘다. 메르켈은 31년간의 연방의회의원으로서 일한 것을 끝으로 더 이상 입후보하지 않을 것이며 총리직도 마지막 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또한 유럽 또는 국제적인 차원에서 어떠한 직책을 맡는 것에 대해서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분명하게 의사를 밝혔다.

마지막 임기 중에도 또 다른 커다란 국내외 도전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미국과 독일 그리고 미국과 유럽의 관계가 그때까지 겪은 적이 없었을 정도로 악화됐으며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로 인해 유럽은 말 그대로 한계 상황을 경험했다. 거기에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사태가 발생했으며 임기 말년에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홍수 피해를 겪었다. 또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드라마와 같은 사건 또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은 시민들의 가치 상실이나 국내외의 권위 실추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조 바이든이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메르켈의 국제적인 명성은 새로운 힘을 얻게 되었는데 조 바이든은 메르켈과 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의 취임과 함께 메르켈은 대결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채택한 다자적 세계 정책에 다시 힘을 실을 수 있게 됐다. 독일과 EU는 미국과 행보를 함께 하지만 동시에 러시아나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독자적인 운신의 여지를 확보하고자 하는 입장을 유지하고자 했다.

독일의 코로나 관리나 홍수 사태 대응, 아프간 상황에 관한 판단 착오는 메르켈 총리의 16년 임기에 명백한 오점을 남겼다. 메르켈이 그동안 이룬 정치적인 업적들을 감안하면 아쉬운 부분이다. 올여름 초까지만 해도 상당수의 독일 국민이 메르켈 총리에 대해서 퇴임의 아픔과 슬픈 마음을 가지는 분위기였지만 현재에는 메르켈이 너무 오랫동안 총리직에 있었다는 인식 또는 임기 말에 더 이상 상황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확연히 늘어난 상태이다. 물론 이것은 현재의 상황이며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메르켈 총리의 16년 임기 중의 공과에 관해 많은 사람이 수긍할 수 있는 일반적인 평가가 나올 것이다.

동독 출신으로 한반도 평화에도 큰 관심

그러나 메르켈 총리가 전임자들과 다른 점은, 선거에 패배하거나 문제가 생겨서 어쩔 수 없이 총리직을 사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떳떳한 상태에서 그만둔다는 것이다. 2005년과 2009년, 2013년과 2017년 4차례에 걸친 총선에서 모두 메르켈 총리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승자였다. 전임자였던 헬무트 콜 총리도 메르켈과 같이 16년간 재임했지만 슈뢰더와의 대결에서 패배함으로써 자리에서 물러났다.

메르켈 총리는 후임자 선정과 관련하여 매우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 왔으며 아르민 라셰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총리와 마르쿠스 죄더 바이에른 주총리 간의 기민·기사당 연합 내 총리 후보 결정을 위한 대결 과정에 있어서도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지 않았다. 또한 26일 치러지는 총선에도 메르켈 총리는 깊게 관여하지 않았다.

동독 출신인 메르켈 총리는 분단 상황인 한반도의 운명을 언제나 커다란 공감과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왔다. 총리 재임 시에 함께했던 한국의 모든 대통령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교류도 시도했다. 경제와 기술(디지털 기술 포함) 분야에서 한국이 일궈낸 성과와 G20 틀 내에서의 한국의 역할을 메르켈 총리는 늘 호감과 놀라움을 가지고 주시해 왔다.

나는 오랫동안 독한 의원 친선협회 회장으로 활동했으며 독한포럼 공동의장으로서 메르켈 총리와 양국 관계에 관해 자주 의견을 나누었다. 동독 출신으로 메르켈 총리는 남북한이 서로 가까워지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고 있다.

번역 : 김영수 한스 자이델 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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