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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도, 유학파도 도전…당신의 상상이 웹소설 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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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5호 10면

[SPECIAL REPORT]
‘비주류 문화’ 웹소설 열풍

웹소설의 세계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필력은 물론 주인공과 또 독자와 밀고 당기는 심리전, 독자와 늘 소통해야 하는 이해력과 순발력까지 갖춘 작가 3명을 인터뷰했다.

① 비가 작가의 웹소설 ‘화산귀환’의 일러스트. ② 필명이 ‘초연’인 서아람 검사. ③ 미국 UCLA 정치학과를 나온 이준기씨.

① 비가 작가의 웹소설 ‘화산귀환’의 일러스트. ② 필명이 ‘초연’인 서아람 검사. ③ 미국 UCLA 정치학과를 나온 이준기씨.

네이버 웹소설 화제의 작가 - 비가   

비가(필명)는 『화산귀환』으로 네이버 시리즈 실시간·일간·주간·월간 랭킹 1위를 기록한, 요즘 가장 핫한 작가다. 『화산귀환』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웹툰이 지난 3월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를 시작하면서 웹소설의 총 누적 매출액은 지난 8일 100억원을 넘어섰다.

전설의 무인(武人)에서 어린아이로 환생한 청명이 망해버린 자신의 문파를 부활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은 소설은 읽기 쉬운 문체와 소위 말하는 사이다 전개, 그리고 섬세한 심리묘사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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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서 자신만의 흐름을 잡는데 집중한다는 작가는 “권 단위로 책을 내던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하루에 한 번은 독자분들을 찾아 봬야 하는 시대가 됐다. 그러다 보니 연재가 길게는 몇 년씩 이어지기도 한다”며 “이 긴 연재 기간 동안 방향을 잃지 않고 안정적인 퀄리티를 유지하려면 체력적인 부분과 정신적인 부분을 관리하면서 지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느 순간 읽을 책을 찾기가 어려워졌을 때 자신의 스토리를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비가 작가는 “과거에 독자로서 작품을 읽었을 때 감명 깊었던 부분보다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에 주목하는 편”이라며 “내 이야기의 시작은 대부분 ‘내가 이 등장인물이라면 차라리 이렇게 할 텐데’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 속 모든 등장인물은 설령 단역이더라도 자신만의 사고방식을 기반으로 창작됐다. 그는 “직접 경험한 사건의 구조를 따오기도 하고, 내 스스로가 특정 상황에서 느꼈던 감정과 기분을 전달하려고 애쓰는 편”이라고 섬세한 심리묘사의 비법을 소개했다.

베테랑 작가로서 커져가는 웹소설 시장에 대한 기대와 바람도 있다. 독자들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그 터를 관리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독자들을 유입시켜 시장의 파이를 키워 나가는 것이 대형 플랫폼이 해야 할 분명한 역할이란 것이다.

그는 "최근 웹소설이 해외시장의 문을 적극적으로 두드리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조율은 대기업이 아니고서는 수행하기 힘든 점이 많다”면서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웹소설 작가를 지망한다면 여러 현실의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작가와 플랫폼이 함께 고민하며 이제 막 걸음을 뗀 작가들, 그리고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작가들에게 안정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작품에 녹인 현장 법지식 - 서아람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듣고, 읽고 상상하는 걸 좋아했어요. 검사가 되어 지방근무를 하게 되면서 이동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게 되었는데, 저의 첫 카카오페이지 출간작이었던 『암흑검사』(2019)는 사실상 KTX 안에서 그 줄기가 전부 완성됐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2013년 검사가 돼 수원지검 공판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서아람 검사(35·변호사시험 2회)는 카카오페이지에서 ‘초연’이라는 필명으로 웹소설을 쓰고 있다. 서 검사는 긴 이동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선택했다.

조선시대 경복궁을 배경으로 사이코패스 왕세자와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가진 궁녀의 쫓고 쫓기는 심리 싸움을 그린 『왕세자의 살인법』은 카카오페이지 연재 즉시 1위를 차지하며 일찌감치 드라마 판권까지 계약 완료되었다. 두 작품 모두 200만 회 넘게 조회됐다.

검사 윤리강령에 따라 스스로 수사한 사건은 작품에 쓰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범죄자들을 만나며 든 생각이나 검사로서의 법학 지식은 자연스레 작품에 녹아든다. 서 검사는 “주력하고 있는 장르가 추리·스릴러·법정물인 만큼, 현실 고증에 충실하고 리얼리티를 살리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다”며 “주변 법조인들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 담당 편집자님의 크로스체킹도 여러 번 거친다”고 전했다.

극적 재미나 모방 범죄 방지, 수사기밀 유지를 위해 일부러 각색하는 부분도 있다. “많은 범죄자들이 ‘에이, 설마’ 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악의를 발현시키며 범죄를 저지른다. 처음부터 악독한 살인범이 아니지만 점점 음험한 사이코패스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왕세자의 모습을 통해 범죄자들에게 경고를 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 검사는 웹소설의 가장 큰 매력으로 접근하기 쉽다는 것과 독자와의 소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꼽았다. 그는 “특별한 기회가 없는 한 독자의 의견을 바로 듣기 어려운 종이책과 달리, 웹소설은 연재 즉시 독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며 “그걸 반영해서 더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 포기하고 그만두고 싶어질 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고 전했다.

대체역사물 작가 된 유학파 - 이준기

“제가 작가가 되어 글을 연재하게 될 줄은 몰랐죠. 아직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UCLA 정치학과를 졸업한 이준기(31) 씨는 유학생활 중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 때마다 웹소설 사이트 문피아에 소설을 올렸다. 해당 글들은 문피아 네티즌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편집자들의 눈에 띈 이씨의 작품은 『영웅: 삼국지』라는 이름으로 정식 유료 연재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문피아 내부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전공인 정치학을 끌어와 『삼국지』를 재해석한 그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창조하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말했다. 역사 마니아였던 그는 『삼국지』와 각종 역사서를 읽으며 “‘기록에 나와 있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다들 능력자 아니었겠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주인공이 아닌 다른 인물들에게도 관심이 갔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삼국지 마니아들만 아는 ‘오광’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의 조카가 훗날 유비의 부인이 됐다. ‘난세에 자신의 조카를 황후로 만들었으면 대단한 처세술을 가졌겠구나’ 생각하고 나만의 상상력을 더했다.”고 전했다.

유학 이후 취업과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이씨는 웹소설 연재 수입으로 생활비를 충당했다고 한다. 그는 “정확한 액수를 밝힐 수는 없지만 감사하게도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금액이 들어왔다”며 “취미로 시작했던 웹소설로 수익을 창출하면서 전업 작가를 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는 이씨는 “카카오와 네이버 등 플랫폼이 이 업계에 뛰어들면서 독자들에게 작품이 노출되기도 쉽고 수익 창출도 쉬워졌다”며 “웹소설 시장 자체가 커지면서 저처럼 웹소설 작가로 전업을 준비하는 사람도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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