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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단신공’과 소액 결제의 결합…웹소설, K콘텐트 보물창고로 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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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5호 08면

[SPECIAL REPORT]
‘비주류 문화’ 웹소설 열풍 

웹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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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이란 온라인 웹에서 처음 볼 수 있는 소설을 말한다. 종이책을 디지털화한 전자책과는 다르다. 웹툰 같은 연재 형식으로, 편당 5분 내로 읽을 수 있는 분량을 100원에 판매한다. 이 웹소설을 읽을 수 있는 플랫폼을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느냐를 놓고 올해 콘텐트 업계가 말 그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 5월 이용자 수 9400만 명, 50여개 언어 서비스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웹소설 플랫폼인 왓패드를 약 6700억원에 사들였다. 카카오도 6월 영문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를 약 6000억원에 인수했다. 작가 수 7만 8000명, 이용자 수 120만 명을 거느린 원조 웹소설 플랫폼 문피아의 경우 1년여의 인수전 끝에 지난 10일 네이버가 36.1%의 지분 취득과 추가 취득 계획까지 공시하며 막판 인수절차를 밟고 있다. 문피아의 김환철 대표는 “오픈 때부터 슬로건이 ‘세계로 미래로 꿈을 위하여’였다. OSMU(원소스 멀티유즈), 해외시장 진출 등 글로벌 트렌드에 발맞춘 사업확장을 위해 시너지를 낼 파트너를 찾은 것”이라고 밝혔다.

서브컬처로 취급되던 웹소설을 놓고 플랫폼 공룡들이 치열하게 다투는 이유가 뭘까. 조회 수 2억 회, 매출 200억원을 돌파한 문피아의 대표 콘텐트 『전지적 독자시점(이하 전독시)』을 영화 ‘신과 함께’ 제작사가 5편짜리 시리즈 영화로 제작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이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OTT시대, 한류 열풍과 함께 K콘텐트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원천 IP(지식재산권) 확보가 화두가 됐고, 웹소설이 원천 IP의 보고(寶庫)로 떠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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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시장 자체도 급성장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웹소설 시장 규모는 2013년 100억원 규모에서 지난해 6000억원 대로 치솟았다. 7년 만에 60배로 성장한 것이다. 7132억원 규모인 일반 단행본 시장을 위협하는 수치다. 현재 활동중인 작가도 2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웹소설 이용자 설문 응답자 중 유료결제 경험자가 72.4%라는 사실은 시장의 잠재력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장르문학, 모바일을 만나다

웹소설의 기원은 이우혁의 『퇴마록』,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로 대표되는 1990년대 PC통신문학이다. 2000년대 귀여니의 『그놈은 멋있었다』 등 하이틴 로맨스 계열이 휩쓴 인터넷소설 시대를 거쳐 2010년대 모바일 세상을 맞아 본격 발아했다. 2013년 포털 사업자들은 트래픽 유입을 위해 네이버웹소설과 카카오페이지라는, 모바일에 최적화된 플랫폼을 열었다. 같은 해 온라인 커뮤니티였던 문피아와 조아라까지 소액결제시스템을 갖추고 플랫폼화하면서 ‘웹소설’이란 용어가 정착되고 시장이 활짝 열렸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내용적으로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꾸준히 발전해온 판타지·무협·로맨스·팬픽(팬이 쓰는 소설) 등 장르문학의 연장선상에 있다. 성별에 따라 로맨스와 판타지로 취향이 뚜렷이 갈리는데, 여성들은 자고 일어나니 중세 유럽의 공주가 되어있다는 설정에, 남성들은 게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차원이동’에 대체로 열광한다. 작품마다 #회귀, #빙의, #환생 등 해시태그로 세부 하위 장르를 나눠 디테일한 취향을 저격한다.

작법 기술도 따로 있다. 순문학처럼 긴 호흡과 묘사, 은유 등 문학적 기법을 통해 주제를 깊이 사고하도록 하는 방식은 지양한다. 대신 짧은 호흡으로 끊임없이 호기심을 유발하며 핵심 정보를 대사와 독백으로 전달한다. 편당 5000자 분량 안에서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뒤 다음 회 결제를 유도하는 ‘절단신공’이 필수다.

흥미로운 건 창작의 영역임에도 작가의 ‘오리지낼리티’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등단 과정 없이 네이버 ‘챌린지 리그’ 등을 통해 누구나 도전할 수 있기에 전문 교육을 받은 작가 지망생이 아니라도 ‘부캐’ 놀이하듯 입문할 수 있다. 드라마로 성공한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작가는 약사고, 8월 론칭한 『왕세자의 살인법』작가는 검사다. 독자였던 작가는 즐겨 읽던 이야기 구조를 빌려와 조금씩 변주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독자는 작가의 명성보다 해시태그로 분류되는 ‘마스터플롯’을 검색의 기준 삼아 ‘독서’가 아닌 ‘접속’을 통해 문학이 아닌 장르를 소비한다.

가장 성공한 웹소설로 꼽히는 『전독시』『나혼자만 레벨업(이하 나혼렙)』『템빨』 등도 판타지 장르 안에서 ‘차원이동’이라는 마스터플롯을 따르고 있다. 현실에서 희망 없는 삶을 살던 주인공 앞에 어떤 세계가 펼쳐지고, 독자는 게임의 법칙에 따라 쾌락을 즐기는 영웅서사가 패턴화됐다. 일정한 패턴 안에서 변주를 즐기는 것이 원래 장르문학의 묘미이기도 하지만, 독자와 작가의 경계가 사라진 웹에서 더욱 활력을 띤다. 예컨대 로맨스물 대표작인 『재혼황후』플롯을 그대로 활용하는 팬픽 커뮤니티가 만들어져, 독자들이 놀이하듯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복제물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상호텍스트성’은 웹소설의 파급력을 높인다. 『웹소설 탐구』를 쓴 유정원 계명대(중국학 전공) 교수는 “복제와 변주로 탄생하는 웹 콘텐트는 원전의 세계를 상호텍스트적으로 이용하기 마련”이라면서 “자투리 시간에 모바일로 뚜렷한 취향을 소비하는 웹소설 독자는 순식간에 몰입해야 하기에 이미 알고 있는 스토리 월드를 변주하는 창작형태를 선호하고 확산도 잘 된다. 아예 낯설고 새로운 이야기는 웹을 통한 현대인의 문화소비 행태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마스터플롯 안에서 변주의 재미

킬링타임용이지만 과거 장르문학처럼 ‘B급’ 취급을 받지 않는다. 최근 열린 국내 최대 책 축제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최초로 웹소설 특별전과 세미나를 개최해 비중있게 조망했다. 민음사의 ‘브릿G’ 등 기성 출판사들도 앞다퉈 웹소설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B급이 A급 영향력을 가진 시장으로 커진 건 자생적인 창작과 소비 생태계를 구축한 인프라의 힘이다. 신문사의 신춘문예, 문예지의 신인상이나 단편소설 공모전 등을 통한 등단절차 없이, 소액결제 시스템을 통해 작가와 독자의 직거래 플랫폼이 열린 것이다. 김준현 서울사이버대 웹문예창작학과 교수는 “기존 장르문학과 근본적 차이는 창작과 출판의 거리가 사라진 것”이라며 “PC통신 문학이나 인터넷 소설처럼 종이책 출판이 최종 목표가 아니라, 웹소설 자체에 판매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출판사의 게이트키핑 역할이 축소됐다. 작가가 스스로 데뷔해 활동할 수 있는 장이 열리니 본격 소설을 추구하는 작가들도 등장하고 있다. 실질적인 등용문이 웹으로 옮겨간 셈”이라고 진단했다. 스스로가 무협소설 작가인 김환철 대표도 “나도 81년에 책으로 데뷔했지만 이제 책으로 만들어지는 시대는 저물고 연재의 시대가 왔다”며 “과거에도 신문 연재소설이 있었지만,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웹 플랫폼을 통해 시장이 비약적으로 커졌다. 경제 활동과 동떨어져 있던 작가라는 직업이 이제 돈을 많이 번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선순환이 시작됐다”고 풀이했다.

상업적으로만 주목받는 건 아니다. 현대인들의 동시대적 현실 인식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역동적인 콘텐트로서 영향력이 높아졌다. 작가들이 통상 필명을 사용해 정체를 밝히지 않기에 표현도 더 과감해졌다. 혼자서만 레벨업을 할 수 있거나(『나혼렙』), 혼자만 게임의 법칙을 안다(『전독시』)는 설정은 반칙을 써서라도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젊은 세대의 현실적 욕망을 투영한다. 궁중 로맨스도 사랑의 완성이 목표가 아니라 황제와 맞짱뜨는 ‘사이다’ 황후를 통해 달라진 젠더 감수성을 학습한다(『재혼황후』).

‘차원이동’이라는 마스터플롯도 기존 판타지 장르의 현실도피를 넘어선다. 김준현 교수는 “판타지물의 영웅서사가 희생 코드 대신 세상의 구원과 개인의 성공을 합치시키고 있다. 로맨스물도 백마 탄 왕자나 캔디형 주인공이 급격히 쇠퇴하고 여성의 주체성과 직업 정체성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웹소설은 가장 21세기적인 콘텐트”라고 주장했다.

IP비즈니스의 씨앗으로 잠재력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 ‘해를 품은 달’ ‘구르미 그린 달빛’, 영화 ‘조선마술사’ ‘검은 사제들’ 등 웹소설 원작의 영상물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마블의 ‘어벤저스’ 시리즈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오리지널 IP로 실사영화·테마파크·뮤지컬까지 확장되는 것처럼, 오리지널 IP를 확보하면 크로스미디어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콘텐트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일 수 있다. 할리우드에서 양적으로 전체 영화의 10%에 불과한 히어로물이 수익 규모로는 80%를 차지한다는 사실이 그 확장성을 입증한다.

영화 ‘신과 함께’를 만든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처스 대표가 두 번째 글로벌 프로젝트로 『전독시』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다. “소설을 읽고 본능적으로 그림이 그려졌다”는 원 대표는 “지구가 거대한 힘에 의해 리셋되고 있다는 『전독시』의 설정은 팬데믹을 겪은 전세계인이 공감하는 소재이기에 동양적 세계관을 가진 ‘신과 함께’보다 훨씬 대중적”이라며 “어벤저스 같은 능력자가 아니라 ‘언더독’인 주인공이 지구를 구한다는 설정도 매력적이다. 킬링타임용이라고 하겠지만 ‘이생망’이라며 낙담하는 젊은이들에게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전했다.

최근 두드러진 현상은 웹툰화다. 카카오의 『나혼렙』이 웹툰화되어 글로벌 누적 매출 300억원 돌파 후 미국에서 드라마화를 추진 중이고, 네이버도 『전독시』를 비롯해 『화산귀환』『튜토리얼 탑의 고인물』『중증외상센터:골든 아워』 등을 웹툰화했다. 이 또한 영상화를 위한 포석이다. 네이버의 『재혼황후』, 카카오 『사내맞선』등 최신 화제작들도 웹툰화에 이어 드라마화가 결정됐다.

특히 왓패드 인수로 전세계 10억개 이상의 IP를 보유한 네이버는 지난 6월 왓패드 웹툰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167개의 영상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영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나섰다. 김준현 교수는 “과거 OSMU의 소스로 주목받던 웹툰은 이제 1인 콘텐트가 아닌 고비용 장르가 됐고, 그 전 단계로 웹소설의 웹툰화가 일반화되고 있다”면서 “영화를 구상하는 시나리오 작가들도 공중분해 위험이 없는 웹소설을 선택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급격한 시장 확대에 따른 부작용도 있다. 지난 16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웹소설 공모전 출품작의 저작권 계약 갑질 혐의에 대한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거대 플랫폼의 과도한 장악으로 시장 불균형과 작가 양극화 현상이 우려되는 지점이다. 플랫폼에 대한 제도적 정비가 시급한 이유다.

박인성 부산가톨릭대 교수(한국문학전공)는 “순문학의 경우 출판사 영향력에 한계가 있지만 웹소설은 플랫폼의 홍보기획에 오롯이 좌우되는 구조라 그 영향력은 견제하기 어렵다”면서 “플랫폼이 구획한 영역 안에서 작가도 독자도 주류 장르에만 몰리게 되니 장르 다양성이 파괴되는 연쇄작용까지 발생하고 있다. 조만간 시장 공정성과 작가 처우 등 여러 관점에서 플랫폼 정비가 화두에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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