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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여성 가구 333만 시대, 지원책은 ‘기승전-육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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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5호 06면

싱글 여성 정책, 다음 정부도 없다? 

여성 1인 가구가 급격히 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5일 발표한 ‘2021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 1인 가구는 333만9000가구로 2010년(221만8000가구)에 비해 10년 만에 1.5배로 늘었다. 20년 전보다는 2.6배나 증가했다. 전체 가구 중 여성 1인 가구 비율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010년 12.8%였던 여성 1인 가구는 지난해엔 전체 2092만7000가구 중 16%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지금의 증가 추세라면 10년 뒤엔 전체 가구의 20%, 즉 다섯 가구 중 한 가구는 여성 1인 가구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반면 2010년 25만4600건이었던 초혼 건수는 지난해엔 16만7000건으로 10년 새 34.4% 감소했다. 혼자 사는 여성은 계속 늘고 있는 반면 결혼하는 여성은 되레 감소하면서 여성의 ‘싱글 라이프’가 문화 트렌드 수준을 넘어 인구학적 추세로 자리매김하는 양상이다. 특히 서울 등 대도시에서 여성 1인 가구 증가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2019년 서울의 여성 1인 가구 비율은 17.7%로 전국 평균치를 크게 상회했다. 20~30대 젊은 여성들이 ‘직주근접’을 위해 도시 거주를 선호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2015~19년 여성 1인 가구의 연평균 증가율도 20대 여성이 7.8%로 가장 높았다.

이처럼 여성 1인 가구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지만 여성이 혼자 살아가기엔 사회적 환경과 조건이 여전히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당장 주거보장제도부터 불이익을 받고 있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는 특별 공급을 통해 청약을 신청할 수 있지만 혜택은 결혼 예정자나 신혼부부, 자녀가 있는 사람에게만 돌아갈 뿐이다. 어렵게 주택을 구했더라도 자금 마련이 쉽지 않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여성 1인 가구주 이지은(29)씨는 “한국주택금융공사 등이 제공하는 주택담보대출 제도는 부부 합산 소득을 기준으로 삼아 1인 가구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기 일쑤”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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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에 늘 노출돼 있다’는 두려움도 여성 1인 가구를 옥죄는 요인 중 하나다. 1인 가구가 많이 모여 있는 오피스텔이나 원룸촌에서 여성 대상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33세 이하 여성 1인 가구주가 범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같은 연령대의 남성에 비해 2.3배나 큰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주거 침입 피해를 당할 가능성은 무려 11.2배나 높았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은아 이화여대 교수는 “통계상 여성 1인 가구의 주거비 부담이 남성 1인 가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것은 여성들이 범죄 위험 노출과 그에 따른 심리적 불안감을 적잖은 비용을 통해 해소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오늘날 젊은 여성들이 홀로 감내해야 하는 불안감과 고립감은 향후 이들이 중장년층이 돼서도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일시적 병리 현상으로만 취급해선 안 될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은 이 같은 사회 변화의 추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차기 대선주자들도 대선을 앞두고 여성 공약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여성’ 그 자체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육아휴직과 양육비 지원 등 육아·돌봄 제도 개선을 통한 전통적인 가족 구조의 유지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싱글 여성에 대한 정책의 경우 자궁경부암 시술 지원과 성범죄 예방 대책 외엔 뚜렷한 공약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달 16일 성평등 정책을 발표하면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보장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도 여성 안심 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공약 외엔 경력 단절 여성을 고용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겠다는 등 육아 대책에 집중하고 있다. 여성 대선주자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여성 일자리 개선을 언급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여권보다 경선 버스가 늦게 출발한 야권의 경우 여성 1인 가구 대책은커녕 여성 복지 공약을 선보인 후보도 유승민 전 의원과 원희룡 전 제주지사 등 두 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은 “성차별·성범죄 외에도 우울증과 주거 불안 등 여성을 둘러싼 의제들이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는데 정치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라며 “여성 문제를 ‘기승전-육아’로만 접근하면서 싱글 여성 1인 가구는 정책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는 “여성 일자리 정책만 봐도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이란 문구가 항상 대전제처럼 따라붙는다”며 “자녀 유무와 상관없이 여성이란 한 인간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정책이 뒷받침돼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최근 청년 문제와 고령 1인 가구 대책에 관심을 기울이고는 있지만 여성 1인 가구, 특히 급속히 늘고 있는 20~30대 젊은층 싱글 여성의 1인 가구 증가에 대해서는 별도의 대응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문이다. 장민선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드러났듯 여성의 일자리나 임금 수준은 남성보다 열악한 상황이고, 이는 여성 1인 가구주가 남성보다 경제적 독립과 사회적 안정을 누리기 힘들다는 의미”라며 “하지만 이런 약한 고리가 청년이나 독거노인 등 기존 의제에 묻혀 거의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실제 기업 현장에 가보면 직급이나 임금 측면에서 남녀 차이 못지않게 결혼 후 자녀가 있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 간의 격차도 상당하다”며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여성이란 단일 이슈로만 접근할 경우 지금의 남녀 간 젠더 이슈가 향후 여·여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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