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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너는 안 그래?”…집이 반격 노리는 전쟁터 같나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104)

연휴 마지막 날 지인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 코로나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부쩍 자주 만나는 맑은 하늘과 더불어 집이라는 공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죠. 자연과 가족의 공통점은 너무 잘 알지만 또 너무 익숙해 그 소중함을 잊고 살았던 것이 아닐까요?

얼마 전 한 부부와 대화 코칭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부부코칭을 진행할 때 공간에 들어서는 부부의 표정과 분위기에서 지금의 상황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할 말이 많은 듯한 아내의 표정과 불만스러운 남편의 표정이 동시에 보입니다.

서로 틈을 노리는 말하기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상대가 말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지 부부의 대화 패턴을 들어보면 그 집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사진 pixnio]

서로 틈을 노리는 말하기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상대가 말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지 부부의 대화 패턴을 들어보면 그 집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사진 pixnio]

시작부터 힘든 상황을 말하는 상대에게 “야, 나도 힘들어” 혹은 “너는 안 그러냐?”며 서로가 이야기의 주제를 자신으로 돌립니다. 강스파이크가 난무하며 대화가 아닌 각자의 성토 대회로 이어집니다.

때때로 위로가 필요한 일상에서 부부는 서로 위로가 되어 주기보다 위로받는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사실 상대가 가진 문제에 정확한 해결책을 제시할 순 없어도 진심으로 공감하며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쉬운 것 같지만 막상 현실에서 실천하기 어려운 방법이죠.

방송인 정형돈은 힘들던 시기에 선배 박미선으로부터 큰 위로를 받았던 이야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진짜 위기에 빠졌을 때 누구와 전화하면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싶은 때 대선배인 박미선 씨가 떠오르더라는 겁니다. 당시 정말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1시간 가까이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박미선 덕분에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고, 아직도 그때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죠. 박미선 역시 별다른 것을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그래’, ‘그렇구나’ 하며 그저 들어주었다고 합니다.

대화의 주제를 나로 돌리며 서로 공격권을 갖고자 틈을 노리는 말하기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상대가 충분히 말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지 우리 부부의 대화 패턴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을 벗어나 일정 기간 나만의 공간에서 나를 찾아보는 프로그램에 발레리나 윤혜진 씨가 출연하고 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그녀는 공들여 단장하고 7년 만에 중학교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죠. 다들 기혼이었던 친구들은 ‘나 혼자만의 공간’이 생긴 윤혜진을 부러워했습니다.

대화를 할 때 한 번쯤은 딱 10분 만이라도 나의 말을 참고 먼저 들어주는 것, 익숙하던 대화 패턴에서 벗어나려 노력해 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사진 Remi Walle on Unsplash]

대화를 할 때 한 번쯤은 딱 10분 만이라도 나의 말을 참고 먼저 들어주는 것, 익숙하던 대화 패턴에서 벗어나려 노력해 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사진 Remi Walle on Unsplash]

이런저런 대화 끝에 윤혜진이 유튜브 채널에서 선보이기도 한 남사친·여사친 콘셉의 ‘상황극 부부 대화법’이 대화 주제에 올랐습니다. 아내가 남편의 여사친(여자사람친구)으로 빙의해 대화를 나누는 겁니다. 예를 들어 “너네 와이프는? 결혼한 건 어때? 네가 꿈꾸던 그런 생활이야?” 이런 식으로 물어보는 거죠. 그간은 쑥스러워 깊은 대화를 대놓고 한 적이 없었는데 그렇게 대화를 시작하자 남편도 진심으로 대화를 해주더라는 겁니다. 친구들 역시 깊은 대화는 잘 안 하게 된다며 공감했고, 서로 마음으로 잘 알겠지 하고 넘기게 된다는 말을 주고받았죠. 누군가는 부부끼리 무슨 상황극이냐며 반색하기도 하겠지만 더 좋은 관계를 위한 노력에 많은 사람이 댓글을 통해 공감했습니다.

부부가 아닌 친구가 되면 대화의 방식이 조금은 달라지는 듯합니다. 아내나 남편에게 말 못하는 속 깊은 이야기가 더 쉽게 나옵니다. 같은 내용이어도 너만 힘드냐에서 그렇구나,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지와 더불어 때로는 어떻게 그러냐며 같이 흥분해 줍니다. 방어태세를 갖추고 반격할 타이밍을 노리는 것이 아닌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인생의 동지에는 여러 부류가 있겠지만 이런 때면 부부보다는 친구가 더한 인생의 동지로 여겨집니다.

가정은 공격하고 방어해야 하는 전쟁터가 아닌데 누군가에게는 나도 모르는 사이 전운이 감도는 공간이 되어 있지는 않을까요? 한 번쯤은 딱 10분 만이라도 그렇구나 하고 나의 말을 참고 먼저 들어주는 것, 익숙하던 대화 패턴에서 벗어나려 노력해 보는 것은 어느 부부에게나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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