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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한우물 파기 30년…배움에 끝이 없는 댄스스포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신영의 쉘 위 댄스(64)

윌슨 피켓의 ‘천 가지 춤의 고장(Land of Thousand Dances)’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 제목 만큼 춤의 종류는 무수히 많다. 우리나라 춤만 해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여러 가지가 있다. 지구상에 200개국이 넘으니 각 나라마다 춤이 다르고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야말로 춤은 1000가지도 훨씬 넘는다.

내가 댄스스포츠를 배우고 영국에서 국제지도자자격증까지 따 왔을 때는 마치 춤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기고만장했었다. 오만이었다. 일본 영화 ‘쉘위댄스’의 여주인공 쿠사카리 타미요를 인터뷰할 일이 있었다. 댄스스포츠 영화로는 가장 잘 만든 영화였고 댄스 선생 마이로 나온 그녀는 댄스스포츠 동호인에게는 신비스러운 존재였다. 30분간 배정된 인터뷰 시간에서 첫 질문은 “댄스스포츠를 얼마나 배웠나요” 였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발레를 했을 뿐 댄스스포츠는 따로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보여준 동작도 발레에 다 나오는 동작이고 스텝이라고 해 봐야 별로 어려울 것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고 했다. 댄스스포츠 중 어느 춤을 좋아하느냐 등 개인적 취향을 묻는 질문을 준비하고 갔다가 다음 질문을 잇지 못하고 쩔쩔매다가 나왔다.

춤을 체계화해 전세계인이 공통으로 즐길 수 있게 만든 것이 댄스스포츠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춤을 체계화해 전세계인이 공통으로 즐길 수 있게 만든 것이 댄스스포츠다. [사진 Wikimedia Commons]

발레는 댄스스포츠 중 모던댄스의 모태다. 모던댄스 챔피언급 선수 중에는 발레를 배운 사람이 많다. 김연아 선수처럼 피겨 스케이팅을 하는 사람도 발레를 배웠다고 들었다. 중세 유럽 프랑스에선 루이 14세때부터 이미 왈립 발레학교를 만들었다. 발레 강국 러시아에서는 전국적 발레 경기 대회가 끝나면 상위급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는 그대로 발레계로 머물지만, 그 다음 급 선수는 댄스스포츠 쪽으로 스카우트되어 이름을 날린다.

댄스스포츠가 댄스의 모든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자이브·룸바·차차차·삼바·파소도블레까지 라틴댄스 5종목, 왈츠·탱고·퀵스텝·폭스트로트·비에니즈 왈츠까지 모던댄스 5종목에 사교춤으로 슬로 리듬댄스가 들어가 있을 뿐이다. 그나마 룸바·차차차는 템포가 느리고 빠른 차이로 다를 뿐 뿌리가 같다. 왈츠와 비에니즈 왈츠도 마찬가지고, 4박자 춤으로 뒤늦게 만들어진 퀵스텝과 폭스트로트도 그렇다.

체계화하기를 좋아하는 영국인이 20세기 초에 이 문제에 접근했다. 나라마다 다르고 지방마다 달라 같이 춤추기 어렵다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춤을 체계화해 전세계인이 공통으로 즐길 수 있게 만든 것이 댄스스포츠다.

이렇게 체계화해 만든 책이 라틴댄스는 월터 레어드의 ‘테크닉 오브 라틴댄싱’, 모던댄스는 가이 하워드의 ‘테크닉 오브 볼룸 댄싱’ 등이다. 이 책은 댄스계의 바이블 대접을 받는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댄스스포츠 서적의 대부분은 이 책들을 그대로 또는 그림이나 사진을 약간 덧붙여 만든 책이다. 종목별, 남녀별, 휘겨별, 스텝별로 차트식으로 잘 설명되어 있다.

그 외에도 서양 춤은 무수히 많다. 당장 우리나라 댄스 파티에서도 즐기는 서양 춤으로는 클럽 댄스인 살사·바차타·메렝게 등이 꼽힌다. 댄스스포츠처럼 국제기구를 통해 체계화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터벅이나 블루스 등도 멋진 춤인데 댄스스포츠처럼 체계화해 국제화시키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힙합, 브레이크 댄스 등도 배우고 싶지만 이미 나이가 많아 배우기에 적합하지 않다. 춤을 배울 때 나이와도 어울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춤들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트위스트처럼 유행이 지나면 쇠퇴할 춤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성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생명력이 긴 편이다.

댄스스포츠가 여전히 매력있는 이유는 항상 더 배울게 있다는 점 때문이다. [사진 pxhere]

댄스스포츠가 여전히 매력있는 이유는 항상 더 배울게 있다는 점 때문이다. [사진 pxhere]

나이에 맞는 춤이란 몸에 무리가 없는 춤을 말한다. 탭댄스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젊은 사람 위주로 가르치는 탭댄스는 방향 전환을 급히 하는 역동작이 많아 무릎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중년 이후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춤이다.

내가 춤을 배웠다고 하자, 아무 음악이나 틀어 놓고 춤 솜씨 좀 보여 보라는 자리가 많았다. 그런데 댄스스포츠는 커플 댄스라서 나 혼자로는 도무지 춤 솜씨를 보여 줄 재간이 없다. 댄스스포츠도 종목별로 어울리는 음악이 있다. 아무 음악이나 틀어 놓고 거기 맞추라는 건 춤을 모르는 사람이다. 장소도 그에 맞춰야 하고 복장도 갖춰야 한다. 그래서 “춤 좀 춰 봐라” 또는 “가르쳐 봐라” 라고 하면 단호히 거절한다. 복장만 해도 복장을 갖추고 추는 것과 그냥 아무 옷이나 입고 추는 것은 격이 달라 보인다.

댄스스포츠를 30년이나 했는데 지금도 배운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이 많다. 다 배우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예술에서 ‘다 배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물론 남을 가르치기도 했고 선수로서 경기대회에 여러 번 출전해보기도 했다. 발레가 끝이 없듯이 댄스스포츠도 그렇다. 댄스를 위한 몸도 유지해야 하고 경기 대회 출전을 위한 새로운 안무도 익혀둬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스스로도 안무를 짜고 혼자 연습할 수는 있지만, 자기는 모르는 순간적인 동작이 잘못된 자세, 늘 추던 루틴보다는 새로운 루틴을 배워 보는 것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 교본으로 체계화한 휘겨는 그야말로 베이직 휘겨이고, 경기 대회에서 사용하는 루틴은 응용 동작이 많기 때문에 책만으로는 부족하다. 다른 춤을 했다면 10년이면 ‘도사’ 소리를 들을만 한데 댄스스포츠를 여전히 돈을 내고 배우고 있다면 어떤 면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더 배울 것이 항상 있고 그래서 댄스스포츠가 여전히 매력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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