롭 갈레라니 블리자드 총괄디렉터 인터뷰
“성역(Sanctuary)에서 뵙겠습니다.”
2000년대 초반 게임 커뮤니티에서 이 말은 가슴 뛰는 인삿말로 통했다. 성역은 게임 '디아블로II' 속 세상. '디아블로II에서 만나 게임하자'는 의미의 은어였다.
왕년의 ‘갓겜’ 디아블로II가 21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다.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는 디아블로II를 현대적 그래픽으로 다시 만든(리마스터) ‘디아블로II: 레저렉션’을 24일 글로벌 출시했다. 디아블로II는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블리자드를 글로벌 게임사 반열에 올린 액션 롤플레잉(역할수행)게임. 야만용사, 강령술사 등 다양한 직업의 영웅이 돼 디아블로, 메피스토 같은 대악마를 처치하는 스토리에 몰입한 이들이 많았다. 2000년에만 글로벌 275만장 이상 판매 돼 그 해 기네스북에 가장 빨리 많이 팔린 컴퓨터 게임으로 등재됐다. 국내에서도 누적 200만장 이상이 팔렸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디아블로 팬이란 건 잘 알려진 사실. 아내 소유진씨가 최근 백 대표 이름으로 된 게임 초대장을 공개하며 “24일에 바쁘다 하더니 성역 가는 스케줄인가”라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됐다.
중앙일보는 지난 15일 디아블로II: 레저렉션 개발을 담당한 롭 갈레라니 블리자드 총괄디렉터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갈레라니 디렉터는 “리마스터이지만 기존 게임의 정통성을 살리는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갈레라니 디렉터는 20년간 블리자드 등에서 개발자로 일했다.
- 21년 전 인기 게임을 다시 만들었다.
- “나도 예전에 정말 재밌게 즐겼던 게임이다. 정해진 답 없이 자유롭게 내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게 매력적이었다. 이번 리마스터 과정에서도 가장 큰 목표는 과거에 느꼈던 재미를 살리는 것이었다. 그래픽은 최신 방식으로 현대화했지만 나머지 코드는 과거의 것을 많이 살려서 썼다. 괴물을 잡을 때 느낌, 물건이 떨어질 때의 감각 등 기존 디아블로II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신규 이용자를 유입하기 위해 게임의 보여주는 방식은 조금 다르게 했지만 그렇다고 게임을 쉽게 혹은 다르게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다.”
- 원작과 같은 점은 뭐고 다른점은 뭔가.
- “기본 구조는 같다. 그래픽은 달라졌고, 이용자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시스템도 추가했다. 더 많은 사람이 함께 게임하기 편하도록 시스템도 개선했다.”
디아블로II: 레저렉션은 요즘 게임과 비교하면 ‘불편한 게임’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출시된 RPG 게임 대부분이 채택한 ‘자동전투’ 기능이 이 게임엔 없다. 자동전투는 이용자 편의를 위해 인공지능이 알아서 전투를 수행하고 캐릭터의 레벨을 올리는 시스템이다.
- 이용자 편의성을 높였다면서 왜 자동전투는 채택하지 않았나.
- “이 게임은 그런 게임이 아니다. 직접 게임 속 세상을 탐험하고 경험하고 즐기는 게임이다. RPG 게임의 본질은 이용자가 스스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있다. 어떻게 자기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어떤 괴물을 잡을지를 선택하는 게 재미다. 우린 특정 단계가 되면 뭘 쓰는게 가능한지 문만 열어준다. 게임은 주어진대로 받아들여야하는 책이나 영화와는 다르다. 불편하더라도, 이 게임 원작의 매력을 살리고 싶었다.”
- 요즘 게임 중엔 돈을 많이 쓰면 이기는 ‘페이 투 윈(pay to win)’ 비즈니스모델(BM)을 택한 경우가 많다. ‘확률형 아이템’도 많다. 디아블로II: 레저렉션은 어떤가.
- “우리는 그런 BM을 채택할 생각이 없다. 우리 게임의 핵심은 각각 열심히 뛰어다니며 몬스터를 잡고 능력치를 올려 성장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갑자기 돈 내서 아이템을 샀으니 빠르게 성장하는 식의 경제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은 전혀 없다. 아이템 사용방식도 과거와 다르게 할 생각이 없다.”
- 요즘 게임 이용자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얘기한다. 개발과정에서 어떤 점을 반영했나.
- “20년 넘은 게임이라 전 세계에 팬이 많다. 시범서비스를 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물약이 나올 때 배경소리까지 원작과 세세하게 비교하는 등 팬들의 주문이 많았다. 가급적 많이 반영했다.“
- 원래 PC용 게임이었다. 이번엔 콘솔 기기로도 확장한 이유는.
- “보다 많은 사람이 게임에 접근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요즘엔 컴퓨터로 게임을 안 하는 사람도 많고 콘솔 사용자도 크게 늘었다. 두 플랫폼을 다 쓰는 이용자가 양쪽에서 진척도를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PC에서 게임하던 캐릭터 그대로 콘솔 기기에서도 게임할 수 있다.”
- 한국 게임은 해본 적 있나.
-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 오버와치 등에서 한국 이용자들의 열정을 접할 수 있었고 존경한다. 한국 게임 중에선 검은사막(펄어비스)을 해봤다. 굉장히 잘 만든 게임이고 글로벌 시장서 인기있는 게임이라고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