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대한민국에 돌아오신 영의정 대감마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여자는 공부할 필요 없다. 거리에 나서려면 머리에 뭘 뒤집어써라. 남자는 수염도 깎으면 안 된다. 이런 이야기 들으면 머나먼 나라의 탈레반이 생각날 것이다. 그런데 이건 우리 이야기다. 시대만 약간 다르다. 조선시대 상황이니까. 겨우 백 년 조금 넘게 지났을 따름이다.

조선을 이해하기 위해 당시의 헌법, 경국대전을 들춰보자. 서문 첫 문장의 주어는 제왕이다. 본문은 왕실 친족·외척 등의 신분규정과 그들의 신분세습 방법으로 시작된다. 거기에는 왕실 구성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벼슬명이 즐비하다. 백성들이 알 필요 없는 책다운 삼엄한 한자의 숲이다. 그 안에는 군(君)·신(臣)·관(官)이 빼곡하되 민(民)이라는 글자는 찾아보기 아주 어렵다. 그것이 전제군주국가의 정체성이었다.

세종로서 발굴된 조선 의정부 기초
국제현상 당선 보호각 백지화하고
의정부 건물 복원하자는 의견 나와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성취 남겨야

국가의 정체성은 법전의 문장 외에 도시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조선의 핵심 공간은 경복궁이었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타자 제왕은 창덕궁으로 옮겨갔다. 국가의 중심 공간은 조선 후반부 내내 폐허 상태였다. 경복궁 중건은 국가의 위신을 세우기 위한 건축사업이었는데 그 국가는 왕실을 일컬었다. 그러나 조선은 단일 건축사업만으로 재정이 휘청거리는 국가였다. 어찌 되었건 경복궁 중건으로 그 앞 육조거리도 잠시 다시 중요해졌다.

조선의 임금들은 전란이면 궁을 버렸다. 다만 선왕들의 신주는 챙겼다. 이번 제왕도 갓 지은 궁궐을 버렸으나 목적지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신주도 챙기지 않았다. 국왕의 러시아공사관 피신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 국가체제의 표현이었다. 이것이 제국주의의 풍파 속에서 계몽군주께서 행하신 불가피한 용단이었다는 책도 서점에 꽂혀있기는 하다. 다만 경국대전 밖의 민(民)들은 그냥 무심했을 것이다.

경복궁 앞 공간을 대한민국이 이어받아 부르는 이름이 세종로다. 이 공간이 시빗거리가 되는 것은 역사 중간에 일제강점기가 끼어있기 때문이다. 그 일제는 경복궁 궐내에 조선총독부청사를 건립했다. 이건 정치적 행위였다. 지어진 건물의 건축적 완성도는 높았지만 그 위치는 건축적 가치를 뛰어넘는 논의를 요구했다. 결국 조선총독부청사 철거의 쟁점도 건축을 넘어 공간으로 번역된 역사관과 국가의 정체성의 문제였다. 이때 건물은 가치중립적 물체일 수 없었다.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 인적청산에 실패했다. 그 여파는 여전히 작동 중이고 피해의식은 물적청산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일제시대의 건물이라면 기겁을 해서 철거했고 그 흔적을 철저하고 성실하게 지워왔다. 그 청산동력은 도를 넘어 일제강점기 너머 전제군주국을 과도하게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일제의 물리적 흔적을 지우되 조선의 모습은 가짜로라도 새로 만들었다. 제왕 없는 빈 궁궐에 새 기와집 만들어 채우고 궐문 앞에는 월대를 복원했다. 그걸 역사 바로 세우기라고 불렀다. 의심하면 식민사관이라 몰아붙였다.

역사적 건물 철거는 정치적 선언이다. 그 시대를 부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표현이다. 역사적 건물 복원도 정치적 선언이다. 그 시대를 복원하겠다는 의지표현이다. 그런데 때로 그 단호한 의지는 희극이 되기도 한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단군릉을 세웠다는 북쪽 인민공화국을 보고 차마 박장대소하기 어려운 것은 남쪽 민주공화국에서 벌어지는 사안들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세종로에서 경복궁을 보면 오른쪽 끝에 빈터가 있다. 이곳은 고종 연간 경복궁 중건 시에 의정부가 함께 중수된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경기감영, 경기도청으로 바뀌었다가 대한민국 시기에 정부청사 별관이 되었다. 건물 철거 후 공원이던 터를 발굴조사 해보니 각 시대가 중첩된 건물 기초가 나왔다. 그걸로도 충분한 유적이다. 그래서 이걸 보호하는 지붕을 만들어 덮기로 했다. 한낱 덮개일지라도 워낙 중요한 곳이라 국제현상공모가 열렸다. 우아한 제안이 당선되었고 보호각 설계는 진행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 현대적 보호각을 세우지 말고 의정부 건물을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결론은 어처구니없다. 당선작을 파기하고 터도 일단 흙으로 그냥 덮어둔다는 것이었다.

의정부 터에 관한 자료로 남은 것은 흐릿한 흑백사진 몇 장과 모호하게 그려진 배치도 정도다. 그리고 발굴로 드러난 기초의 돌무더기다. 그런 사료에 근거한 의정부 건물 복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시기는 경국대전이 규정하는 시대다. 여자는 공부할 필요도 없고 남자는 수염도 깎으면 안 되는 그 시대.

남아있는 조선의 유적 보호는 당연하다. 그러나 사라진 왕조의 흔적을 모조품으로 만들어 대한민국의 도시에 늘어놓겠다면 역사관의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공간과 민족 계승이 정치체제 연속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이제 충분히 스스로 자랑스러워해도 좋은 국가가 되었다. 그 자부심은 왕조에 빚지지 않고 맨주먹으로 일어선 국가여서 더 각별하다. 우리가 이 도시에서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이 대한민국의 성취가 아니고 조선시대의 모조품이라면 도대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의미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