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장내 미생물 연구 30년, 면역질환·천식 극복하겠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24 00:26

업데이트 2021.09.2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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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⑦ 고바이오랩 서울대 고광표 교수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정밀의학. 21세기 의학의 트렌드를 규정짓는 단어다.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반영해 ‘정밀하게’ 약물과 치료법을 쓴다는 말이다. 그 시작은 2003년 완성된 인간게놈 프로젝트였다. 인간 개개인의 DNA를 구성하는 염기서열 단위까지 모두 파악하는 게 가능해진 시대가 열렸으니, 치료법 또한 이에 맞출 수 있다는 논리다.

최근 생명과학자들의 연구·개발(R&D)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고 있다.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건 DNA뿐만이 아니다. 인체 속에는 인간 유전자의 100배가 넘는 다양한 미생물이 살고 있다. 즉, 질환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인간의 DNA는 물론 몸속 미생물의 DNA도 이해해야 한다.

미생물 DNA는 신약개발 최전선
2014년 창업 나서며 국내외 주목
쌍둥이 3000명 비교 연구·분석도
“코로나 백신 만든 모더나가 모델”

그렇게 해서 나온 말이 차세대 게놈이라고도 불리는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다. 마이크로바이오타(microbiota·미생물군집)와 게놈(genome)의 합성어다. 인체에 사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각종 미생물의 유전자 정보를 뜻한다. 인체 속 미생물의 불균형이 대장염과 아토피피부염 등 각종 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되기에 미생물을 인체에 주입하는 형태의 치료제 개발이 제약업계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등장하고 있다.

제약업계의 새로운 블루오션 부각

고광표 서울대보건대학원 교수가 지난 14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 있는 바이오기업 고바이오랩에서 신약 후보물질로 쓸 장내 미생물 배양 접시를 들여다보고 있다. 임현동 기자

고광표 서울대보건대학원 교수가 지난 14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 있는 바이오기업 고바이오랩에서 신약 후보물질로 쓸 장내 미생물 배양 접시를 들여다보고 있다. 임현동 기자

서울대 교원 창업기업 고바이오랩은 이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신약을 개발하는 국내 최초의 기업이다. 고광표(51)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창업자이면서 대표다. 고 교수는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신약개발 분야에서 학계와 제약업계가 모두 주목하는 인물이다. 2008년 전 세계적으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시작될 때부터 관련 연구를 해온 1세대다.

지난 15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종합연구동 연구실에서 고 교수를 만났다. 고바이오랩은 종합연구동 인근 세 곳에 분산돼 있었다. 고 교수는 “연구실 창업으로 시작해 짧은 시간 동안 급성장하면서 마땅한 회사 공간을 찾기 어려웠다”며 “조만간 경기도 판교로 회사를 이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만난 고 교수는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보다 훨씬 홀쭉했다.

마이크로바이옴,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2000년대 초반 인간게놈 프로젝트 결과가 나오고 나서 이제 예방 진단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후 인간 몸 자체뿐 아니라 몸속 미생물의 DNA, 마이크로바이옴도 이해해야 한다는 이슈가 제기됐다. 2008년부터 미국에서 시작한 휴먼마이크로바이옴프로젝트(HMP)가 대표적이다. 2016년에는 당시 오바마 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프로젝트로 ‘국가 마이크로바이옴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2년 간 1억2100만 달러(약 1432억원)를 투입했다.”
어떻게 국내에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시작했나.
“미생물만 30년 넘게 연구했다. 인간게놈 연구 이후 마이크로바이옴이 주목받을 때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2010년 서울대에 국내 첫 마이크로바이옴센터를 만들었고, 세계 여덟 번째로 국제마이크로바이옴컨소시엄에도 참여했다. 쌍둥이 3000명을 대상으로 마이크로바이옴을 비교 분석해,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에 질환에 미치는 영향도 연구했다. 쌍둥이는 유전자는 같지만, 먹는 것과 자라나는 환경에 따라 장내 미생물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마이크로바이옴을 연구하기에 최적의 연구대상이었다.”
연구도 바쁠 텐데 창업한 이유라면.
“2011~2012년 안식년을 맞아 마이크로바이옴 분야의 메카라는 미국 브로드연구소에 간 게 계기가 됐다. MIT와 하버드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연구소인데, 여기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산업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됐다. 특히 매튜 헨이라는 동료 박사가 안정적인 연구소를 그만두고 당시 신생 신약 회사엔 세레스 테라퓨틱스로 자리를 옮기는 것을 보고 자극이 되기도 했다. 귀국해서 창업을 고민하다 2014년 8월에 자본금 5000만원으로 회사를 시작했다.”

미국·호주 등서 임상 승인 진행

현재 어떤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나.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두 건을 글로벌 임상시험 중이다. 건선(乾癬) 치료제인 ‘KBL697’이 지난해 8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글로벌 임상 2상 승인을 받았다. 마이크로바이옴을 섭취해 면역조절 세포를 활성화하는 방법으로 피부의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하는 신약이다. 올 3월에는 호주에서 아토피와 천식 증상을 개선하는 신약 후보 물질 KBL002의 글로벌 임상 1상을 완료했다.”
신약개발의 최종 고지인 3상 완료 목표는 어떻게 되나.
“3상까지 다 갈 생각은 없다. 현재로선 2상까지 마치고 라이선스 아웃(license out·타사에 지적재산권을 판매하는 것)하는 것이 목표다. 수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3상은 워낙 비용이 많이 든다. KBL697이 첫 작품이 될 거다. 임상 2상 결과는 내년 말이나 내후년 상반기에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비임상이지만 지난해 11월에 한국콜마에 염증성 장염 후보물질을 기술을 이전한 것도 있다. 계약금만 20억원, 끝까지 잘 될 경우 전체 규모가 1800억원이다. 콜마에서 내년에 임상 1상에 들어간다.”
글로벌 경쟁사와 맞서야 한다. 고바이오랩의 차별점이 있을까.
“미국 보스톤에 있는 바이오기업 세레스 테라퓨틱스가 가장 앞서 가고 있다. 최근 세계 최초로 감염성 장염 질환을 타깃으로 하는 경구용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임상 3상에 성공했다. 늦어도 내년 초에 미국 FDA 승인을 받을 것으로 본다. 이게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1호가 될 거다. 우리는 세레스 테라퓨틱스보다는 늦었지만, 임상 2상 진입은 아시아에서 처음이다. 글로벌하게 봐도 10개에 불과하다.”

창업 이후 연구성과도 좋아져

창업 이후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나.
“일단 학교에서는 창업해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2014년 창업 당시만 하더라도 교내 창업 붐이 적을 때여서 위험 부담이 컸다. 하지만 내 경우엔 창업 이후에 오히려 관련 논문 연구 업적이 더 좋게 나왔다. 혁신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창업은 시너지 효과가 있어서 학문적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올 4월에 국제학술지 ‘네이처 마이크로바이올로지’에 에크멘시아라고 하는 균에서 나오는 특정 단백질이 비만·당뇨와 같은 대사질환을 효과적으로 개선하는 내용의 논문을 실었다. 작년에도 ‘네이처’와 ‘셀’ 자매지 등에 여러 편의 논문이 실렸다. 독보적 기술을 인정받아 투자도 어렵지 않게 받았다. 지난해 11월에는 코스닥에 상장되는 성과도 올렸다.”
현역 교수와 상장사 대표를 겸임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회사 살림을 꾸리는 공동대표를 따로 두고 있지만 그래도 일이 너무 많다. 학교 규정상 창업하더라도 교수로서의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번 학기 강의만 3과목, 9학점이다. 연구학점까지 하면 12학점이다. 몸이 두 개라도 힘든 지경이다. 미국 대학처럼 연봉을 깎는 대신 강의 수를 줄여주는 ‘바이아웃’(Buyout)나 휴직을 허용하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
교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한 벤처 창업에 대한 장·단점을 꼽자면.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든 길이다. 남들이 해서 따라가는 창업은 권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과학기술 기반이 있고, 스스로 원한다면 창업을 해보라고 권할 것이다. 국가·사회 차원에서는 R&D가 창업으로 이어지는 게 바람직한 일이다. 학술 연구를 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세금으로 지원되는 국가 R&D의 기술사업화와 창업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모더나도 실험실 기반으로 나온 거다.”
회사의 비전이 궁금하다.
"현재 진행 중인 적응증 같은 것을 암이나 난치성 질환으로 확장하고, 사업성 있는 혁신기술을 이용해 2025년까지 마이크로바이옴 신약에서 글로벌 톱3 안으로 발전하고자 한다. 에볼라 치료제 렘데시비르를 개발한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나 코로나 백신을 만든 모더나가 롤모델이다.”

당장은 적자, 미래 경쟁력은 밝아

고바이오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고바이오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고바이오랩의 재무제표는 아직 적자(赤字) 상태다. 지난해 매출액 46억원에 영업손실 123억원, 당기순손실 551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아직은 성과를 낳기 위한 R&D 투자기간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 누적 투자금은 245원. 부채비율은 5.12%에 불과할 정도로 건실하다. 관련 전문가들의 평도 나쁘지 않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고바이오랩은 인체 마이크로바이옴 분석기술과 미생물 라이브러리를 활용해 신약을 개발하는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며 "아시아에서 가장 임상시험 진도가 빠른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개발기업으로서 글로벌 경쟁력이 우수한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서울대 창업지원단장인 홍용택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고바이오랩은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서울대의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창업으로 연결한 것”이라며 "대학 연구실이 예전의 수동적인 기술이전을 넘어서 미래의 기술과 세계시장을 동시에 이끌어가는 혁신 기술을 바탕으로 한 창업의 요람으로 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광표
1970년생, 서울 오산고, 서울대 미생물학과, 미국 하버드대 보건학 석사, 보건미생물학 박사,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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