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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공세적 외교는 당연" 美한복판서 중국 옹호한 정의용 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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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종전선언 카드를 꺼낸 지 하루만인 22일(현지시간)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보조를 맞췄다. 사진은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에너지 및 기후에 관한 주요경제국포럼(MEF)에 참석하기 위해 청와대 여민관에 입장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을 맞이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종전선언 카드를 꺼낸 지 하루만인 22일(현지시간)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보조를 맞췄다. 사진은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에너지 및 기후에 관한 주요경제국포럼(MEF)에 참석하기 위해 청와대 여민관에 입장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을 맞이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대통령과 장관, 집권여당 대표까지 당·정·청이 합심해 대북 관여를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국제사회에 종전선언 필요성을 촉구한 데 이어 22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대북제재 완화를 꺼내들었다. 비슷한 시기 방미 중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워싱턴에서 개성공단 복원을 제안했다.

대통령·장관·당 대표가 각각 방미 일정을 소화하던 중에 나온 발언으로 ‘대북 원칙론’을 견지하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를 설득하는 한편 북한을 향해 유화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 장관이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을 언급한 건 이날 미 싱크탱크인 미국외교협회(CFR) 초청 대담에서 “한·미 양국은 북한을 고립 상태에서 끌어내고 비핵화 과정을 다시 시작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다. 특히 정 장관은 북한이 지난 4년간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은 사실을 언급하며 “북한 행동에 따라 제재를 완화하는 창을 열어놓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재 완화' 꺼낸 정의용…美 원칙론과 배치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2일(현지시간) 미국외교협회 초청 대담에서 "북한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일에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며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뉴스1]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2일(현지시간) 미국외교협회 초청 대담에서 "북한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일에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며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뉴스1]

정 장관은 특히 “북한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일에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며 대북 인도적 지원 및 스냅백(snap-back)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스냅백이란 우선적으로 대북 제재를 완화하되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 등으로 합의를 위반할 경우 자동으로 제재를 복원하는 방식이다.

그러면서 정 장관은 "이제는 제재 완화를 고려할 시점이 됐다"며 "왜냐하면 북한은 4년 간 모라토리엄(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 유예)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2017년 이후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고 있다"면서다.

이와 관련, 외교부는 별도의 보도자료를 통해 "정 장관은 북한을 대화로 견인하기 위한 적극적인 유인책(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제재 완화 고려 등 포함)을 적극 모색할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소개했다. 결국 정 장관의 발언은 북한의 모라토리엄을 비핵화 조치의 일환으로 해석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선제적인 변화 없이는 제재 완화도 없다’는 원칙을 고수해 왔다. 특히 대화 재개만을 위한 인센티브는 없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 말 남북 관계 개선이라는 목표에만 매몰돼 그간 한·미 양국이 공조해 온 대북정책의 핵심 원칙을 훼손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정 장관 역시 "미국은 특히 제재 완화나 해제에 준비돼 있지 않다"면서도 "북한이 하지 않은 일(핵실험, 장거리미사일 발사실험)에 대해 보상을 줘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인센티브로서 제재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길 희망한다"고 했다. 미국이 다른 생각이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제재 완화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전직 고위 당국자는 “북한과 조건없이 대화할 수 있지만, 대화를 위한 제재 완화는 하지 않는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확고한 입장과 배치되는 발언”이라며 “결국 인도적 지원의 범위를 넘어 북한이 진정으로 원하는 경제적 지원은 제재를 완화해야 가능한데 국제사회는 그럴 의향이 없다. 한국만 다른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종전선언, 제재 완화, 개성공단 재가동까지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에난데일 한인타운에서 특파원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더불어민주당 제공]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에난데일 한인타운에서 특파원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더불어민주당 제공]

앞서 지난 20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워싱턴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바람직한 행동에 대해선 보상이 따라야 하는 것 아니냐”며 개성공단 재가동 등 대북 유인책 제공 필요성을 강조했다. 송 대표가 언급한 ‘바람직한 행동’ 역시 모라토리엄을 의미한다. 송 대표는 “북한은 2017년 6차 핵실험 이후, 비록 단거리 미사일을 몇 번 시도했지만 4년 동안 추가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고 있다”며 “어찌 됐든 이것은 평가할 만하다. 이에 대한 상응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15일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한반도 긴장 수위를 높였다. 명백한 대북제재 위반 사안이었다. [연합뉴스]

북한은 지난 15일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한반도 긴장 수위를 높였다. 명백한 대북제재 위반 사안이었다. [연합뉴스]

하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모든 종류의 발사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지난 15일 북한이 동해상으로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역시 대북 제재를 위반하는 무력 도발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집권여당 대표가 단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를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는 듯 북한이 ‘바람직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은 북핵 리스크 자체를 축소 평가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美 한복판서 中 '공세외교' 옹호

한편 정 장관은 CFR 대담에서 최근 중국의 공세적 외교 정책과 관련 “(중국이) 경제적으로 더욱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평가해 논란을 샀다. 정 장관은 “(지금의 중국은) 20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중국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듣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장관은 또 ‘한국은 호주와 다른 상황이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중국을 향한) 다른 국가들의 우려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면서도 “(중국은) 국제사회의 다른 멤버들에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이 공세적 외교정책에 나서는 것은 국력 상승에 따른 당연한 일이고, 국제사회가 중국의 입장을 보다 경청해야 한다는 친중(親中) 메시지로 해석될 만한 발언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미국을 향해 "냉전식 제로섬 게임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미국을 향해 "냉전식 제로섬 게임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화=연합뉴스]

실제 정 장관은 대담 진행자가 한·미·일 3국과 호주를 ‘반중(反中) 블록'으로 규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그건 냉전시대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 2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미국을 향해 “냉전식 제로섬 게임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꼭 같은 표현을 쓴 것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핵심축으로 하는 한국의 외교부 장관이 오히려 중국 측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이유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중국의 공세 외교는 비단 국력 상승 때문만은 아니고 미·중 경쟁 등을 표면화해 인권 상황 등 내부의 문제를 가리려는 목적도 있다”며 “정 장관의 발언이 한국이 미국에 경사됐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중국이 쓰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미국을 향해 ‘우리는 중국 편’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정 장관의 이날 대담은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한·미·일 및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불과 2시간여 앞둔 시점에 이뤄졌다. 미국, 일본과 인도·태평양 지역 내에서의 협력 강화를 논의하기 직전 사실상 중국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낸 셈이다.

이와 관련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정 장관은 중국의 공세적 태도를 자연스럽다고 언급한 것이 아니다”라며 “중국의 외교 ·경제력 등 국력신장에 따라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은 국제위상 변화의 차원에서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표현한 것일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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