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 던지고 은퇴한 37세, 통장에 월급만큼 찍히는 비결[오늘, 퇴사합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23 09:00

업데이트 2021.09.23 16:00

한국 사회에 파이어(FIRE)족이 상륙했다. ‘경제적 독립, 조기 은퇴(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앞글자를 딴 파이어족은 경제적 자립을 통해 40대 초반 전후에 은퇴한 이들을 일컫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젊은 고학력·고소득 계층을 중심으로 퍼졌다.

자본 소득에 비해 뒤처지는 노동 가치, 불안정한 고용과 사라진 평생 직장, 길어진 수명 등이 MZ세대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도 파이어족의 등장을 부추기고 있다. 중앙일보는 불안한 시대에 조기 은퇴를 택한 한국판 파이어족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늘, 퇴사합니다]④애널리스트에서 '투자 전도사'된 이고은씨

〈투자의 재발견〉 저자 이고은 작가가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사옥에서 조기은퇴를 꿈꾸는 2030세대를 위한 '파이어족'에 관해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투자의 재발견〉 저자 이고은 작가가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사옥에서 조기은퇴를 꿈꾸는 2030세대를 위한 '파이어족'에 관해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억대 연봉’을 번다고 알려진 외국계 증권사의 주식 애널리스트 자리를 10년 만에 박차고 나왔다. 고단한 서울살이를 벗어나 가족과 함께 자리 잡은 곳은 춘천의 고즈넉한 전원주택이다. 이제는 매일 회색 칸막이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대신, 개인 사무실을 겸해 창업한 공유오피스로 가볍게 출근해 책도 읽고 뉴스를 보는 게 일과다.

투자 입문서 『투자의 재발견』을 펴낸 이고은(39)씨의 지난 2년간의 삶을 요약하면 이렇다. 그는 국내외 대형 증권사에서 10년이 넘게 주식 애널리스트로 근무한 뒤 2019년 조기 은퇴해 ‘파이어족’이 됐다. 주식과 부동산으로 버는 돈이 직장에 다닐 때 매달 통장에 찍히는 월급을 웃돌면서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

그는 은퇴한 뒤 재테크 비법을 담은 책을 내고 유튜브 콘텐트를 제작하며 ‘투자 전도사’로 살고 있다. 지난달 24일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난 그에게 투자 비법과 파이어족으로의 삶에 대해 물었다.

주식 애널리스트를 그만두고 은퇴한 이유는.
애널리스트 생활을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투자 아이디어로 글을 쓰고 토론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그러나 직업 특성상 일정 기간 동안 특정 분야만 집중적으로 분석할 수밖에 없어 답답했다. 또한 직장생활을 길어야 10~20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직장을 벗어나 개인 브랜드를 만들어 글을 쓰는 것이 좋아하는 일을 더 자유롭게, 더 오래 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파이어족’이 된 뒤 달라진 점은.
가장 큰 변화는 생각의 지평이 넓어진 것이다. 가령 지금 운영 중인 공유오피스도 개인 사무실 용도로 상가를 매입했는데, 건물 관리비를 동시에 벌어볼 겸 창업했다. 직장인이었으면 이런 생각을 못 했거나 했더라도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직장인에서 벗어나자 투자자와 창업가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됐다.  
이고은(39) 작가는 외국계 증권사에서 조기 은퇴 후 투자 입문서 〈투자의 재발견〉을 펴냈다. [사진 스마트북스]

이고은(39) 작가는 외국계 증권사에서 조기 은퇴 후 투자 입문서 〈투자의 재발견〉을 펴냈다. [사진 스마트북스]

삶의 여유가 늘었나.
아침에 일어나서 사무실에 가서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퇴근한다. 내 삶에 주도권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곤 일과는 직장인 시절과 비슷하다. 다만 시간을 사용하는 데 유연함이 생겼다. 얼마 전 평일에 2박 3일간 김해와 거제를 남편과 함께 다녀왔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가족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소비자가전쇼(CES)’나 미국 오마하에서 열리는 워런 버핏의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연례 주주총회에 직접 참석하려고 한다.
조기 은퇴가 가능할 정도의 돈을 모은 비결은.
투자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게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사서 키우는 것과 같다. 거위는 자산이고, 황금알은 현금 흐름이다. 그래서 황금알(현금흐름)이 나오는 거위(자산)를 투자하는 데 우선순위를 뒀다. 월급을 모아서 이런 방식으로 자산을 10년 동안 모았더니 은퇴할 때 즈음엔 투자 수익이 직장에서 벌어들이는 수입과 비슷한 수준이 됐다.
현금흐름은 정확히 뭔가.
현금 흐름은 세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오피스텔이나 원룸 등을 매입한 뒤 얻는 전세금이나 월세로 이해하면 편하다. 배당주를 구입해 받는 배당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는 자산의 가치를 저렴할 때 사서 가치가 올라간 뒤 파는 시세 차익에 따라 발생하는 현금흐름이다. 마지막으로 자산을 담보로 받는 대출도 현금흐름이다. 담보를 통해 ‘레버리지(차입을 통한 자산 매입)’를 일으키는 것이다.
돈을 빌려서 투자하는 건 위험할 수도 있는데.
기업의 재무제표를 보면 우량 회사라도 어느 정도 부채가 있기 마련이다. 개인 투자자도 적정 수준의 부채를 이용하면 더 큰 투자 성과를 이룰 수 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레버리지 효과를 조금씩 경험해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투자의 재발견〉 저자 이고은 작가가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사옥에서 조기은퇴를 꿈꾸는 2030세대를 위한 '파이어족'에 관해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투자의 재발견〉 저자 이고은 작가가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사옥에서 조기은퇴를 꿈꾸는 2030세대를 위한 '파이어족'에 관해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어떤 자산을 매입해야 현금흐름을 극대화할 수 있나.
투자금 대비 현금 흐름이 큰 자산을 찾아야 한다. 동시에 자산을 살 때 적절한 레버리지를 일으키면 된다. 전세금을 끼고 부동산을 매입하는 ‘전세 레버리지’를 사용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다. 전세금은 투자자에겐 이자 없이 상환 기간이 길기 때문에 품질이 좋은 레버리지다. 흔히 주거용 부동산만 투자 대상으로 생각하지만, 상가용 건물 중에서도 투자 수익률이 높은 것을 찾을 수 있다.
주식은 어떤 것이 좋을까.
지속해서 현금 흐름이 나오는 배당주를 사는 것도 좋다. 다만 국내보다 해외 기업 중에서 ‘배당 귀족주’를 추천하는 편이다. 국내에는 배당 정책이 무르익은 회사가 드물다. 회사가 조금 어려워지거나 경영 환경이 악화하면 배당을 줄이거나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최소 25년 이상 전년도보다 배당을 무조건 더 늘린 ‘배당 귀족주’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중 마음에 드는 회사 10개 정도만 정해서 꼬박꼬박 사면 괜찮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다.
‘파이어족’을 꿈꾸는 사람이 늘었다고 느껴지나.
인터뷰 요청이 많아지면서 그렇다고 느끼고 있다. 경제적 자유를 넘어서 시간의 자유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라고 해석한다. ‘열심히 일 안 하고 놀고먹으려는 것 아니냐’고 볼 수 있지만, 흥미 없이 회사에서 꾸역꾸역 앉아있는 것보단 자기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는 시도라고 보기 때문에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파이어족이 되는 데 주변 반대는 없었나
부모님은 좀 아쉬워하셨다. 좋은 회사를 다니는 걸 선호하셨으니까. 하지만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서 가능했다. 자영업을 하는 남편도 지난해 은퇴했다.  
파이어족을 꿈꾸는 위한 사람을 위한 조언은. 
가장 강조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모두 자산거위 농장의 주인’이라는 점이다. 직장에 다니며 예금만 하고 투자를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시간이라는 자산을 회사에 투자해 그를 통해 월급을 받는 투자자다.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 지에 따라 인생의 투자 수익이 달라진다. 본인이 투자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나는 애널리스트를 천직으로 여기고 커리어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회사를 다니며 월급을 잘 모아서 자산을 불려나가는 걸 10년 동안 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파이어족이 됐다. 젊을 때 일수록 나의 컴포트존, 즉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곳을 적극적으로 넓혀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는 동네를 벗어나 여행 삼아 다니면 투자처를 찾을 수도 있고 시각도 넓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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