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Don’t Just Do It

중앙일보

입력 2021.09.23 00:31

지면보기

종합 27면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600년 전 만들어진 도시의 사대문 안 궁궐을 감싸고 있는 산은 방비를 위한 것이었겠지만 지금 후손들에게는 축복과 같습니다. 잠시만 걸어도 기후와 풍광이 달라지는 경이로움을 계절이 바뀌는 시기마다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도심 산속에 자리 잡은 건축가 선생님 댁을 들어서며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을 느꼈습니다. 미리 온 계절이 흐르는 바람이 들어서는 코안의 알싸한 청량함으로 먼저 찾아온 것입니다. 당연히 곧 가을이 올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안다는 것과 체감하는 것은 확연히 다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꽃이 피면 질 것을 알고, 아이가 태어나면 자라고 나이가 들 것을 알고 있습니다.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상대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화답할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알고 있다 해서 매 순간 충실하게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학창시절 공부를 열심히 했을 것이고, 좀 더 좋은 책을 읽고 악기 하나라도 익숙하게 다룰 만큼 연습했을 터이겠지요.

지금의 팬데믹 위기는
미래 일어날 일 앞당겨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어
먼저 계획 세우고 행하길

알고 있다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 아마도 지금 해야 할 일과 반드시 해야 한다고 들은 일들이 너무나 많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리고 그 결과가 내게 다가오는 시점이 막연해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건강이 나빠져 그 충격에 산속에 들어가 자연식을 하고 매일같이 몸을 움직이는 분들의 삶을 보여주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듯이 우리는 닥쳐서야 중요함을 느끼는 듯합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 있지만 다가옴이 지연되거나 나를 비껴가길 원하면서 하루를 살아나가는 우리들의 일상을 관찰하며 제게 만트라처럼 다가온 문장은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였습니다. 최근 2년 가까이 온 지구 위 인류가 함께 어려운 일을 겪는 것을 바라보니 그다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리하게 됩니다.

빅데이터

빅데이터

혈액처럼 자원을 분배하던 흐름이 멈춰지고 국가 간 교류가 제한되며, 서로에게 긴밀히 의지하도록 진화한 인류의 협력 시스템이 도전받고 있습니다. 제도의 효율성과 물질적 여유에 따라 위기 속 국가 간 차이가 선명히 드러나는 비정한 현실이 목도됩니다. 직접 만나는 일이 주저되면서 대안으로 떠오르는 선택적 대면의 방법들은 안전과 동시에 경제활동에서 인간 소외의 가능성을 실증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현기증은 변화의 가속도가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으로, 압축성장으로 단련되었음에도 어지러움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백신의 온라인 신청은 전 국민에게 행정의 자동화를 체감하게 해 주었습니다. 질병관리청의 앱을 통해 예방접종의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고 이상반응의 신고 또한 가능합니다. 앱을 이용하기 위해 인증서를 발급받거나 자신 명의의 휴대폰 문자로 확인하는 프로세스도 배울 수 있습니다. 해외 여행시에 격리면제를 위해 외교부 시스템과 연동하면 앱을 통해 여권정보까지 연계됩니다. 데이터로 무장된 시스템들의 연동과 똑똑한 사용자들의 협업으로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이어지는 세상이 온 것입니다. 혜택은 안전하고 편리한 세상으로의 진입이고, 두려움은 효율화의 대상이 된 기존의 프로세스와 적응이 어려운 사람들의 당황함입니다.

하지만 제가 위에서 열거한 사실들 또한 알고 보면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기후변화와 세계화, 인공지능과 플랫폼화의 문제들은 석학들의 오래전 저술에서 이미 날카롭게 경고되었습니다. 100년도 전의 소설과 수십 년 전의 SF 영화들 역시 지능화된 시스템 속 인간의 생존에 대해 어둡고도 불편한 사실들을 몇 번이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문제는 그 멀기만 해 보이던 일들이 지금 내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 그리고 팬데믹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그 다가오는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예정된 일이었다면 그에 맞는 대응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점점 빨라지는 변화 앞에 잘못된 방향으로의 실행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냥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먼저 생각하고, 일어날 일에 맞추어 계획을 세우셔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욕망의 합으로 만들어진다는 명제를 이해하고 나서 길어진 내 생애의 목표를 세운 후, 그다음에 행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가을 저의 새로운 만트라는 “그냥 하지 말라, 먼저 생각하라” 입니다. Don’t Just Do It, Think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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