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세린 클라크의 문화산책

스승의 에너지 위를 걷는 제자

중앙일보

입력 2021.09.23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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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몇 주 전, 캄보디아 출신 작곡가이자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 음악교수인 친구 치나리 웅이 영상 한 편을 보내주었다. 인도의 현자 삿구루가 사제관계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이었다. 삿구루가 한 말은 다음과 같다.

“선생이란 단순히 철학이나 가르침, 행위를 전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선생은 자신의 에너지를 하나의 길로서 펼쳐 보인다. 그 자신이 길이다. 당신이 이 길을 걸을 때 당신은 선생의 위를 걷는다. 사뿐하게 발을 디디라. 이 길은 당신이 머무를 곳이 아니다. 당신이 함부로 발을 구를 곳도 아니다. 당신이 차분히 걸어갈 길이다. 당신이 그 길 위를 걷는다는 것은 곧 당신이 그 선생의 생명 에너지 위를 걸어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추석에 생각한 사제 관계
스승은 새 길을 안내해야
한국서 만난 가야금 스승
그 귀한 행운에 무한감사

웅 교수의 글을 읽으니 내가 열네 살 무렵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일랜드-독일계 사람인 우리 친할머니는 어느 날 저녁 약주에 살짝 취해, 증조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가톨릭 유품 몇 개를 내게 물려주겠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오래된 아름다운 묵주를 꺼내 내게 건네다 말고,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아직 가톨릭 신자가 아니니 그런 성스러운 물건을 간직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나를 꾸짖지 않으셨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신교도 며느리와 결혼해 필요할 때만 유니테리언 신자가 되는 우리 자매를 낳은 아들 잘못이었다.

문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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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내게 말씀하셨다. “내 말을 잊지 말아라, 주님은 다시 오신단다.” 우리 아버지는 아직 천주교로 돌아가지 않았지만 마음 한쪽에는 부모님의 믿음을 갖고 계신다. 나와 내 동생도 아버지의 경향을 어느 정도 물려받았다. 그래서 가야금 선생님 ‘위를 걷는’ 이미지는 내게 막대한 죄책감을 일으킨다. 내가 함부로 ‘발을 구르는’ 배교자는 아니지만, 다른 일들 때문에 연습에 소홀하고 마음을 뺏긴 채 수업에 임하면서 무겁게 눌러앉아 있을 때가 많음을 (가톨릭 관습을 따라) 고해해야 하겠다.

위에서 인용한 구루의 설명과 같이, 단순히 점수만 매기는 선생이 아닌 삶의 새로운 길로 안내하는 선생, ‘완성’의 흔한 척도인 학위나 졸업 연주회 이상으로 제자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선생을 만난다는 것은 음악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큰 행운이다. 이런 선생의 초대를 받아들이면 학생은 복사(服事)로서의 도전에 임하게 되고, 탁월함이라는 정상을 향한 평생의 등반에서 끊임없이 ‘임시 정상’에 도달하도록 재촉을 받는다. 나는 한국에서 그런 선생님들을 만났다. 외국인에게 자신의 에너지를 제공해 준 그 모든 선생님을 만난 것을 나는 행운으로 생각하며 그분들에게 무한히 감사한다.

추석에 나는 ‘수업시대’라는 인도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에서 암시하는 전수의 정신은 구술성(orality)과 사제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이나 다른 나라의 정신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한국의 ‘소리’ 공부처럼, 인도에서 전통 음악을 배우는 것은 엄청난 굴복과 희생을 수반한 ‘영원한 탐구’로 여겨진다. 인도에서는 이 길을 가려면 외로움과 굶주림에 익숙해져야만 한다고 종종 말한다. 그런데 인도 음악을 배우는 경험과 한국 음악을 배우는 경험을 나란히 놓고 보면 위에서 언급한 인도 구루의 말은 다르게 느껴진다. 내 경험상 우리 선생님의 ‘생명 에너지’에 참여하는 순간은 외로움, 상실을 겪는 경험과는 거리가 멀다. 한 선생님의 오랜 제자들에게 환영을 받을 때는 깊은 소속감을 느낀다. 우리는 추석 때 우리 자신의 생물학적 가문에 경의를 표하듯, 우리 선생님에게 이어진 가르침을 베푼 선대 스승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내가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을 때의 가야금 소리는 내가 선생님의 에너지 위에 앉아 있을 뿐, 스스로의 에너지는 별로 확장하지 않고 있다고 읊조리는 것 같다. 대전에 위치한 내 고독한 집에는 지난 세기부터 내려온 한국 궤짝이 있다. 친할머니가 1950년대에 일본에서 구입하셨고 우리 고모에게 물려주셨다가, 최근 고모가 돌아가시면서 내게 물려진 장롱이다. 내 묵주처럼 여러 대를 거쳐 온 장롱을 보면서, 내가 우리 선생님들에게서 전해 받은 귀중한 한국 음악을 전수받을 만한 음악인이 되려면 평생에 걸친 훈련의 긴 여정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6세기 일본 다도를 정립한 센노 리큐가 말한 ‘일기일회(一其一會)’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친구든, 가족이든, 스승이든, 특정한 사람을 특정한 순간에 만나는 기회는 단 한 번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각 만남을 독특한 기회로 여기고 최선을 다해 그 순간을 충만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 팬데믹 때문에 거의 2년을 만나지 못한 가족을 그리워하고, 더 나은 딸·언니·이모·친구·제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추석 명절을 보냈다. 내 선생님들의 에너지 위를 조용히 걷는 제자가 되기를, 서늘한 가을바람 속에 추석 보름달을 올려다보며 빌었다. 누가 알랴, 기회가 단 한 번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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