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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피아와 열린 채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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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모란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모란 사회2팀 기자

최모란 사회2팀 기자

몇 년 전 ‘관피아’ 논란으로 전국이 떠들썩할 때였다. 친하게 지내던 취재원 A씨가 잔뜩 성난 목소리로 전화했다. 고위공무원으로 일하다 한 공공기관의 간부로 재취업한 자신을 언론이 ‘관피아’로 지목했다면서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관련 자격증은 물론 학위까지 취득했고 큰 성과를 내 상도 여러 번 받았다. 퇴직 후 정당한 공모·채용 절차를 거쳐 재취업했는데 전직 공무원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관피아로 몰아붙이는 것은 너무하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A씨의 말에 쉽게 맞장구를 칠 수 없었다. 당시 관피아 문제가 너무 심각했고, 비슷한 해명도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열린 경기도의회 제354회 제2차 본회의를 지켜보면서 불현듯 A씨가 생각났다. 민생당 김지나 의원이 “열린 채용을 도입한 이후 지사님의 척결하겠다던 관피아가 다른 모양새로 나타나는 것 같다”며 ‘보은 인사’ 의혹을 언급했다.

경기도의회에서 진행된 이재명 경기지사 규탄 시위. [뉴스1]

경기도의회에서 진행된 이재명 경기지사 규탄 시위. [뉴스1]

이재명 경기지사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공정한 채용 절차에 따라 채용한 것이 무슨 문제냐”고 강하게 반박했다. “‘자질·능력이 부족하다’ ‘(채용) 절차가 잘 못 됐다’ ‘쓰면 안 되는 사람을 썼다’ 이러면 (문제라고) 인정을 하겠다. 하지만 나와 인연·관계가 있고, 성남시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이니 문제라는 식의 논리는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 이 지사의 말이다.

듣는 내내 납득이 되질 않았다. ‘관피아’로 지목된 이들은 모두 무능력하고, 채용 절차에 문제가 있어서 척결 대상이 됐던가?

과거 관피아 의혹이 제기된 측의 해명도 이 지사의 답변과 유사했다. “해당 업무 경력을 갖춘 전문가로, 공정한 절차를 통해 채용됐다.”

경기도의 ‘열린 채용’은 2018년 6월 이 지사의 인수위원회가 “관피아 문제를 해결하려면 민간의 경쟁력 있는 전문 인사가 채용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고 제안한 게 시작이다. 같은 해 경기도의회에서도 두 차례 동일한 지적이 제기됐다. 경기도는 이를 받아들여 그해 9월부터 ‘경력·학력’ 등을 명시한 정량적 공공기관 채용 조건을 ‘풍부한 지식’ ‘자질과 품성’ ‘탁월한 교섭능력’ 등과 같은 정성적 기준으로 변경했다.

문제는 ‘열린 채용’으로 관피아는 막았지만, 낙하산 인사를 의심하게 됐다는 것이다. 경기도 산하기관 노조가 작성한 ‘이재명 낙하산 인사 명단’엔 90여 명이 이름이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도의 자평처럼 열린 채용으로 민간 전문가가 산하기관에서 일할 기회를 얻은 것은 맞다. 그러나, 낮아진 문턱이 측근 인사 채용 논란 등 부작용을 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이 지사 취임 이후 만들어진 경기도의 구호는 ‘새로운 경기, 공정한 세상’이다. 새로운 ‘열린 채용’이 과연 이 구호에 충실한지 다시 살펴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