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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들이 찍은 세상의 끝…“30대 감독이 상상 못한 에너지 담았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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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영화 ‘종착역’은 ‘세상의 끝’을 사진에 담으려는 중학생들의 여정을 그렸다. [사진 필름다빈]

영화 ‘종착역’은 ‘세상의 끝’을 사진에 담으려는 중학생들의 여정을 그렸다. [사진 필름다빈]

‘어린이’를 벗고 입시 관문에 들어서는 중학교 1학년. ‘세상의 끝’을 찍어오라는 여름방학 숙제를 14세 소녀들은 어떻게 풀었을까. 지난 3월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부문(어린이·청소년 영화)에서 “사춘기 아이들의 시간을 시적으로 응축했다”고 호평받은 영화 ‘종착역’이 23일 개봉한다.

교내 사진 동아리 1학년생 시연(설시연)·연우(배연우)·소정(박소정)·송희(한송희)는 촬영 횟수가 한정된 필름카메라에 ‘세상의 끝’을 담으려 지하철 1호선 종착역인 신창역으로 향하지만, 예상과 다른 풍경을 맞닥뜨린다.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동기 권민표(30)·서한솔(30) 감독이 공동 각본·연출·편집을 맡은 졸업작품이다. 개봉 전 서울 성북구 카페에서 만난 두 감독은 기찻길을 따라간 여정을 인생에 빗댔다.

“신창역은 전북까지 가는 장항선(기차) 선로가 이어져 있다. 종착역이지만 길이 계속 이어지는 지점이 매력적이었다”는 서 감독 말에 권 감독은 “익숙한 지하철을 타고 낯선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부분이 재밌었다”고 했다.

서 감독이 기획한 영화에 권 감독이 동참했다. 해가 막 뜨는 새벽하늘을 보며 ‘세상의 끝’을 떠올린 게 영화의 시작이었다는 서 감독은 “청소년 땐 의도치 않은 작은 행동 때문에 방향을 많이 벗어나기도 한다”면서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하면 학업 압박에 종착역을 간다는 설정이 한쪽으로만 연관될 것 같았다”고 했다. “여중생들 인터뷰를 보면 친구들과 공원에서 틱톡을 찍거나 간식을 먹거나 학원을 간다는 얘기가 많다. 이들에게 ‘세상의 끝’을 찍어 오라는 숙제를 내주면 새로운 곳을 가고 싶다는 욕망이 생길 거란 생각에 주인공으로 설정했다”면서다.

아이들은 기찻길에서 벗어날수록 생각지 못한 경험에 뛰어든다. 처음 가본 시골, 처음 먹어본 콩국수, 처음 만난 길고양이…. 싱그러운 ‘처음’의 순간들을 본명으로 출연한 또래 신인 배우들이 상황에 맞춰 애드리브로 연기했다. 영화 속 스냅사진도 마지막 사진만 제외하면 네 배우가 촬영 중 자유롭게 찍은 것이다.

처음 시나리오엔 역할, 대사가 정해져 있었지만 “30대 남성 머릿속 캐릭터는 전형적인 것일 수 있고, 현실의 에너지를 모두 담으려면 상상만으로 무리겠다 싶었다”고 서 감독은 돌이켰다.

권민표 감독(左), 서한솔 감독(右)

권민표 감독(左), 서한솔 감독(右)

실제 친구 사이인 아이들을 캐스팅하려 서울의 거의 모든 중학교 연극반을 찾아다녔지만, 학부모들에게 거절당했다. 학원 가야 할 여름방학에 촬영 기간 15일은 너무 길다는 이유였다.

연기학원생 대상 오디션으로 배우들을 만났고, 촬영 한달여 전부터 어울리며 최대한 친해졌다. 서 감독은 “교사인 친구들한테 ‘요즘 애들은 우리 때와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실제 만나보니 나도 저 나이 때 그런 생각을 했지, 하는 공통점을 더 많이 느꼈다”고 했다.

서 감독은 “섭외한 폐교에서 촬영할 수 없게 됐는데, 이 친구(권 감독)가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한테 ‘이 동네에서 제일 이쁜 곳이 어딥니까’ 해서 마을회관을 찾았다. 사진을 보자마자 영화의 도착 지점이 생겼다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학교에서 시작해 학교에서 끝나는 영화였는데 마을회관으로 바뀌면서 중학생으로 좁혀져 있던 여정이 노년으로, 인생으로 확장됐다”면서 “출발은 제가 했지만, 끝은 권 감독이 맺었다”고 했다.

권 감독은 “지금껏 영화의 의미, 메시지에 매몰됐지만 ‘종착역’을 하며 영화가 줄 수 있는 재미가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두 사람은 각각의 차기작 외에 겨울 배경의 또 다른 공동 연출작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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