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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말하지 않고도 중국 때렸다, 바이든 절묘한 UN연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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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1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취임 후 첫 연설을 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1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취임 후 첫 연설을 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취임 후 첫 유엔 총회 연설에서 미국은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최우선 순위에 둘 것이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동맹과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첫 유엔총회 연설서 중국 정조준 #"우리는 백신에 조건 달지 않아"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오늘과 내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도·태평양과 같은 세계적 우선순위와 지역으로 초점을 옮기면서 우리 동맹 및 파트너 국가와 함께할 것"이라고 알렸다. 또 "신냉전 또는 세계를 경직된 블록으로 나누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면서 "미국은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고 우리 가치와 힘으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34분간 연설에서 한 번도 "중국"이나 "베이징"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으면서도 연설 전반에서 중국을 정조준했다.

그는 "우리는 동맹과 친구를 옹호할 것이고, 무력에 의한 영토 변화, 경제적 강압, 기술적 착취 또는 잘못된 정보를 통해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려는 시도에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중국이 주변국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압박 외교를 구사하는 행태를 비판하면서 미국은 다르다고 얘기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생명공학과 양자 컴퓨팅, 5G 통신, 인공지능 등 기술 발전을 언급한 뒤 신기술이 "반대를 억누르거나 소수 공동체를 표적으로 삼는 데 쓰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의 자유를 증진하는 데 사용될 수 있도록 민주주의 파트너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말해 다시 중국을 겨냥했다. 중국은 ‘자유 증진’이라는 인류의 목표에 관심이 없음을 돌려서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 백신 기부를 언급하면서 미국은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중국은 이와 달리 아프리카와 중남미 국가를 상대로 백신을 제공하면서 외교적 이득을 얻으려 했다는 비판이 깔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우리 모두 신장이나 에티오피아 북부 또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인종과 민족, 종교적 소수자를 목표로 삼아 억압하는 행위를 규탄해야 한다"고 촉구해 중국 정부의 신장 위구르 탄압을 빼놓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처럼 '중국 때리기'로 나섰음에도 '중국'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은 건 백악관 브리핑에서도 질의 대상이 됐다. "중국"이란 단어를 왜 쓰지 않았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바이든 대통령이 "기후, 사이버 위협, 테러 위협 등 중국을 포함해 우리가 함께 일할 수 있는 큰 문제에 대해 적극적 의제를 제시하려는 목적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이 협력해야 할 굵직한 분야가 있어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중국이란 단어를 연설문에서 뺐다는 취지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미국은 다른 분야에서 극심한 의견 차이가 있더라도 공동의 도전에 대한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는 어떤 나라와도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코로나19와 기후 변화 같은 긴급한 위협이나 핵확산 같은 지속적인 위협에 대처하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 실패의 결과 때문에 고통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와 기후변화, 핵 비확산은 미국과 중국이 협력할 수 있는 대표적 분야로 꼽힌다.

바이든에게 비판적인 공화당 소속 톰 코튼 상원의원은 트위터에 "바이든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중국'이란 말도 하지 않았다. 중국이 세계에 가하는 위협을 분명히 말했어야지,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척해서는 안 된다"고 썼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1일 화상으로 유엔 총회 연설을 했다.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1일 화상으로 유엔 총회 연설을 했다. [신화=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의 유엔 연설을 놓고 동맹을 무시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임 대통령과 다른 행보를 보여주려 했지만,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왔다.

세계적인 백신 부족 현상 속에 많은 나라가 첫 백신을 맞기도 전에 미국이 부스터 샷(3차 접종) 접종을 시도하는 데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사과하려 하지 않았다고 보스턴글로브는 전했다.

유럽 동맹과 충분한 협의 없이 아프간 철수 날짜를 일방적으로 정하고, 호주에 대한 핵 추진 잠수함 기술 지원 결정으로 오랜 동맹인 프랑스의 강력한 반발을 사는 등 동맹 결속에 틈을 보였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 정치전문매체 더 힐은 "일부 동맹은 워싱턴의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고 믿지 않는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을 마친 뒤 뉴욕에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오후에는 워싱턴으로 돌아와 백악관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만났다. 프랑스의 불만에 개의치 않고 미국이 내린 핵 추진 잠수함 지원 결정을 밀어붙이겠다는 태도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1월 취임 연설과 지난 6월 유럽 순방 때 연설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 "미국이 돌아왔다"는 구호는 이번 유엔 연설에서는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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