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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낙대전에 때아닌 '수박' 싸움…"일베 용어"vs"정치 용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의 명운을 가를 호남 경선(25~26일)을 사흘 앞두고 ‘명낙대전’이 격화하고 있다. ‘화천대유’(성남 대장지구 개발 특혜 의혹) 설전으로 커진 불길에 ‘수박’논란이 기름을 부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21일 심야에 페이스북에다 “성남시의 공영개발을 막으려고 발버둥 친 것도 성남시 국민의힘 정치인들(이다)”라며 “저에게 공영개발을 포기하라고 넌지시 압력을 가하던 우리 안의 수박들(도 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재명이 기득권자와의 전쟁을 불사하는 강단이 없었다면 결과는 민간개발 허용으로 모든 개발이익을 그들이 다 먹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남시장 시절 추진한 대장지구 개발에 특혜를 줬단 의혹을 정면 반박하면서 당시 사업에 반대했던 당내 인사를 ‘수박’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지사는 1시간쯤 뒤 “수박들”을 “수박 기득권자”라고 수정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왼쪽)와 이낙연 전 대표. 호남 경선을 앞두고 양측은 화천대유 의혹에 이어 수박 발언 논란 등으로 다투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왼쪽)와 이낙연 전 대표. 호남 경선을 앞두고 양측은 화천대유 의혹에 이어 수박 발언 논란 등으로 다투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자 이 글엔 “수박은 일베 용어”, “호남 비하 발언”이라는 비난 댓글이 여럿 달렸다. 이낙연 전 대표 캠프에선 22일 “사실관계도 맞지 않고 민주당 후보가 해선 안 될 혐오표현(hate speech)”(이병훈 대변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왜 ‘수박’은 집권여당의 대선 경선에 등장했을까.

“5·18 비하 용어” vs “호남과 관련 없다”

이 전 대표 측의 반발은 ‘수박’이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지에서 활동하는 극우 성향 네티즌들이 호남을 비하하는 용어라고 보기 때문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에 의해 머리에 총탄을 맞고 숨진 시민들을 일베 사용자들이 ‘수박’이라고 비하했다는 게 이 전 대표 측 설명이다. 이 대변인은 “총에 맞아 희생된 5·18 영령들을 비하한 말”이라며 “대선 예비후보가 이 말을 쓰는 건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호남 출신인 이 전 대표 입장에선 두고만 볼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22일 전북 전주시 전주한옥마을 경기전 앞에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시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22일 전북 전주시 전주한옥마을 경기전 앞에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시스

이 전 대표도 22일 연합뉴스TV에 출연해 “호남 비하 언어라고 지적되고 있다”며 “(이 지사는) 그게 아니라고 하는데 그럴 땐 받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호남인들이 싫어하는 말이라면 일부러 쓰지 않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 쓰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굳이 썼다”며 “감수성의 결핍 아닌가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이 지사 측은 ‘수박’의 의미가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을 뜻하는 정치용어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지사 캠프 수석대변인인 박찬대 의원은 “(이 지사의 발언은) 기득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발언이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걸 지적한 정확한 발언”이라며 “수박을 호남 비하로 연결하는건 유감이다. 이건 ‘셀프 디스’ 아닌가”라고 말했다. 캠프 총괄본부장인 박주민 의원은 “수박이 호남 비하라는 주장은 ‘일베 생활을 12년하면서 처음 들어본다’는 (일베 사용자의) 반응도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2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이재명 경기지사가 2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이 지사 역시 이날 서울 동작소방서 방문 후 기자들과 만나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로 일상적으로 쓰는 용어인데 그렇게까지 해석해서 공격할 필요가 있나 싶다”며 “문맥으로 다 알 수 있는데, 그것만 떼어서 다른 의미인 것처럼 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민주당 강성 당원들이 ‘사면론’을 제기한 이 전 대표에게 “겉은 파란색(민주당 당색)이지만 속은 빨간색(국민의힘 당색)인 수박같다”고 비판한 게 당내 ‘수박’ 단어 사용이 본격화된 시점이라는 분석도 있다.

‘수박’ 논란 호남경선 파장은?

이재명 경기지사(가운데)가 17일 오전 광주 동구 전일빌딩245에서 광주·전남·전북 특별메시지 발표 기자회견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경기지사(가운데)가 17일 오전 광주 동구 전일빌딩245에서 광주·전남·전북 특별메시지 발표 기자회견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면 위로 올라온 ‘수박’논란에 각 캠프는 호남 경선에 미칠 파급력을 주시하고 있다. 이 전 대표 측은 이 지사가 직접 발언한 것을 고리로 호남인들의 박탈감을 부각하고 있다. 이 전 대표 캠프 총괄본부장인 박광온 의원은 “수박 발언뿐만 아니라 ‘화천대유’ 등 이 지사 관련한 여러 의혹에 호남분들의 의구심이 적지 않다”며 “호남분들의 투표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아가 이 전 대표 캠프 정무실장인 윤영찬 의원은 “(경선에서 이 지사가 승리해도) ‘수박’이라고 지칭 당한 당원들이 ‘원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 지사 캠프 총괄특보단장인 정성호 의원은 “이 전 대표 측이 제기하는 여러 의혹에 대해서 호남인들은 큰 관심이 없는 편”이라며 “여론 상 대세는 이 지사 측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지사 측 인사는 “‘백제’ 발언 논란처럼 근거없는 네거티브로 인식돼 호남 분들에겐 ‘이 전 대표가 질 것 같으니 저런다’는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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