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에서도 사기·음모 계속된다…"이철 명의 재산이 없더라"

중앙일보

입력 2021.09.22 07:00

업데이트 2021.09.24 18:31

이철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 뉴시스

이철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 뉴시스

“피해자들은 돈 잃고, 시위하고, 소송하느라 삶이 다 망가지고 지쳤죠. 그런데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에서 사기 친 이철과 모집인들은 누구 하나 제대로 사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이미 자기 명의 재산을 가족이나 애인 명의로 돌려놔서 민사 소송에 이겨도 돈을 돌려받지 못해요.”

‘VIK 금융사기 사건’의 피해자 A씨는 최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대법원이 2019년 9월 15일 VIK의 설립자 이철(56) 전 대표를 사기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를 확정 지었지만, 사건 발생 이후 피해자들의 잃어버린 시간과 돈을 보상받는 건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다.

[7회] ‘1조 피해’ 이철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사건, 그 후

VIK의 이철 전 대표와 임원진은 2011년부터 “국내 벤처투자와 크라우드 펀딩으로 큰 수익을 확정적으로 제공하겠다”며 3만명으로부터 1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끌어들였다. 서울 강남에 호화로운 사무실과 3000여명의 대규모 영업사원, 그리고 현 여권 유명 인사들의 특별강연 등이 투자자들을 현혹했다.

하지만 실상은 황당할 정도였다. 회사에는 투자 종목을 기획하고 분석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없었다. 투자한 기업이나 부동산 개발사업은 재무적으로 매우 취약하고 사업 초기 단계여서 사업 성과가 거의 없었다. 이들은 투자금의 20%를 대표이사와 영업사원들의 운영자금 명목으로 떼어가고, 남은 80%만 투자했다. 20% 이상의 성과를 거둬야만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수익금을 지급하는 구조였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이들은 나중에 들어온 후순위 투자자 돈으로 앞선 선순위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폰지 사기’를 벌였다.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사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사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보석으로 나온 이철, 투자자들에게 “검찰 시나리오 예쁘죠?”

피해자들을 두 번 울렸던 건 검찰이 VIK의 이 전 대표와 임원진을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한 뒤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도 거짓 선동과 투자금 모집이 계속됐다는 점이다.

현재 유튜브에는 당시 모집책 중 한명으로 추정되는 인사가 ‘이철의 수요세션’이라는 채널을 운영하고 있고, 최근까지도 이 전 대표가 과거 진행했던 강연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다. 이 채널에는 이 전 대표가 2016년 4월 1심 재판 중 보석으로 풀려난 직후 진행한 강연 영상도 올려져 있다. 지난 7월 3일 업로드된 이 영상의 제목은 ‘검찰의 VIK 죽이기는 5년 전부터 시작이었다’이다. 이 영상에서 이 전 대표는 “우리는 생태계를 만들려고 했던 거고 만들어진 생태계가 없기 때문에 밸류 본대가 번 돈 다 쏟아부어서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했던 건데, 그게 돌려막기로 가버렸다(평가 받았다)”고 항변했다.

이철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설립자가 2016년 4월 1심 재판 중 보석으로 풀려난 직후 진행한 강연 영상이 유튜브에 올려져 있다. 지난 7월 3일 업로드된 이 영상의 제목은 '검찰의 VIK 죽이기는 5년 전부터 시작이었다.(이철 보석직후 수요세션)'. 이 영상에서 이 전 대표는 검찰의 기소가 부당한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이철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설립자가 2016년 4월 1심 재판 중 보석으로 풀려난 직후 진행한 강연 영상이 유튜브에 올려져 있다. 지난 7월 3일 업로드된 이 영상의 제목은 '검찰의 VIK 죽이기는 5년 전부터 시작이었다.(이철 보석직후 수요세션)'. 이 영상에서 이 전 대표는 검찰의 기소가 부당한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그러면서 “검찰은 벤처(기업은) 가치평가가 안 되는데 허무랭랑한 곳에 투자한다고 사기 쳐서 확정수익을 준다는 미끼로 돈을 받아서 돌려막기 한 것으로 봤다. 확정수익은 구조화금융인데 얘를 확정수익이라고 포장하고 벤처기업은 애매모호한 허황된 투자를 유혹한 상품으로 본 것이다. 시나리오 예쁘죠?”라며 검찰의 기소가 부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VIK에 남아 있는 임원들도 계속해서 허위 정보를 제공했다. VIK 사건 당시 본사 지점장이었던 은모씨는 이 전 대표가 기소될 당시인 2015년 11월 ‘밸류 엔젤투자 클럽’이라는 온라인 밴드에 “판결이 난 게 아니다. 검사의 의견은 이러이러하니 법원에서 판단해달라고 소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썼다.

은씨는 1심 선고를 앞둔 2018년 8월에도 “오는 10월 선고를 기점으로 반드시 밸류의 모든 게 정상화될 것이고 지지부진했던 엑싯(투자금 회수) 협상들도 매우 잘 진행될 것이니 조금만 더 지켜봐 주시기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

게다가 VIK 모집인들은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명목으로 이 전 대표의 탄원서를 독려하기도 했다. A씨는 “모집인들은 이철이 잘못한 게 아니라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한 것이라고 피해자들을 또 속였다”며 “투자금을 돌려받기 위해 회사가 정상화돼야 한다는 이야기에 피해자들 상당수가 또 속아 이철을 석방해달라는 탄원서를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본사 지점장이었던 은모씨가 이철 전 VIK 대표가 기소될 당시인 2015년 11월 '밸류 엔젤투자 클럽'이라는 온라인 밴드에 올린 글 일부. [피해자 제공]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본사 지점장이었던 은모씨가 이철 전 VIK 대표가 기소될 당시인 2015년 11월 '밸류 엔젤투자 클럽'이라는 온라인 밴드에 올린 글 일부. [피해자 제공]

옥중경영? 투자금 모집 계속한 이철, 채널A 피해자로 등장 

이 전 대표는 2015년 구속된 이후 소위 ‘옥중경영’을 하며 불법 투자금 유치를 계속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2015년 12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총 5400여명으로부터 약 620억원의 불법 투자금을 모집했다. 금융위원회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자본시장법 위반 사항이다. 검찰 수사와 재판으로 투자금을 예전처럼 모을 수 없게 되자 이 전 대표 등은 투자자들에게 VIK가 투자한 비피유(BPU)홀딩스에 투자하도록 한 뒤 수수료를 받는 수법을 썼다. 대법원은 최근 이철의 해당 혐의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을 확정했다. 이에 이미 확정된 형기 12년과 함께 그는 총 14년 6개월을 복역해야 한다.

이 전 대표는 복역 중에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취재원 강요미수 사건의 피해자로 등장하기도 했다. 최근 이 전 기자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1심 재판부는 이 전 대표의 대리인으로 나선 ‘제보자X’ 지모씨가 중간에서 먼저 이 전 기자에게 한동훈 검사장과 녹취록을 요구하는 등 유도했다고 판단했다. 이 전 대표와 지씨가 일면식도 없는 사이임이 드러나기도 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친정권 성향의 검사들이 이 사건을 ‘검언유착’으로 몰아 지난해 3월 MBC의 관련 보도 이후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며 “검언유착은 없었다는 재판부에 판단에도 최근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건이 또 다른 양상으로 번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사기 피해자들의 연대체인 `금융피해자연대'와 단체 `약탈경제반대행동' 소속회원들이 지난해 11월 25일 경찰청 앞에서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가 자신의 부인을 바지사장으로 세우고 회삿돈을 횡령했다며 경찰에 추가 고발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사기 피해자들의 연대체인 `금융피해자연대'와 단체 `약탈경제반대행동' 소속회원들이 지난해 11월 25일 경찰청 앞에서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가 자신의 부인을 바지사장으로 세우고 회삿돈을 횡령했다며 경찰에 추가 고발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VIK가 아직도 남아 있다…“이철 명의 재산은 없다”

VIK가 대규모 금융 사기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핵심 인물인 이 전 대표와 경영진들이 구속됐지만 어쩐 일인지 VIK는 여전히 남아있다. 지난해 4월 VIK가 회생절차개시를 신청해 같은 해 8월 법원이 이례적으로 받아줬기 때문이다. VIK의 영업 활동은 사실상 중단됐고, 현재는 법정 관리인이 VIK를 맡아 남은 자산을 매각해 피해자들이 가진 채권을 2024년까지 변제할 계획이다.

VIK 피해자 55명은 “승소 판결을 받아 강제집행 절차를 진행하자 VIK가 이를 저지하려 회생절차개시를 신청해 기각돼야 하는데도 받아들여졌다”며 회생법원의 결정에 항고했으나 이 역시 기각됐다.

7000억원대 미인가 투자 유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철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지난 2016년 9월 12일 오전 서울남부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7000억원대 미인가 투자 유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철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지난 2016년 9월 12일 오전 서울남부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VIK가 갚아야 할 채무액이자 피해금액은 7700억원 수준이다. 법원은 이중 채권자(피해자)들에게 약 640억원(8.3%)을 현금으로 변제하고, 나머지는 주식으로 전환하는 회생 계획을 허가했다. VIK의 주식은 사실상 휴지 조각이라 피해자들에게 돌아갈 몫은 회생 계획이 제대로 된다고 해도 640억원 수준이라는 의미다. 남은 피해 금액을 돌려받으려면 피해자들이 이철 대표나 모집인 등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해 받아야 한다. 하지만 승소해도 이미 그들 명의의 재산은 거의 없는 상태라 돈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피해자들 일부는 여전히 VIK의 회생절차에 대해 반발한다. 실질적으로 받을 수 있는 보상액도 작을뿐더러 이철과 함께 투자금을 모집했던 직원들이 남은 자산을 매각해 여전히 월급을 받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VIK 직원은 9명 수준이라고 한다.

법원이 지정한 VIK 관리인 성낙민씨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지금 당장 파산하는 것보다 그나마 남아 있는 투자사를 적정한 가치로 매각해야 피해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철 등 전임 대표들을 상대로 임원 손해배상 청구권 조사확정 소송을 걸어 승소해 그들에게 15억원을 배상 책임을 지웠다”면서 “다만 이미 이철은 본인 명의의 재산이 없는 것으로 확인돼 실제로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피해자들이 입수한 2015년 검찰의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수사 당시 피투자기업에 대한 자금추적 자료 일부. [피해자 제공]

피해자들이 입수한 2015년 검찰의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수사 당시 피투자기업에 대한 자금추적 자료 일부. [피해자 제공]

서민 꿈 짓밟은 금융사기공화국 시즌2

서민 꿈 짓밟은 금융사기공화국 시즌1

수사도 했는데…VIK 투자받은 기업들은 법망 피해

피해자들은 여전히 검찰이 VIK의 투자를 받은 피투자기업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수사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남아있다. VIK에 투자한 돈이 흘러간 최종 목적지를 찾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을 통해 입수한 당시 검찰 수사 기록에는 VIK와 투자를 받은 신라젠·로커스·뉴라텍·벨포트·블루사이드 간 계좌 거래 내역 등 자금 흐름 내역이 상세히 담겨있다.

이 전 대표가 피투자회사 등으로 돈을 빼돌려 정·관계 로비를 벌였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금융피해자연대에서 활동하는 이민석 변호사는 “VIK와 피투자기업이 공모해 사기를 쳤거나, VIK가 피투자기업에 범죄수익을 은닉했을 가능성이 큰데 2015년 검찰이 이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김창호 전 처장이 VIK로부터 6억여원의 불법 정치자금 을 받아 구속됐는데, 검찰이 수사 범위를 더 넓혔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늦었지만 최근 피해자 단체에서 투자 규모가 컸던 업체들에 대해서 고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014년 8월 서울 논현동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VIK) 사무실에서 강연하고 있다. VIK 임원 신모씨 페이스북 캡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014년 8월 서울 논현동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VIK) 사무실에서 강연하고 있다. VIK 임원 신모씨 페이스북 캡처

피해자들이 사건 이후 또 분통이 터지는 건 VIK에서 특강을 했던 유명 인사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이번 정권에서 핵심 요직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김창호 전 처장은 2017년 5월 만기출소해 동국대 석좌교수를 맡고, 모 법무법인 고문으로 취직까지 했다. 김현종 청와대 외교안보특보,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김용익 국민건강보험 이사장,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2012~2014년 VIK 사무실에서 다단계 모집책들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이들은 이철 전 대표나 김 전 처장의 강연 부탁을 받아 간 것일 뿐, 회사의 실체를 몰랐다는 입장이다.

서민 꿈 짓밟은 금융사기공화국
선진 금융감독 시스템을 도입했다던 외환위기(IMF) 이후 25년, 대한민국은 거꾸로 금융사기공화국(www.joongang.co.kr/series/11478)으로 전락했습니다. 조희팔부터 IDS홀딩스·VIK·라임·옵티머스 등 5대 사건의 피해자만 12만명, 피해 금액은 10조원이 넘습니다. 평생 번데기를 판 돈, 남편 사망보험금까지 빼앗긴 서민들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금융사기공화국을 만든 이들을 중앙일보 사회1팀 기자들이 총 10회에 걸쳐 추적합니다. 금융사기를 예방할 솔루션도 찾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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