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가 침 뱉어도…그곳에 묻히고 싶다는 골고다 언덕의 사제[백성호의 한줄명상]

중앙일보

입력 2021.09.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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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행복하길 원한다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갔을 때입니다.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은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한 곳입니다.
지금도 예루살렘 성에서 직선으로 800m 거리에
골고다 언덕이 서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에는 성묘 교회가 있다. 기독교에서는 성지 중의 성지로 꼽히는 곳이다.[중앙포토]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에는 성묘 교회가 있다. 기독교에서는 성지 중의 성지로 꼽히는 곳이다.[중앙포토]

그곳에는 교회가 하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최고의 성지로 불리는 성묘 교회입니다.
교회 이름처럼 이곳은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고,
골고다의 동굴 무덤에 묻힌 곳입니다.

이슬람에 점령당한 이곳을
십자군 전쟁으로 다시 회복해 교회를 세웠습니다.

성묘 교회를 찾았을 때,
저는 그곳에서 생활하는 한국인 신부를 만났습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의 김상원 신부였습니다.
그는 “여기서 기도하며 살다가 여기서 묻히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장소.
그만큼 그리스도교인에게는 영성이 서린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묘 교회 안에는 십자가에서 숨진 예수의 주검을 내려서 눕혔다고 전해지는 돌이 있다.

성묘 교회 안에는 십자가에서 숨진 예수의 주검을 내려서 눕혔다고 전해지는 돌이 있다.

성묘 교회에는 프란치스코 수도회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안 정교회, 이집트 콥틱 교회, 시리아 정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등
무려 6개 종파가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내부 청소는 이 중에서 3개 종파에만 허락됩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안 정교회입니다.
역사 속에서 형성된 일종의 권리행사입니다.

그래서 성묘 교회 청소를 하고 있으면
다른 종파의 사제들이 무척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고 합니다.
바깥에서는 청소가 귀찮은 일이지만,
여기서는 무척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나라입니다.
지금도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이 살고 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메시아로 보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전지전능하시기에 굳이 아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하느님이 직접 하시면 된다고 믿으니까요.

예루살렘에는 유대인과 이슬람 신자인 팔레스타인이 구역을 나누어서 함께 살고 있다.

예루살렘에는 유대인과 이슬람 신자인 팔레스타인이 구역을 나누어서 함께 살고 있다.

김 신부는 사제복을 입고 길거리를 다닐 때,
가끔 정통파 유대교 아주머니가 김 신부를 보고 돌아서며
땅바닥에 침을 뱉는다고 했습니다.

“그럼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김 신부는 “역사 속에서 유대인을 얼마나 박해했으면 저럴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김 신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하고, 구원받길 원한다.
내가 행복하길 원하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건 이웃 사랑의 첫걸음이기도 했습니다.
나와 너,
그사이에 존재하는 장벽을 허무는 비법이기도 했습니다.

그 핵심은 ‘연민의 눈’이었습니다.

성묘 교회 안에서 아르메니안 정교회 사제들이 미사를 드리고 있다. [중앙포토]

성묘 교회 안에서 아르메니안 정교회 사제들이 미사를 드리고 있다. [중앙포토]

김 신부는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예수님은 뺨 때리는 사람에게 뺨 맞고,
 힘 있는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리스도인이 힘으로 뭘 하려고 하면 위험하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너무 힘을 주고 있다는 거다.”

당시 예수님이 힘을 줬다면 어땠을까요.
칼과 창을 들고서 로마 제국에 맞서 무장봉기를 했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거꾸로 갔습니다.
오히려 칼을 들고 자신을 치는 이들을 향해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성묘 교회의 입구에 서서
저는 묵상에 잠겼습니다.

힘을 주는 예수보다
힘을 빼는 예수가
왜 더 큰 예수일까.

힘을 주는 교회보다
힘을 빼는 교회가
왜 더 큰 교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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