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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억 들여 이름 바꾼 대기업…"그런데 뭐하는 회사죠?"

중앙일보

입력

“회사 밖 사람을 만날 때 계속 ‘원래 이름은 OOO였던 회사’라는 식으로 설명을 해야 해서 불편하긴 합니다.”(A기업 팀장)

“새롭다,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아요. 회사의 지향점도 알게 됐습니다.”(B기업 과장)

국내 대기업들이 최근 잇따라 사명을 바꾸면서 안팎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이달에만 대기업 2곳이 새 간판을 달았다. SK종합화학이 1일부로 ‘SK지오센트릭’으로, 6일엔 한화종합화학이 ‘한화임팩트’로 이름을 바꿨다. 대기업들의 사명 변경은 올해 초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기아는 지난 1월 기존 사명 ‘기아자동차’에서 ‘자동차’를 뗐다. SK건설은 지난 5월 ‘SK에코플랜트’로 바뀌었다. LG상사는 LX그룹에 편입되면서 지난 7월부로 사명을 ‘LX인터내셔널’로 바꿨다.

기아가 지난 1월 303대의 드론으로 선보인 새 로고. [사진 기아]

기아가 지난 1월 303대의 드론으로 선보인 새 로고. [사진 기아]

영문 많아진 건 글로벌 시장 때문? 

이들 회사들의 개명 배경에는 우선 회사가 지향하는 미래 비전 키워드를 강조하려는 목적이 깔려있다. 특히 주요 트렌드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기조를 담은 사례가 많다. 한화임팩트는 “수소 중심의 친환경 에너지와 모빌리티, 융합기술 등 혁신기술에 대한 ‘임팩트’(Impact·영향) 투자를 강화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SK지오센트릭은 “지구와 토양을 뜻하는 ‘지오(geo)’와 중심을 뜻하는 ‘센트릭(centric)’을 조합해 지구와 환경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SK에코플랜트도 전통적인 건설업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지적을 뛰어넘어 “환경 사업 부문에서 선도 기업이 되겠다”고 밝혔다.

신사업 확장 의지도 반영된다. 기아는 “차량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것을 넘어 고객에게 혁신적인 모빌리티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업(業)의 확장을 의미한다”고 했다. 영문을 적극 활용해 글로벌 시장 확대 의지를 담기도 한다. LX인터내셔널 관계자는 “‘상사’가 아닌 ‘인터내셔널’을 쓰는 건 기존 트레이딩 중심의 한계 이미지를 뛰어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의미”라며 “사명이 바뀐 후 신사업에 뛰어든다는 이미지도 강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사명 변경 등을 발표하며 SK지오센트릭 경영진이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SK지오센트릭]

지난달 31일 사명 변경 등을 발표하며 SK지오센트릭 경영진이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SK지오센트릭]

사명 변경에 6개월 걸리기도  

사실 사명 변경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상호 등기, 상표권 출원, 공장과 사무실 간판 교체비용 등이 들어간다. 한 5대 그룹 관계자는 “사명 변경에 보통 수십 억 이상 드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고도의 브랜드 작업이기에 광고 회사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SK에코플랜트의 사명 변경 작업에는 광고회사 TBWA가 참여했고, LX인터내셔널의 LX를 정할 때는 광고회사 HS애드가 컨설팅을 해줬다고 한다.

수 개월에 걸쳐 변경 작업을 한 회사도 있다. 한화임팩트 관계자는 “상장 준비, 회사의 비전 수립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명 변경도 추진하게 됐다”며 “사내 임직원 인터뷰를 해서 회사 비전과 성장전략을 수립했고, 사명변경 TF가 새로운 사명안을 모으고 의사 수렴 과정을 거치다 보니 사명 변경에 6개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한화임팩트가 향후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한화에너지와 함께 중추적 역할을 맡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화임팩트의 새로운 CI. [사진 한화임팩트]

한화임팩트의 새로운 CI. [사진 한화임팩트]

일각선 이름만 바꾼 ‘그린워싱’ 우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력 사업이 새 사명에 드러나지 않아 무슨 회사인지 헷갈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그룹 관계자는 “요즘 유행을 따른 이름이라지만 같은 그룹 계열사 사람들도 도대체 무슨 뜻으로 지은 이름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게 사실”며 “뜻이 잘 안 통하니 남들에게 설명하는 게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환경 트렌드나 4차 산업을 반영한다 해도 기업 이름이 바뀌는 건 자칫 고객사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외국 유수 기업들도 변화 노력은 하지만 이름을 쉽게 바꾸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도 “ESG가 강조되고 밀레니얼세대가 소비 주력 세대로 등장하면서 기업이 ‘리브랜드’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며 “하지만 이름만 바꿀 뿐 실체가 그대로이면 ‘그린워싱(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환경주의)’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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