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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14년전 아동 성폭행 피해자, 손해배상도 받아낼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경영의 최소법(37)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피해자의 기대 여명이 줄어드는 경우, 전문적인 감정 등을 통해서 기대 여명을 예측해 일시금으로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기대 여명보다 더 생존한다면, 예를 들어 기대 여명을 3년으로해 손해 배상을 배상받았는데, 5년을 더 살았다면 5년 동안의 손해를 추가로 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교통사고로 인해 기대 여명이 줄어들었지만 예측된 여명 기간을 넘겨 생존한다면, 그 기간이 지난 때부터 3년 이내에 추가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사진 pxhere]

교통사고로 인해 기대 여명이 줄어들었지만 예측된 여명 기간을 넘겨 생존한다면, 그 기간이 지난 때부터 3년 이내에 추가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사진 pxhere]

그리고 성범죄 피해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뒤늦게 발생한 경우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은 PTSD 진단을 받은 진단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도 소개해드립니다.

사례 1

A는 2002년 4월 16일 버스를 운전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해 B가 운전하는 차량을 충격하는 사고를 일으켰고, 이로 인해 B는 경추 골절 등의 중상해를 입었다. 한편 A는 X 보험 회사의 자동차 종합보험계약에 가입돼 있었다.

B는 사고 이후에 X를 상대로 ○○법원에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법원의 신체 감정 결과 B는 ‘경추 골절 등으로 사지마비의 영구 장해’로 기대 여명이 사고 일로부터 5년으로 산정됐다.

이러한 신체 감정 결과를 토대로 법원은 2003년 12월 31일 ‘X는 B에게 3억3000만 원을 지급하고 B는 나머지 청구를 포기하며, 이 사건 사고와 관련해 위 금액을 지급받는 것 외에 일체의 권리를 포기한다’는 내용의 화해권고 결정을 하였고, 2004년 1월 15일 위 화해권고 결정이 확정되었다.

그런데 B는 위 소송 이후에 예상된 여명 기간이 지난 다음에도 계속 생존하게 되자, 2012년 7월 16일 X를 상대로 다시 추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였고, 그러던 중 2016년 7월 29일 사망했다.

[사례 1]은 1, 2심의 결론이 엇갈렸으나, 대법원은 오랜 심리 끝에 ‘예측된 여명 기간을 넘겨 생존하게 된 경우 예측된 여명 기간이 지난 때부터 3년 이내에 추가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례의 경우 B의 기대 여명은 사고 일로부터 5년이므로 추가 손해배상청구는 여명 기간이 끝나는 2007년 4월 15일로부터 3년 이내에 제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B는 6년이 지난 2012년 7월 16일 비로소 소송을 제기했으므로 결국 손해 배상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일시금 형태의 손해배상 판결이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비추어 현저하게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 피해자가 일시금으로 청구하더라도 법원이 재량에 따라 정기금 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할 수 있다면서 일시금 형태의 손해 배상 판결을 하는 것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사례 2

D는 초등학교 4~5학년 때인 2001년 7월부터 2002년 8월까지 Y로부터 4차례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성인이 된 D는 2016년 Y와 우연히 마주친 뒤 악몽과 두통, 수면장애, 불안, 분노 등의 증세에 시달렸다.

2020년 민법 개정으로 미성년자가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 그 밖의 성적 침해를 당한 경우 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그가 성년이 될 때까지는 진행되지 아니한다는 규정이 추가되었다. [사진 pxhere]

2020년 민법 개정으로 미성년자가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 그 밖의 성적 침해를 당한 경우 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그가 성년이 될 때까지는 진행되지 아니한다는 규정이 추가되었다. [사진 pxhere]

Y는 2016년 6월 7일 병원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진단을 받고 Y를 형사 고소했고, Y는 징역 10년형이 확정됐다.

D는 2018년 6월 15일 PTSD 진단을 받는 등 고통을 받았다며 Y에게 1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 소송에서 Y는 마지막으로 성폭력을 당한 때로부터 2002년 8월로부터 10년이 지났으므로 D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다.

[사례 2]의 경우 D는 피해를 입은 날로부터 14년이 지난 우연히 Y를 마주치게 되면서 뒤늦게 PTSD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런데 민법 제766조 제2항에 의하면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을 경과한 때에도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한다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D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되었다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대법원은 사례와 같이 가해행위와 손해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경우, ‘불법행위를 한 날’을 손해의 발생이 현실화한 날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례의 경우 D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은 사건 발생일이 아니라 PTSD 진단을 받은 2016년 6월 7일입니다. 따라서 D는 시효로 소멸하기 이전에 소송을 제기하였으므로 법원은 1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했습니다.

이처럼 가해자와 마주치게 되어 PTSD 증상이 발현한 경우 소멸시효 기산점을 PTSD 진단 일로 보게 되어 아동 성폭행 사건에 대한 피해 구제 범위를 넓힌 것입니다. 참고로 2020년 민법 개정으로 미성년자가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 그 밖의 성적(성적) 침해를 당한 경우 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그가 성년이 될 때까지는 진행되지 아니한다는 규정이 추가되었습니다.

※ 지난 5월 31일 주택임대차 보호법 개정 시행 이전에 주택을 매수한 경우 임차인의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는 하급심 판결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러나 해당 사건의 상급 법원은 결론을 달리하여 갱신 거절을 할 수 없다고 판결을 하였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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