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수원 화성의 성곽길 걸으며 넘나든 과거와 현재

중앙일보

입력 2021.09.20 11:00

업데이트 2021.09.28 10:46

[더,오래] 전명원의 일상의 발견(14) 

어렸을 때 우리는 ‘팔달산’이라는 멀쩡한 이름을 놔두고 늘 ‘팔딱산’이라고 불렀다. 우리의 그 정겹고도 이상하게 발음되던 팔딱산, 아니 팔달산은 늘 수원 한가운데에 있었다.

수원은 성곽의 도시이다. 그 팔달산을 감싸고 성곽이 구불구불 이어져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울처럼 동서남북의 문이 여전히 남아있을 뿐 아니라 모두 성곽으로 연결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 신도시, 정약용의 신문물로 축성한…. 이런 부연설명보다 더 와 닿는 것은 어렸을 때 아빠가 들려준 우스갯소리였다. 남문은 남아있고, 북문은 부서지고, 동문은 도망가고, 서문은 서 있어서 서문이라고 했다. 이게 수원에 해당하는 우스개인지 서울을 기준으로 생긴 우스개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아빠가 그 얘기를 해주었을 때 손뼉을 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진짜 그랬어? 진짜 6.25 전쟁 때 동문이랑 북문은 다 없어졌어? ” 아주 진지하게 물어보기도 했었다. 그때 아빠가 뭐라 했었던가.

수원 화성의 성곽길은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을 걷는 것 같다. [사진 전명원]

수원 화성의 성곽길은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을 걷는 것 같다. [사진 전명원]

어쨌거나 지금의 수원 화성은 잘 단장되고, 걷기 코스로 말끔하다. 어린 시절의 화성 성곽은 지금처럼 테두리 원형을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지 않았다. 꾸준하게 복원하고 가꾸어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된 수원의 화성이다. 끊어졌던 성곽이 복원되었기에 성곽을 따라서 완전한 한 바퀴 코스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팔달문에서 시작한 걸음은 화서문- 장안문 -방화수류정- 창룡문을 거쳐 다시 팔달문으로 원점 회귀한다. 코스 안내에는 3시간이라고 나와 있었지만, 스탬프를 찍지 않고 그저 걸어서 돌았기에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수원 토박이가 ‘남문’이라 부르던 곳은 이제 ‘팔달문’이라는 정식 호칭이 더 익숙하지만, 아직도 흔하게 튀어나온다. “예전엔 항상 ‘남문’에서 놀았는데…. 남문이 최고였지.” 하고 말이다. 수원 토박이신 아빠의 말씀으로는 예전엔 차들이 지금과 같이 팔달문을 두고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 가운데로 통과해 다녔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도로가 넓지 않고, 차도 별로 없던 시절 얘기일 것이다.

팔달문 주변의 상권은 쇠락했지만, 재래시장과 화성행궁 주변은 활기를 잃지 않고 있다. 여전히 시장에선 소란한 실랑이가 넘치고, 대형마트에선 볼 수 없는 희한한 것을 종종 발견하게 되는 즐거움도 있다. 특히나 행궁 주변의 ‘행리단길’이라고 불리는 행궁동 주변은 작은 공방들과 맛집, 카페들이 모여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성곽을 따라 돌다 보면 내리막길 아래로 화서문이 보인다. 화서문의 생김은 독특하고 아름답다. 전면부에 둥근 옹성을 두른 모양이 눈길을 사로잡는데, 평지에서 보는 것보다는 역시 약간 위에서 조망해야 더 예쁘다. 나는 그 주변의 중·고등학교에 다녔다. 성곽에 매달려 멀리 내다보았다. 저기쯤에 내가 다닌 학교가 있겠네. 여전하려나, 갑자기 아련하기도 했다.

도로에 한 번도 내려서지 않고 옛 시절의 보초인 듯 성곽만 따라 그렇게 장안문을 지나고 방화수류정까지 간다. 중학교 때 언니는 미술을 했다. 나무로 된 화구 박스가 그렇게나 신기했는데, 나는 그림엔 젬병인 아이였다. 화구 박스를 멋지게 들고 그림을 그리러 간다는 언니를 따라나선 곳 중엔 방화수류정도 있었다. 처음엔 군사 지휘부로 만들었다는데 이렇게 멋진 곳을 군사 지휘부로만 쓰기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역시나 옛 시절에 이곳은 정자의 역할도 겸했다고 한다.

걸음은 이제 창룡문에 닿는다. 넓은 활터가 함께 있다. 미국에 사는 조카가 어린 시절에 왔을 때 데리고 왔던 기억이 있다. 미국에 이민 간 국가대표 양궁선수의 수업을 들었다는 조카는, 같은 종류의 활은 아니었지만 나름 안정된 자세로 활을 쏘았다. 그 귀엽던 녀석이 이제 사관생도가 된 세월이다. 활 대신 총을 들고 사격연습을 한다. 활터를 보며 조카를 한 번 더 떠올리며 그리워했다.

걷다가 멀리 눈을 들어 바라보면 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전명원]

걷다가 멀리 눈을 들어 바라보면 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전명원]

새벽에 내린 비로 성곽길을 걷는 이는 드물었다. 더욱이 이른 아침이라 호젓했다. 천천히 성곽만 따라 걷다 보니 그렇게 다시 팔달문에 닿았다. 바로 지동시장으로 내려올 수 있다. 지동시장으로 내려서면 바로 ‘통닭 거리’를 만난다. 어렸을 때부터 그저 가던 곳이, 영화에 나오며 유명해지더니 사방에 ‘통닭 거리’광고판을 달고 있다. 익숙하던 것이 유명해지면 좋기도 하고, 새삼 낯설어지기도 한다.

수원에 살면서도 화성 성곽길을 한 바퀴 도는 일은 맘을 먹고서야 나서게 되었다. 수원사람으로서는 흔하게 보아왔고, 흔하게 보이는 것이 화성이지만 일부가 아닌 전체를 돌아보는 일이 왜 이리 어려웠나 싶다. 성벽을 따라 두어 시간이었다. 수원 화성의 성곽길을 따라 걸으며 어쩐지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성곽을 따라 걸으며 차곡차곡 쌓아 올린 돌벽에 살며시 손을 대 본다. 잠시 옛사람이 된 것 같다. 걷다가 멀리 눈을 들어 바라보면 고층빌딩들이 솟은 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2021년의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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