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악마' 그라목손의 저주…뿌리뽑아도 죽지않는 잡초 킬러

중앙일보

입력 2021.09.20 09:00

업데이트 2021.09.20 10:47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80)  

환자는 그라목손(파라쿼트) 음독으로 응급실에 실려 왔다. 극악의 치사율로 ‘푸른 악마’라는 별명이 붙은 농약이다. 옛날 같으면 사약으로도 쓰였어도 손색없는 물질이다. 그만큼 목적도 효과도 확실하다. 끝없는 고통, 그리고 종국엔 어김없는 죽음. 일단 한순간이라도 입안에 머금으면? 모든 게 끝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설령 삼키지 않았더라도….

“겨우 한 모금인데? 에이. 아무 증상도 없네. 별거 아니잖아.”

이런 안타까운 환자를 종종 겪었다. 그들은 며칠 후,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모두 사망에 이르렀다. 어느 유명한 만화책의 대사 “너는 이미 죽어있다”가 떠오른다. 높은 치사율, 다소간의 잠복기, 그리고 회생 불가능. 이 3가지의 강렬한 요소가 아마도 사람들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일반인에게도 꽤나 유명세를 떨쳤다. 한때는 도시 괴담의 단골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실수로 그라목손을 마셨는데 괜찮냐는 질문이 올라오고는 그 이후 접속 기록이 전혀 없다는 식의 괴담이다.

농약은 잡초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뱃속에 들어가면 사람도 죽인다. [사진 pxhere]

농약은 잡초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뱃속에 들어가면 사람도 죽인다. [사진 pxhere]

원래 그라목손이 유명한 이유는 치사율 때문이 아니고 확실한 제초 효과 때문이었다. 선택적으로 잡초를 제거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어느 농약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더구나 가격도 저렴했다. 완벽한 제초제의 조건을 모두 갖춘 셈이다. 당연히 농촌에서 널리 사용됐다.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라목손 금지 발표에 많은 사람이 반발했다. 모든 농부가 반대했다. “칼부림 사건으로 사람이 죽었다고 요리에 칼을 못 쓰게 하면 되나?” 사용자가 문제지 제품이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제초제로 흠결이 있어서가 아니라 엉뚱한 자살수단의 이유로 금지 되다 보니, 사람들이 정책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농약은 잡초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뱃속에 들어가면 사람도 죽인다. 지독한 우울증 때문인 사람도 있고, 욱하는 홧김에 실수한 사람도 있다. 아무튼 자살수단으로 농약을 택하는 사람이 많다. 매년 1만5000명 이상 농약을 마신 후 응급실을 찾으며 그 중 무려 3000명 이상 죽음에 이르렀었다. 그래서 나라에서 칼을 빼 들었다. 그라목손을 없애기로 했다. 한강 다리에 뛰어내리지 말라는 문구를 새기는 것처럼. 과연 효과가 있을까?

물론이다. 엄청난 효과를 냈다. 그라목손이 사라지자 농약으로 죽는 사람이 드라마틱하게 줄어들었다. 3000명이 넘던 사망자가 이후 3분의1인 1000명가량으로 줄어들었다. 그라목손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중독 사망자가 전부 줄어드는 성과를 보였다. 풍선효과? 당연히 발생했다. 그라목손이 사라지자 글리포세이트 같은 대체 농약을 자살수단으로 택하는 사람이 늘었다. 하지만 그라목손만큼 독한 건 하나도 없었다. 다른 농약이라면 현대의학으로 80~90%는 살려낼 수 있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결국 모두 죽는 건 아니다. 실패에 굴하지 않고 두 번 세 번 결국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적절한 정신적 치료를 받고 정상 생활로 복귀하는 사람 또한 충분히 많다. 그들에겐 한 번 더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살아날 기회. 그리고 살아갈 기회. 그라목손의 금지가 전체 자살자 숫자를 줄인 건 우연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 우리나라의 그라목손 금지는 조금 늦은 편이다. 선진국들은 치사율 높은 농약을 진작부터 금지해왔다. 대체할 수 있는 제초제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도 늦었지만, 착실히 움직였다. 그라목손에 이어 지오렉스 등 치사율 높은 농약을 차례로 금지했다. 그 때문에 농약을 음독한 환자가 응급실에 실려 와도 예전처럼 초장에 치료를 포기하는 일은 이제 드물다. 십중팔구 문제없이 건강을 되찾아 드릴 수 있다.

요새도 가끔 그라목손을 음독한 환자들이 응급실을 찾는다. 10년 넘게 창고 구석에 보관하던 걸 기어이. 죽을 목적으로 10년씩이나 농약을 보관한 건 아니겠지만, 아무튼 금지된 농약이 여전히 어딘가 보관되고 있는 건 문제가 있다. 혹시나 추석에 고향에서 그라목손이나 파라쿼트라는 이름의 농약을 발견하면 빠른 신고와 처분을 권고한다. 중국에서 밀수입이 일고 있다는 소문도 있는데, 사실이라면 이 또한 심각한 문제다.

모든 규제가 꼭 사회의 악은 아니다. 어떤 종류의 규제는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 마치 총기규제처럼. 예전에 죽었던 그라목손 중독 환자가 생각난다. 정말로 죽고 싶지 않아 하던, 꼭 살고 싶어 했던 그 모습이 아직 생생하다. 그 농약만 아니었다면 분명 살릴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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