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용광로 옆에서 일하다 숨진 근로자…법원 "업무상 재해"

중앙일보

입력 2021.09.20 07:00

6년간 용광로 근처에서 고온과 만성 소음에 시달려야 하는 환경에서 일하다 사망한 근로자가 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 이종환)는 6년 넘게 용광로 근처에서 업무를 수행하다 2019년 8월 공장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결국 사망에 이른 A씨의 배우자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와 장의비 등을 지급해달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2013년 4월부터 사망한 때인 2019년 8월까지 B회사 자동차 부품 제조공장에서 근무했다. 공장에서는 용광로에서 쇠를 녹여 부품을 생산하는 공정이 이뤄졌다. A씨는 용광로 부근에서 원료 주입상태를 확인해 첨가제를 배합하고, 시료용 쇳물을 긴 국자를 이용해 채취·검사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24시간 가동되고 있는 용광로 인근의 온도는 약 35도에 이르렀고, 평균 소음은 만성적인 소음 수준인 82데시벨(dB)이었다. 이는 지하철 소음보다 높은 수준으로 장기간 노출되면 청력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수준이다.

원고 측에 따르면 A씨는 회사에 입사한 이후 월평균 252시간 이상 근무하는 등 오랫동안 과로 상태에 있었고, 1주 간격으로 주·야간 교대근무를 했다. 야간 근무 때는 주간 근무 때보다 휴식시간도 30분 짧았다. A씨는 사망하기 5개월 전에는 건강상태가 악화돼 대상포진이 발병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A씨는 2019년 8월 25일 야간 근무를 위해 출근했다가 그날 자정을 넘긴 무렵 공장 내에 쓰러진 채 발견됐다. 곧 대학병원으로 이송돼 처치를 받았지만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허혈성 심장질환'을 사망 원인으로 판단했다.

A씨의 배우자는 "남편이 과로, 교대 업무 등의 영향으로 허혈성 심장질환이 발병해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A씨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지급을 거절했다.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씨가 사망 전 근무하던 환경과 근무시간, 근무형태 등을 종합할 때 A씨는 업무상의 이유로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질병의 발생 원인이 수행한 업무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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