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의리도 이것 있을때나" 연봉 2배 올린 '프로이직러'의 소신[MZ버스 엿보기]

중앙일보

입력

“쉬운 것만 찾고 놀고 먹으려는 게 아닙니다. 일상을 지키고 싶을 뿐.”
“퇴사하면 참을성 없다고 하는데 '존버'해도 회사는 해주는 게 없어요. 버틸 이유가 있나요.”

중앙일보 취재팀은 ‘MZ버스’(MZ세대들의 세계)에서 오가는 대화를 살펴봤다. 만 20세~39세 251명을 대상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설문과 카카오톡 오픈 채팅을 진행했다. 위의 답변은 ‘잦은 이직’에 대한 것이다.

“동료, 선후배, 팀이 마음에 안 들면 회사를 그만두나요” 물음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응답(49.6%, 124명)이 ‘동의한다’(32%, 80명)는 답을 앞섰다. 마음에 안 드는 것에 대한 각자의 표현은 단호했다.

동료와 선후배, 팀이 맘에 안 들면 회사를 그만두나요?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동료와 선후배, 팀이 맘에 안 들면 회사를 그만두나요?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경제·문화 등이 빠르게 변하는데 기성세대가 만든 시스템은 속도를 못따라가는 것 같아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란 편견과 오해가 있는데 오히려 타인에게 피해 안주려고 노력하고 합리적.”

광고기획사에 다니던 서모(29)씨는 지난 5월 같은 업계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조직문화나 체계가 엉망’이라는 느낌이 누적돼 이직을 결심했다고 했다.
 “팀장은 꼭 퇴근 직전에 날 회의실로 불렀다. 본인 자랑, 남 뒷말을 1시간 정도 하고 막판에 업무 얘기를 1분 하면서 ‘내일 아침 보여달라’고 한다. 이렇게 야근하는 날들이 많았다. 여성 동료들에게 성희롱성 발언도 종종 있었다. 또 일하는 체계나 고충 처리 체계가 없다고 느꼈다.”

 서씨는 “과거 회의 때 상무가 있는 자리에서 의견을 낸 적 있는데 팀장이 ‘나대지 말라’고 했다. 이후에는 말도 못 하게 했고 상사의 피드백이 대부분 비판처럼 느껴졌다”면서 “지금 회사는 보다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평생 한 직장? “NO!”

‘평생 한 직장에 다니는 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동의하지 않는다’(63.4%, 159명)는 답(중앙일보 설문)은 MZ버스의 직업관(觀)일 것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 5월 발표한 ‘이직자 총괄보고서’(만 19세 이상 34세 이하 청년 3224명 조사)에 따르면 청년 46%는 이직을 경험했다. 두 번 이상 이직한 이들도 55%에 달한다.

대기업에 다니다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이모(34)씨는 “조직의 부품 같은 삶 대신 개인의 성장과 의미를 찾고 싶었다”고 했다. 이씨는 “이전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얘기했다.

관계와 의미를 고민한다 

시중은행에서 두 번의 이직 끝에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에 다니는 장모(33)씨는 “잦은 야근과 경쟁으로 선배들의 삶이 불행해 보였다”면서 “직업적 성취보다 여유있는 삶을 느끼고 싶어 이직을 거듭해 지금 직장에 왔다. 연봉은 줄었지만 이전보다 내 생활이 있어 후회는 없다”고 했다.

이직을 결심한 20~30대들은 공통적으로 자신과 회사 사이의 ‘관계’와 ‘의미’를 고민했다. 서씨는 보다 수평적이고 업무 몰입이 잘 되는 환경을 찾아갔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이씨는 회사의 부속품 같은 느낌 대신 ‘개인의 성장’을, 은행을 다니던 장씨는 자신이 직장으로부터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 떠났다.

“의리는 안정·성장 있을 때 지키는 것”

일부 대기업 출신 직장인 이외에 끊임없이 계층 이동을 시도한 ‘생계형 프로이직자’도 있다. 고졸 직장인 강모(33)씨는 방송국 파견직을 시작으로 4번의 이직을 거쳐 현재 모 금융기업에서 영상 제작 일을 하고 있다.

강씨는 “10년 전 연봉 1800만원에서 시작해 이직을 거쳐 현재 4000만원 이상의 연봉을 받고 있다”면서 “이직할 때마다 선배들은 ‘또 떠나냐’고 하는데 회사에 대한 의리도 제대로 된 처우, 안정성, 성장 가능성 등의 기본적인 보장이 될 때나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린다

이건우 현대차그룹 인재존중 사무연구직 노조위원장. 사진 대상노무법인

이건우 현대차그룹 인재존중 사무연구직 노조위원장. 사진 대상노무법인

MZ버스에서는 일의 의미뿐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린다. 최근 LG전자, 현대차 등 대기업에선 MZ세대로 불리는 30대 사무직들이 별도의 노동조합을 설립해 교섭단위 분리 등을 주장한다. 기존 노조가 생산직 중심이라 자신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LG전자와 현대차 사무직 등 이른바 ‘MZ 노조’를 대리하는 김경락 노무사(노무법인 대상)는 “평생 직장 시대가 저물었고 정년은 허울뿐인 상황에서 사무직 노조는 생산직 노조보다 쉽게 희망퇴직이나 압박으로 회사를 나가는 구조였다”면서 “그간 사무직은 소수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MZ세대가 권리를 찾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다. 새로운 형태의 노조가 장애물이 아니라 회사와 기존 노조와 상생할 수 있는 지점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노조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도 늘었다. 장석원 민주노총 대외협력부장은 “IT 회사, 제조업 사무직과 연구직인 2030 조합원이 느는 추세”라고 했다. 그는 “MZ세대가 눈에 보이는 세대적 특성도 있지만, 개인이 처한 사회적 조건에 따라 고민이 다른 부분들도 있다. 노조라는 울타리에서 이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어떻게 엮어낼지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