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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에 바퀴벌레"vs"뭘 믿고 까불어"…교사들 막장싸움 왜[이슈추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4일 전북 전주 A중학교와 B초등학교 학부모 1명씩 참여한 모니터링 결과 두 학교가 함께 쓰는 급식실 내 에어컨 뒤에서 죽은 벌레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사진 A중학교

지난달 24일 전북 전주 A중학교와 B초등학교 학부모 1명씩 참여한 모니터링 결과 두 학교가 함께 쓰는 급식실 내 에어컨 뒤에서 죽은 벌레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사진 A중학교

"급식 질 낮아" 교육지원청에 문제 제기

전북 전주에서 급식실을 함께 쓰는 한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갈등을 빚고 있다. 애초 급식 문제로 시작된 갈등이 교권 침해 논란으로 번지면서 양보 없는 '치킨 게임'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전주 A중학교는 19일 "급식 질이 너무 낮아 불만을 토로하는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이 많아 지난 4월 말 전주교육지원청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아직까지 개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급식실을 운영하는 B초등학교는 "중학교의 불만은 알지만, 이는 급식실을 함께 쓰는 공동조리학교의 공통 문제"라며 "중학교 측이 급식실 운영권을 가져가기 위해 괜한 트집을 잡는다"고 맞서고 있다.

현재 두 학교에는 540여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도대체 두 학교는 어쩌다가 갈등을 빚게 됐을까.

지난 4월 20일 전주 A중학교 한 교사가 본인이 먹던 감자탕에서 바퀴벌레를 발견했다는 내용을 진술한 사실 확인서. 사진 A중학교 교장

지난 4월 20일 전주 A중학교 한 교사가 본인이 먹던 감자탕에서 바퀴벌레를 발견했다는 내용을 진술한 사실 확인서. 사진 A중학교 교장

'맛 없다', '식은 밥' 학생들 불만 빗발쳐

양측의 갈등은 지난 4월 20일 점심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 한 교사가 먹던 감자탕에서 바퀴벌레가 나왔다는 게 중학교 측 주장이다. 함께 급식을 먹던 동료 교사 두세 명도 화들짝 놀라 식사를 중간에 멈추고 모두 급식실을 나왔다고 한다.

중학교 측은 "(바퀴벌레 사건 이후) 급식 질 개선을 위한 공동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지만, 초등학교 측이 거부해 무산됐다"고 주장한다. 지난 7월에는 "급식 조리교를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변경해 달라"고 전주교육지원청에 청구를 했다. '음식 맛이 없다', '양이 적다', '음식이 식어 있다' 등 학생들의 불만이 빗발친다는 이유에서다.

급식 조리교 변경 신청에 관한 찬반을 묻는 설문에 중학교 전체 학생의 98.4%가 찬성한 것도 계기가 됐다. 중학교 측은 "급식 질이 떨어지다 보니 학생들이 먹지 않고 버리는 음식이 많아 잔반통이 거의 매일 찬다"고 전했다. 초등학교 측에는 영양교사 교체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냈다.

중학교 교장과 초등학교 교무부장 말다툼

이 과정에서 지난 6월 8일 양측의 갈등이 폭발했다. 중학교 교장과 초등학교 교무부장이 급식실에서 말다툼을 벌인 일이다.

같은 사건을 두고 양측 주장은 첨예하게 엇갈린다. 중학교 교장은 "교감 선생님과 함께 퇴식구에 잔반을 버리고 있는데, 20~30m 떨어져 있던 교무부장이 오더니 우리에게 손가락질하며 '배운 사람들이 줄을 서야지'라며 시비조로 말했다"며 "너무 화가 나 퇴식구에서 2m 떨어진 곳으로 교무부장을 조용히 불러 '야, 너 도대체 뭘 믿고 까불어?'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초등학교 교무부장이 나에게 꼬투리를 잡으려고 수없이 시비를 걸었지만, 말려들지 말자고 결심해 피해 다녔는데 걸려들고 말았다"며 "인격 수양이 부족했다"고 했다.

지난달 24일 전북 전주 A중학교와 B초등학교가 공동으로 쓰는 급식실 에어컨 뒤에서 죽은 벌레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중학교 측은 급식실 운영을 맡은 초등학교 책임이라고 보는 반면 초등학교 측은 시설 관리를 담당하는 중학교 책임이라고 맞서고 있다. 사진 A중학교

지난달 24일 전북 전주 A중학교와 B초등학교가 공동으로 쓰는 급식실 에어컨 뒤에서 죽은 벌레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중학교 측은 급식실 운영을 맡은 초등학교 책임이라고 보는 반면 초등학교 측은 시설 관리를 담당하는 중학교 책임이라고 맞서고 있다. 사진 A중학교

"교장이 협박" VS "교사가 시비" 공방

초등학교 교무부장의 설명은 다르다. 그는 "당시 퇴식구 앞에서 교장·교감 선생님에게 정중하게 '줄을 서 주십시오'라고 부탁했는데 교장 선생님이 저를 째려보면서 '야 이 XX야 뭐라고 했어?'"라고 했다"며 "'배우신 분이 욕설을 하시면 안 되죠'라고 했더니 '너 이 XX, 뭐라고 했어? 까불지 말라고 했지'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후 교장 선생님에게 '줄을 서 달라고 말씀드린 것밖에 없는데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하다'며 두 차례 허리 숙여 사과했다"고 했다.

B초등학교는 지난 7월 27일 교무부장의 요청으로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중학교 교장이 교무부장을 협박했고, 교권 침해 행위를 했다"고 결론 냈다. 그러면서 중학교 교장에게는 사과를 권고했다.

이에 중학교 교장은 전주교육지원청에 이의를 제기했다.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리려면 3일 전에 당사자에게 통보해야 하는데 하루 전에 출석 통지서가 왔고, 교권 침해를 주장하려면 교육 대상이 학생이어야 하는데 교장은 이에 해당하지 않아 무효"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전주교육지원청은 "일부 절차에 문제가 있지만, 교권보호위원회를 연 것은 합당하다"는 취지로 중학교 교장에게 통지한 상태다.

중학교 측은 영양교사의 일을 초등학교 교무부장이 대신 방어하면서 두 학교 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초등학교 교무부장은 "영양교사를 보호하는 건 학교 실무를 담당하는 교무부장이자 학교급식소위원회와 교권보호위원회 위원으로서 당연한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A중학교 측이 지난 7월 "급식 조리교를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변경해 달라"며 전주교육지원청에 청구한 자료 일부. 급식 조리교 변경 청구 사유가 담겼다. 사진 A중학교

A중학교 측이 지난 7월 "급식 조리교를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변경해 달라"며 전주교육지원청에 청구한 자료 일부. 급식 조리교 변경 청구 사유가 담겼다. 사진 A중학교

급식실 에어컨 벌레 사체…"중학교가 관리"

논란이 커지자 영양교사는 B초등학교를 떠났다. 2019년부터 6개월 기간제 교사로 근무해 온 그는 계약 기간이 끝난 지난 달 말 신규 채용에 다시 지원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교무부장은 "해당 영양교사가 근무하는 동안 초등학교 학생과 학부모 모두 급식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다"고 말했다.

2학기 개학 후에는 급식실 위생 문제가 불거졌다. 지난달 24일 초등학교·중학교 학부모 1명씩 참여한 모니터링 결과 급식실 에어컨 뒤에서 죽은 벌레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에 대해 초등학교 교무부장은 "사진 속 벌레는 귀뚜라미이고, 발견된 곳도 조리실이 아니다"며 "초등학교가 급식실을 운영하는 주체이긴 하지만, 급식실은 중학교 건물이어서 방역과 소독은 중학교 담당이기 때문에 급식실에서 벌레가 나온 건 시설을 관리하는 중학교 책임"이라고 말했다.

'감자탕에서 바퀴벌레가 나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당시 벌레를 확인한 조리종사원은 '날파리'였다고 주장했다"며 "배식판을 옮기는 과정에서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그 자리에서 충분히 사과했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A중학교 교장이 받은 B초등학교 교권보호위원회 조치 결과 통지서 일부. "A중학교 교장이 B초등학교 교무부장을 협박했고, 교권 침해 행위를 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사진 A중학교 교장

A중학교 교장이 받은 B초등학교 교권보호위원회 조치 결과 통지서 일부. "A중학교 교장이 B초등학교 교무부장을 협박했고, 교권 침해 행위를 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사진 A중학교 교장

교육지원청 "꾸준히 상담…급식 분리 추진"

전주교육지원청은 난감한 처지다. 교육지원청은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B초등학교 영양교사와 조리종사원들에게 급식 질 개선을 위한 상담과 모니터링 등을 꾸준히 해왔다.

노용순 전주교육지원청 교육국장은 "근본적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은 각각 선호하는 음식 메뉴나 먹는 양이 달라 공동조리교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크고 작은 갈등이 있다"며 "이 때문에 영양교사와 조리종사원들 사이에서 공동조리교는 기피 대상"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주에는 공동조리교 5곳이 있다.

노 국장은 "환경과 예산만 되면 급식실을 분리하는 게 맞다"며 "A중학교는 내년에 급식실을 분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15억원 정도 본예산에 반영한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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