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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유엔헌장 찢었다…文 나설 올해 유엔총회 기조연설은

중앙일보

입력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부터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시작되는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 나선다. 임기 중 마지막 연설이자 남북 유엔 동시가입 30주년을 맞아 한반도 평화 구상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해마다 이뤄지는 유엔 총회 기조 연설은 문 대통령뿐 아니라 193개 회원국 대표가 나서서 전 세계를 향해 국가 비전과 대내외적 메시지를 내놓는 총회의 ‘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9월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제74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하는 모습.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9월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제74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하는 모습. 청와대 사진기자단.

①회원국이라면 누구나, 아무 거나

유엔 총회 기조연설은 회원국이라면 어느 나라든, 어떤 주제와 관련해서든 연설할 수 있다. 연설 시간은 15분 정도로 권고하지만 강제 사항은 아니다. 사실상 각국 대표의 자유 발언이다.

기조연설은 유엔 총회의 ‘일반토의(General debate)’ 기간에 이뤄진다. 유엔은 매 회기의 첫 일정으로 1주일 정도 일반 토의를 진행하는데, 해당 회기에 유엔이 다뤄나갈 현안과 의제를 전반적으로 논의한다.

②왜 항상 브라질이 1번?

각국을 대표하는 인사들이 모이다보니 누가 먼저 연단에 서는지도 관심이다. 관례상 첫 세 국가는 고정인데, 브라질→미국→의장국 순이다.

브라질이 첫 주자인 건 1950년대부터 굳어진 전통이다. 유엔 창립 초기 미국은 유엔을 쥐락펴락 하는 것처럼 보일까 염려해 총회 첫 연설자로 나서는 걸 꺼렸다. 다른 회원국들도 미국 대표의 연설이 사실상 하이라이트라는 걸 뻔히 알기 때문에 굳이 먼저 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이때 유엔 총회의 첫번째 특별회기 등을 주재한 경험이 있는 브라질이 나섰다. 그게 관례가 돼 유엔 총회 기조연설은 1955년 이후 단 네 차례를 제외하곤 브라질 대표의 연설로 시작했다.

미국은 유엔 본부가 위치한 뉴욕이 속한 나라로서, 미국의 대표는 두번째 연설을 맡는다. 그 다음은 매해 달라지는 총회 의장국의 대표다.

이렇게 세 나라를 제외하곤 각국 대표의 급에 따라 기조연설 순서가 정해진다. 통상 의전서열을 따르는데 국가원수인 국왕과 대통령이 먼저이고, 다음으로 총리, 외교장관 등 순서다. 사상 최초로 대면과 비대면 방식을 섞어서 진행되는 이번 유엔 총회에서도 이 원칙은 거의 그대로다.

모든 나라 대표가 앞 순서를 선호하는 건 아니다. 연설자의 개별 선호와 스케줄에 따라 연설 순서는 뒤바뀌기도 한다. 지난 2013년 베냐민 네타냐후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맨 마지막 연설자로 나섰다. 연설에 앞서 미ㆍ이란 핵 협상과 관련한 전반적인 분위기를 살피고 미국과 정상회담도 끝낸 뒤에야 연단에 섰다는 분석이 나왔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2일(현지시간) 제75차 유엔 총회 일반 토의에서 연설하는 모습. 제공 유엔.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2일(현지시간) 제75차 유엔 총회 일반 토의에서 연설하는 모습. 제공 유엔.

③막말, 돌출행동 ‘관종’ 정상들도

각국의 지도자들이 대표로 나와 자유발언을 할 수 있으니, 과거 유엔 총회 연단에선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종종 빚어졌다.

1960년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 나섰던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총리는 무려 약 4시간 30분에 걸쳐 미국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아직도 그가 세운 최장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2006년에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연단에 서서 “(지옥의) 유황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앞서 연설했던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을 ‘악마’에 빗댄 것이다.

리비아의 독재자였던 무아마르 카다피는 지난 2009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 나서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을 ‘테러 이사국’이라 비난하며 100분 가까이 장광설을 펼쳤다. 유엔헌장 사본을 들고 나와 “우리는 이 문서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그 자리에서 찢어버리기도 했다.

2009년 9월 무아마르 카다피가 유엔총회 기조연설하는 모습. 그는 메모해온 종이 뭉텅이를 들고 흔들거나 유엔 헌장 사본을 찢기도 했다. 제공 가디언, AFP, 게티.

2009년 9월 무아마르 카다피가 유엔총회 기조연설하는 모습. 그는 메모해온 종이 뭉텅이를 들고 흔들거나 유엔 헌장 사본을 찢기도 했다. 제공 가디언, AFP, 게티.

2010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당시 이란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미국이 실질적으로 9ㆍ11 테러 공격의 배후에 있었다”고 주장해 미국과 영국 등 대표단이 총회장에서 즉각 퇴장하기도 했다.

2012년엔 네타냐후 전 이스라엘 총리가 폭탄이 그려진 판넬까지 들고 나와 이란의 핵 개발 위험과 관련한 프레젠테이션을 해 눈길을 끌었다.

2012년 9월 베냐민 네타냐후 전 이스라엘 총리가 폭탄이 그려진 판넬을 들고 이란의 핵 개발 수준과 관련해 "현재 70%에 도달했으며 90% 수준에선 레드라인을 그어야 한다"고 설명하는 모습. 제공 유엔.

2012년 9월 베냐민 네타냐후 전 이스라엘 총리가 폭탄이 그려진 판넬을 들고 이란의 핵 개발 수준과 관련해 "현재 70%에 도달했으며 90% 수준에선 레드라인을 그어야 한다"고 설명하는 모습. 제공 유엔.

하지만 이런 장면들은 최근 들어 거의 사라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013년 9월 “이제 전 세계 독재자가 거의 사라져, 유엔 총회가 모처럼 진지한 논의의 장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그러던 중에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기대를 깨지 않았다. 2017년 북한을 ‘불량 정권’으로 지목하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 대해 “로켓맨이 자살임무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북한의 “완전한 파괴”까지 거론했다. 당시 자성남 주유엔 북한 대사는 미국의 연설 순서가 되자 총회장을 나가버렸다.

2017년 9월 1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 전 자리에서 일어나 퇴장하는 자성남 당시 유엔주재 북한 대사. CNBC 홈페이지 캡처.

2017년 9월 1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 전 자리에서 일어나 퇴장하는 자성남 당시 유엔주재 북한 대사. CNBC 홈페이지 캡처.

④올해 관전포인트는? 

미얀마와 아프간 정세가 이번 총회의 주된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두 나라의 대표로 누가 나올지도 관심이다. 미얀마의 경우 군부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고, 아프가니스탄에선 이슬람 극단 무장 세력 탈레반이 미군 철수 뒤 정권을 장악했다.

현재로선 양국 모두 축출된 전 정부가 임명했던 대사가 유엔에 주재하고 있는데, 미얀마 군부나 아프간 탈레반이 새 대사를 임명하려 할 경우 이를 유엔이 인정할지 문제가 남아 있다. 새 대사를 승인할 경우 곧 유엔, 더 나아가서는 국제사회가 해당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했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뉴욕 타임스(NYT)는 11일(현지시간) ‘곤경에 빠진 유엔 :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을 위해 누가 목소리를 내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이 세계 최대의 외교 행사에 난제를 던졌다. 각국을 대표할 정당성 있는 대사를 누구로 정할지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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