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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의 시력 잃고, 인대가 끊어져도…그는 한판승을 메쳤다 [별★터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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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근 선수가 2016 리우 패럴림픽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최광근 선수가 2016 리우 패럴림픽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국가대표를 꿈꾸기 시작할 때 한번, 패럴림픽 3연패 도전을 앞두고 한번….”

인생을 뒤흔든 위기의 순간을 회상하는 목소리는 차분했다. 인생의 고비를 두 번 겪었지만, “그것도 지금의 나를 만든 순간”이라고 덤덤히 말했다. 2020 도쿄패럴림픽 동메달리스트 최광근 선수의 이야기다. 그는 이제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인생 2막의 출발선에 선다.

최 선수는 한국 장애인 유도의 ‘간판’이다. 2012 런던 패럴림픽과 2016 리우 패럴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국가대표 11년 동안 목에 건 국제대회 금메달만 6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는 목표를 이뤘다. 마지막 메달은 금빛이 아니었지만, 그는 “국가대표의 모든 순간이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고2 훈련 중 부상…시각장애 판정을 받다

★톡 별톡 (별터뷰).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톡 별톡 (별터뷰).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최 선수는 원래는 ‘장애인’이라는 타이틀이 없는 유도 선수였다. 고교 2학년이었던 2004년 훈련 중 상대방의 손가락에 망막을 찔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다이어트를 위해 시작한 유도가 점점 좋아지고 성적도 올라 국가대표라는 꿈을 갖게 된 시점이었다. 부상 후에도 전국대회에 나가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는데, 나머지 한쪽 눈도 점차 시력을 잃어갔다.

부상을 당하기 전인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최광근 선수(맨 앞 왼쪽 두번째). 초등학교때 유도를 시작한 최 선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본격적으로 국가대표를 꿈꾸기 시작했다. 본인 제공

부상을 당하기 전인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최광근 선수(맨 앞 왼쪽 두번째). 초등학교때 유도를 시작한 최 선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본격적으로 국가대표를 꿈꾸기 시작했다. 본인 제공

망막을 다치고 수술을 해 다친 눈이 거의 실명 상태가 됐고, 계속 유도를 하다 합병증이 왔다.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걸 인정하지 못했고, 장애인 등록도 하지 않았다. 그러길 6년, 하지만 유도인으로서 국가대표의 꿈,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시합에 나가고 싶은 열정이 그를 결심하게 만들었다. 장애인 등록을 하고 패럴림픽 국가대표의 꿈을 꾸게 된 것이다.

부상 6년 만에 장애인 선수로 등록하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장애인 대회에 나오기 시작한 최 선수는 2018년까지 100㎏이하급 최정상 자리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2010년 광저우 장애인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2012년 런던 패럴림픽,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 2016 리우 패럴림픽 등 총 6개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돌이켜 보면 유도 선수로서 얻을 수 있는 영예를 모두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2010년부터 장애인 유도 선수 생활을 시작한 최광근 선수는 2012년 런던 패럴림픽에서 첫 패럴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본인 제공

2010년부터 장애인 유도 선수 생활을 시작한 최광근 선수는 2012년 런던 패럴림픽에서 첫 패럴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본인 제공

최광근 선수가 장애인 유도 국가대표로 패럴림픽과 장애인 아시안게임에 나가 획득한 금메달 4개와 은메달 2개. 왼쪽부터 순서대로 장애인 아시안게임 메달 3개, 패럴림픽 메달 3개. 본인 제공

최광근 선수가 장애인 유도 국가대표로 패럴림픽과 장애인 아시안게임에 나가 획득한 금메달 4개와 은메달 2개. 왼쪽부터 순서대로 장애인 아시안게임 메달 3개, 패럴림픽 메달 3개. 본인 제공

유럽과 남미 대륙에서 열린 패럴림픽에서 최정상 자리에 오른 최 선수는 2020 도쿄 패럴림픽에서 3연패를 꿈꿨다. 그러나, 다시 부상의 악몽이 찾아왔다.

2018년 자카르타 장애인 아시안게임 출전 막바지 훈련 중에 내측 인대와 전방십자인대가 끊어졌다. 주변의 만류에도 출전을 강행했고, 인대가 두 개 끊어진 상태로 결승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결승에서 후방십자인대까지 끊어지며 선수로선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그해 말 수술을 했지만, “선수로서 재기할 확률은 3% 미만”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2020 도쿄 패럴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이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최광근 선수는 2018 자카르타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 무릎 인대 3개가 파열됐다. 최 선수는 이 시기를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본인 제공

최광근 선수는 2018 자카르타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 무릎 인대 3개가 파열됐다. 최 선수는 이 시기를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본인 제공

재기 확률 3%를 100%로 만들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한다. 재기가 불가능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선수 생활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수술 이후 7개월 만에 국제 대회에 나갔다. 도쿄 패럴림픽 출전권을 따내야 한다는 일념 하나뿐이었다. ‘도쿄올림픽까지는 꼭 해야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부상으로 러닝 등이 불가능해 체급을 올려야 했다. 기존 100㎏ 이하급에서 무제한(100㎏ 이상급)으로 체급을 바꿨다. 100㎏였던 체중도 130㎏까지 증량했다. 운동 선수에겐 한 체급을 올리는 것은 큰 도전이다. 30㎏이 더 나가면서도 체력이 더 좋은 선수들과 겨뤄야 하기 때문이다.

패럴림픽 4강전에서 세계 랭킹 1위에게 지면서 패럴림픽 3연패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달 29일의 동메달 결정전에선 세계 8위 사스트레 페르난데스(쿠바·32) 선수를 이기고 동메달을 땄다. 체급을 키운 이후 두 번 만나 모두 졌던 선수를 상대로 경기 시작 1분 29초 만에 한판승을 만들어냈다. 최 선수는 “저에게 가장 값진 메달은 금색이 아닌 동색”이라고 말했다.

체급을 올려 경기에 나선 2020 도쿄 패럴림픽에서 최광근 선수(오른쪽에서 두번째)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본인 제공

체급을 올려 경기에 나선 2020 도쿄 패럴림픽에서 최광근 선수(오른쪽에서 두번째)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본인 제공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2010년부터 장애인 시합을 뛰기 시작해 국가대표만 11년 차다. 나라를 대표해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자긍심도 올라갔다. 훈련은 힘들지만, 행복했던 시절들이었다. 스스로 재능이 있는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열심히 하는 선수라고 생각했다. 선수로서 얻을 수 있는 영예를 모두 얻을 수 있어 좋았다.”
국가대표 11년 중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나.
“이번에 딴 동메달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번 메달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했던 선수’라는 모습을 완성해 줬다고 생각한다. 기대 이상의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어 행복하다.”
새로운 출발점에 섰는데.
“다음 달부터는 선수가 아니라 고향 정선군에 있는 공공스포츠클럽의 사무국장으로 일을 시작한다. 앞으로는 후배 양성과 장애인 체육 발전을 위해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
다음 목표가 궁금하다.
“내가 겪었던 경험과 경력을 토대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유도 선수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도움으로 한국의 유도 선수가 세계 무대에 닿는 것을 보면 행복할 거 같다. 그런 일에 이바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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