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후진하는 차 노렸다…1년에 60억 뜯은 배달 오토바이 수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요지경 보험사기]

2018~19년 대구 지역에서는 10대와 20대 사회초년생의 배달 오토바이 사고가 유난히 잦았다. 보험사에서 대구 지역에서 1년간 사고를 많이 내거나 당한 30명을 추려보니 이 중 28명이 배달 퀵서비스 종사자일 정도였다. 사고 건수가 가장 많았던 A씨는 1년간 16번, B씨는 12번 사고를 당했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사고를 당한 것이다.

배달 근로자가 오토바이에 올라 배달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배달 근로자가 오토바이에 올라 배달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의 잦은 사고를 의심한 보험사가 조사에 나섰고, 친구와 지인으로 엮인 보험사기로 확인됐다. 사기에 가담한 사람은 주로 10대와 20대로, 경찰 수사로 확인된 인원만 350여명이었다. 보험사의 피해 금액을 합치면 60억원이 넘었다. 2019년 대구 지역에서 벌어진 '배달 퀵서비스 대 보험사' 간 보험 범죄 전쟁은 이렇게 끝났다.

배달 퀵서비스 보험사기단은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골목길에서 후진하는 차량을 주로 노렸다. 골목길에서 마주친 다른 차량을 피하기 위해 후진하는 차량 뒤에 바짝 붙은 뒤, 차량이 살짝만 부딪쳐도 오토바이와 함께 넘어져 보험금을 타내는 수법을 주로 썼다. 좌회전 차량 등도 단골 범행대상이었다. 보험금을 더 타내기 위해 오토바이에 2명이 타는 일도 잦았다.

오토바이를 이용한 범행으로 돈을 모은 이들은 차량을 이용한 보험사기로 수법을 바꿨다. 오토바이는 동승자가 적어 한 번의 범행으로 뜯어낼 수 있는 돈이 적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오토바이로 보험사기를 몇 차례씩 저지른 뒤 외제차까지 사서 보험사기를 한 경우도 있었다"며 "차량은 동승자가 많다 보니 합의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걸 노렸다"고 말했다.

SNS에 게시된 보험사기 가담자 모집글.

SNS에 게시된 보험사기 가담자 모집글.

차량을 사용한 수법은 여타의 차량 보험사기와 유사했다. 렌터카 등에 3~4명의 동승자를 태운 뒤 좌회전 도중 차선을 변경하는 차량을 노려 고의로 들이받았다. 이후 한방병원 입원이나 통원치료를 통해 합의금을 뜯어냈다. 1인당 100만~200만원가량의 보험금을 받아 챙겼다.

차량 동승자는 페이스북 등 SNS 등을 통해 모았다. ‘간단한 거 하나하고 40개 벌어간다’ ‘깡 없는 놈들은 안 되고, 최소 150 만들어드린다’ 등의 글을 올려 참가자를 모집했다. 지인에게는 “한 달 전에 렌터카 통원치료로 인당 140개(만원)를 땡겼다. 오늘 할까 생각 중인데, 자동차라 하나도 아프지 않다” 등으로 보험사기 가담을 꼬드겼다.

이들의 보험사기는 비슷한 사고의 빈발을 수상하게 여긴 한 보험사의 보험사기특별조사팀(SIU)에 덜미가 잡혔다. SIU는 보험사기인지시스템(IFDS)을 이용해 사고 다발자와 동승자와의 관계 등을 분석해 사기 의심자를 추렸다. SIU는 이렇게 추린 이들을 대상으로 집중 분석에 들어갔다. 사고 관련자를 찾아 사고 당시 상황을 듣고, 당시 동영상을 찾아 사고 상황을 분석했다.

가장 수상한 정황은 사고 시간이었다. 배달 중 사고를 당했다고 했는데, 정작 사고가 몰린 시간은 배달이 뜸한 새벽이거나 오후 3~4시 사이였다. 배달통에 음식물 등이 담기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걸 확인했다.

연령대별 보험사기 적발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연령대별 보험사기 적발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또 다른 수상한 정황은 페이스북 등 SNS에서 찾아냈다. 사고 가해 운전자와 피해 운전자가 SNS상 지인인 경우가 많았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눠 보험사기를 치는 '가피 공모'가 의심 사례만 10건이 넘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같은 배달업체 등에서 일하는 등 친분이 있는 이들이 다수였다"며 "10~20대 배달 라이더들이 사기 수법을 공유하며 덩치를 불렸다"고 말했다.

이렇게 추린 정보를 토대로 SIU는 지인별로 12개 보험사기 그룹으로 묶어냈다. 이후 경찰·금융당국과 공조를 통해 2019년 한 해에 350여명에 달하는 보험사기 조직을 적발했다. 단순 가담자까지 포함하면 700~800여 명이 넘었다. 해당 사건을 조사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적발된 10대와 20대 중 가담횟수가 많은 경우에는 1심에서 징역 3년 이상의 실형도 받았다"고 말했다.

해당 사건은 지난해 금감원이 연 '보험사기 방지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금감원장상)을 받았다. 금감원은 “배달서비스와 라이더 등의 급증과 같은 사회적 변화와 함께 나타나는 신종 범죄에 대한 신속하고 창의적인 대응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