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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뷰 집 바라니 코인 몰빵…친구 물렸을 때가 절호 기회” [MZ버스 엿보기]

중앙일보

입력

MZ세대 10명 중 6명 이상이 "부모보다 더 부자가 되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사진 픽사베이

MZ세대 10명 중 6명 이상이 "부모보다 더 부자가 되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사진 픽사베이

은행원 H씨(33)는 올 초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고 한다. 26주짜리 카카오뱅크 적금에 가입해 만원 단위로 입금을 했더니 만기 때 이자가 7만원이 조금 넘었다. 모을 땐 뿌듯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꾸역꾸역 모아봤자 뭐할까…”라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모으는 습관’으로 끝날 것 같았다고 한다. 그가 암호화폐 투자에 뛰어든 이유다. 8000만원을 투자한 H씨의 목표는 “코인으로 집 사자”이다. 주변 친구들도 “집 살 때까지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의미의 비속어)’”를 외친다. H씨는 “은행에서 고객에게 예금·적금을 설명할 때마다 자괴감을 느끼고, 미안한 생각도 든다”고 했다.

MZ세대(9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2000년대생 Z세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 중 하나는 ‘코인 광풍’이다. 이는 사회 현상이자 현실이 됐다. 올해 1분기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에 새로 가입한 2030세대는 158만명. 전체 신규 가입자(약 250만명)의 63%다. 대학이나 직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코인 시세를 들여다보는 MZ세대의 모습이 익숙해졌다.

MZ세대들의 세계(유니버스), ‘MZ버스’는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 중앙일보가 MZ버스에서 작동하는 알듯 모를듯한 경제관, 가치관 등을 들여다봤다. 1990년대생 시선에서 한국 사회를 진단한 책 『K-를 생각한다』의 임명묵(26) 작가는 “한낱 작은 노동소득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자본소득 상승분을 절대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한 90년대생들은 암호화폐 등 한탕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실에서 ‘몰빵(집중투자)’이나 ‘플렉스(부를 뽐내고 과시하기 위한 소비)’를 경험하는 건 극히 소수일 것이다. 다만, 한탕주의라는 ‘신화’가 유통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투자가 ‘좌절’을 ‘안도’로 바꾼다

MZ세대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MZ세대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중앙일보 취재팀은 MZ버스를 엿보기 위해 만 20~39세 251명을 대상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설문과 카카오톡 오픈 채팅을 진행했다. 실제로 ‘코인 광풍’을 실감하며 참여하고 있는지 물어봤다.

“코인과 주식에 ‘몰빵’해서 ‘플렉스’하고 있나”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그런데, 응답자 73.6%(184명)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오픈 채팅방에서는 ‘한탕’의 기대보다는 ‘좌절’과 ‘안도’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오갔다. ‘MZ세대 오해 여기서 풀자’라는 오픈 채팅방에서 오간 대화의 일부다.

[익명으로함] “‘코인은 도박이라 망한다’는 주변 우려에도 ‘내가 무엇이라도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들게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마저 안 하면 거지 되는 거니까.”
[빈털터리] “투자하는 사람 절대 수는 늘었지만, 모두가 몰빵하고 있진 않아요. 대부분 뭐라도 해야겠다는 안도감을 위한 목적이 더 클 거 같아요.”
[짠해] “부모님 때랑 비교하면 삶의 질은 더 높아요. 하지만 부동산을 생각하면 기성세대들이 꽉 잡고 있고…. 아무리 돈 벌어서 모아도 집은 갖지 못할 거 같아요.”

부모 세대보다 부자 될 수 없어 

일부 MZ세대는 '한강 뷰'를 꿈꾸기에 코인에 투자를 한다고 했다. 사진 픽사베이

일부 MZ세대는 '한강 뷰'를 꿈꾸기에 코인에 투자를 한다고 했다. 사진 픽사베이

채팅방에서는 “근로소득만으로는 부를 축적하기 어렵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말이 나왔다. MZ세대가 ‘벼락 거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빚투(빚내서 투자)’와 같은 신조어를 계속 만들어내는 이유일 것이다. “‘한강 뷰(아파트)’를 꿈꾸기에 코인·주식 등에 ‘몰빵’한다”는 것이다.

“부모 세대보다 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63.8%(160명)가 동의했다. 그들의 전망은 부정적이었다. “과거보다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세대임이 분명하다” “윗세대보다 훨씬 많은 것을 누렸지만, 자립하기에는 가장 힘든 세대다”는 응답이 나왔다. 더 부자가 되겠다는 희망으로 이 악물고 버틴 부모 세대의 자식들은 “부모보다 더 가난할 것”이라 체념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MZ세대는 ‘떡상’ 머니 게임 중

지난 8월 한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친구매매법'.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지난 8월 한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친구매매법'.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MZ버스에선 비관과 낙관이 급격히 교차한다. 취재팀과 만난 30대 프리랜서 L씨는 암호화폐 투자의 매력을 “단숨에 ‘떡상(급격한 상승)’하는 것”이라고 했다. “5000만원을 (코인에) 넣었는데 떡상으로 50억원을 벌었고, 그걸 팔아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샀는데 그 아파트 가격마저 크게 뛰었다”는 주변의 신화가 내것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월급은 투자를 위한 ‘시드 머니(종잣돈)’일 뿐이다. 암호화폐든, 주식이든 그 투자가 이 시대를 살아갈 돌파구라고 믿고 있다. L씨는 “예전엔 30대가 경기도에라도 집을 샀지만, 지금은 수억 원 빚을 져도 어렵다. 투자를 안 할 수 없는 사회가 됐다”고 했다.

투자에 익숙해지다보니 MZ버스엔 투자 은어도 속출한다. ‘친구 매매’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친구가 ‘(투자금을) 물렸다’고 하소연할 때가 투자할 절호의 기회”라는 의미다. ‘망치 매매’라는 말은 “일단 주식이나 암호화폐를 사면 망치로 맞았다 생각하고 잊으라”는 뜻이라고 한다. 어차피 투자에 쏟아부은 돈은 ‘그 세계에서 놀리는 돈’으로 여긴다는 얘기다. 아슬아슬한 ‘머니 게임’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이들의 생존 방식을 한마디로 평가하기는 불가능하다. 임 작가는 “최근 암호화폐·주식 외에도 별다른 노동 없이 사다리를 비정상적인 속도로 빠르게 이동하는 내용을 담은 콘텐트가 인기”라며 “신화를 달성하거나 시도하려는 이들은 다수가 아니겠지만, 사회 현상의 스펙트럼으로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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