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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못받고 백신전쟁 치를때…정부 '접종률 70%' 자화자찬[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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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17일 오전 충북 청주시 흥덕구 하나병원을 방문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연합뉴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17일 오전 충북 청주시 흥덕구 하나병원을 방문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연합뉴스

전문기자의 촉: 접종률 70% 달성의 이면 

경남 창원시 희연병원은 오후 3시만 되면 전쟁에 돌입한다. 코로나19 백신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맞히기 위해 화이자가 남으면 모더나 접종 예약자에게 "혹시 화이자로 바꿔 맞을 수 있을까요"라고 사정한다. 화이자나 모더나 접종 예약자가 1명 남으면 새 병을 따지 않는다. 대신 보건소에 연락해 잔여 백신이 있는 인근 의료기관을 수배한다. 환자에게 사정을 설명해서 그 병원으로 보내 맞힌다. 보건소도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인데 조정자 역할을 수행한다. 이렇게 해서 이 병원은 이달 들어 '폐기 백신 0'에 가까워졌다.

 부산 동래구 늘다봄의원은 4월 23일 코로나19 백신 접종 시작 후 주말, 대체공휴일에 문을 닫은 적이 없다. 일요일에는 밀린 다른 환자를 진료한다. 추석 연휴 기간 중 18일, 22일에도 문을 연다. 18일에는 90명 접종에 잔여 백신 4명분, 22일 82명 접종에 잔여 백신 9명분을 맞힌다. 행여 오접종 사고라도 날까 봐 원장이 직접 주사한다. 희석 같은 사전작업, 잔여 백신 조정, 예약일정 맞추기 등을 위해 간호사 2명을 채용했다.

 하루에 수십통의 전화 민원이 들어온다. 절반은 "화이자냐, 모더나냐"를 묻는 전화다. "뉴스를 보니 위험한 거 같은데 맞아도 되냐"며 망설이는 사람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 이 병원 원장은 "코로나19로 인해 환자가 반 토막 났는데 백신 접종을 시작하니 일반 환자가 더 줄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그냥 돌아간다"며 "그래도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까"라고 말한다.

 서울 강남구 하나이비인후과병원은 하루에 평균 100~300명을 접종한다. 예약자 중 노쇼가 생기지 않게 일일이 확인한다. 잔여 백신을 잡은 사람에게 문자 안내만 하는 게 아니라 미리 전화한다. 간단하게 문진하고 도착시각을 명확하게 한다. 잔여 백신 예비 명단도 자세하게 만든다. 이 병원 김명숙 백신팀장은 "정말로 버리는 약이 거의 없게 꼼꼼하게 관리한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은 17일 오후 5시 30분 보도참고자료와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1차 접종자 3600만명 돌파, 인구의 70% 접종을 알렸다. 미국·일본·독일보다 높다는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접종 시작 204만에 이룬 쾌거임이 틀림없다. 질병청은 20초, 40초짜리 두 개의 홍보 영상을 배포했다. 질병청은 지난 4월 29일 오후 5시 15분에도 300만명 접종 돌파를 자랑했다.

 이번 70% 달성에는 의료인의 헌신, 국민의 참여가 바탕이 됐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17일 충북 청주시 하나병원 접종현장을 방문했다. 접종하러 온 시민 서영미(56)씨는 "접종이 체계적으로 잘 되어 있다. 지체하지 않고 금방금방 접종이 착착 진행된다"고 말했다. 민지선(43)씨는 "뉴스를 통해 부작용 소식을 접하고 있어 좀 불안하기는 하다. 일단은 국가 목표가 집단면역이고, 국민이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신 접종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씨의 말에서 보듯 한국인은 공동체를 위해서라도 기꺼이 접종에 나선다. 미국·유럽처럼 조직적인 백신 접종 거부 운동도 없다. 정파에 따른 접종 거부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17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인구 34만명의 아이슬란드를 제외하고 최단기간 70% 접종 기록"이라며 "속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한민국의 저력을 백신 접종에서도 여지없이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특유의 자화자찬을 빠뜨리지 않았고 백신 도입이 늦은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우수한 접종 인프라,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 국민의 높은 참여 의식이 함께한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게다가 아쉬운 점은 낮은 2차 접종률(42.6%)이다. OECD 하위권이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접종 완료율이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1차 접종률이 선진국을 추월했다지만 1차 접종률 70%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이게 80%가 돼도 위중증률·치명률·발생률이 줄지 않으면 위드 코로나(With corona)로 갈 수 없다. 2차 접종률이 올라가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정 교수는 "2차 물량을 당겨서 1차에 맞히다 보니 1,2차 접종률에 27%의 괴리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질병청은 1차 접종률이 미국·일본·독일보다 높다고 내세운다. 하지만 미국은 1,2차 접종률 차이가 9.2%, 일본은 12.3%, 독일은 4.2%(블룸버그 집계)에 불과하다. 1차 접종률이 우리보다 약간 낮지만 2차 접종률이 우리보다 훨씬 높다. '빛의 속도 70% 달성' 자랑이 마냥 개운치 않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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