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환 曰] 거꾸로 가는 민주주의

중앙선데이

입력 2021.09.18 00:28

지면보기

754호 30면

한경환 총괄 에디터

한경환 총괄 에디터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요즘 대선전을 관전하노라면 우리나라가 과연 민주주의 국가가 맞느냐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난투극이 너무나 혼탁해서 정치에 대한 염증을 폭발시키고도 남을 정도다. 흔히들 ‘대권(大權)’이라고 말하듯이 한국에선 대통령을 황제쯤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실제로 ‘제왕적 대통령’ 운운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은 정말 막강하기도 하다. 그러니 캠프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방불케 하는 죽기살기식으로 이전투구를 벌이는 것 아니겠는가.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혹은 ‘전부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냐(all or nothing)’식의 목숨 건 전쟁이 민주주의의 본질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같은 당의 캠프 내에서조차 후보들 간에 인정사정 볼 것 없는 무지막지한 전투가 허구한 날 벌어진다. 이건 국민의 대표를 뽑는 민주주의적 선거가 아니라 그들만의 권력잔치를 위한 게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대선전
과연 누구를 위한 권력 게임인가

최근 들어 한국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빈도와 강도가 더 높아지고 있다. 아직은 확실한 대안이 없어서 명맥을 유지할 뿐이지 민주주의는 언젠가는 끝날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는 예측도 있다.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입법부, 독립적인 사법부, 자유로운 언론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지금의 한국에서처럼 이런 핵심 시스템들이 겉으론 번지르르하게 유지되지만 실제론 오작동할 수 있다. 껍데기만 남은 채 민주주의 제도의 본질이 붕괴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70여 년밖에 되지 않는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격동의 시절들을 보내 왔다. 입만 열면 민주화 운동을 내세웠던 현 정권의 실세들도 독재시대의 유산을 보고 배웠는지 하나도 나을 바가 없어 보인다. 정권을 잡으면 안하무인이 되는 전통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능력보다는 줄 서기를 중시해 우리 편 챙기기에 급급하다. 캠프 사람들은 저마다 한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기를 쓴다. 권력이 막강하다 보니 일자리 전리품인들 얼마나 달콤하랴. 생계형 정치인들은 넘쳐 난다. 곳곳에 ‘낙하산 인사’를 투하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공영방송을 정권의 시녀로 삼고 국정원, 검찰 같은 권력기관들은 국가가 아닌 자신들을 위한 봉사기관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미풍양속’도 건재하다. 간혹 말을 듣지 않는 경우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은밀히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내쫓는다. 한때 같은 편인 줄 알고 자리를 줬다가 입바른 소리라도 하면 가차 없이 내친다.

관치 금융과 지나친 시장 개입으로 민간의 자율적 기능은 크게 약화했다. 부동산 정책이라는 미명 아래 분양가, 세금에서 대출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과도한 규제를 한다. 마치 사회주의 국가에 사는 느낌이 들 정도다.

국회의 다수 여당은 어떤가. 공론의 절차를 무시하고 힘으로 완력을 행사한다. 임대차법을 강행으로 전·월세 서민들의 복장이 터져도 ‘나 몰라라’ 한다. 이젠 언론에 아예 재갈을 물리려고 한다.

지금 대선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상을 보면 새로 선출되는 대통령도 이런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무척 커 보인다. 그럴 경우 누가 이기더라도 한국 민주주의는 큰 상처를 입고 말 것이다. 대한민국은 권력자들만의 소유물이 될 수는 없다. 그런 사회는 바로 독재체제를 의미한다. 본말이 전도돼도 유분수지 이건 한참 빗나간 탈선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한 헌법 제1조가 무색해진다. 후보와 캠프, 권력자들이 스스로 자제하지 못한다면 유권자들이 심판할 수밖에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