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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만큼 작거나 고질라처럼 큰 포유동물 없는 까닭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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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4호 15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자연에서 삽화

자연에서 삽화

현재 지구 생태계는 포유동물이 주름잡고 있다. 번성하는 생명체답게 사는 곳도 크기도 다양하다. 다들 환경에 적응해 자기 영역을 개척한 덕분이다.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있다. 이 다양한 포유동물을 아무리 봐도 개미만큼 작거나 고질라만큼 큰 덩치가 없다. 가장 작다고 할 수 있는 ‘땃쥐’는 몸길이가 4cm쯤 되고, 가장 큰 ‘대왕고래’는 몸길이 30m에 체중 200t을 넘나드는데 이 정도가 최저 크기와 최대 크기다. 고질라야 영화에 등장하니 그렇다 쳐도 왜 개미만 한 포유동물은 없을까? 더 진화하면 가능할까? 아니면 이미 한계가 다다른 걸까?

미국의 유명한 이론물리학자 제프리 웨스트도 이게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는 생태학자 제임스 브라운, 브라이언 엔퀴스트와 함께 연구한 끝에 포유동물이 이미 최소 크기와 최대 크기 근처에 다다랐다는 걸 알아냈다. 알고 보니 ‘아주 사소한 이유’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앞에 말한 땃쥐와 대왕고래는 덩치 차이가 엄청나지만 흥미롭게도 세포의 크기는 거의 같다.

덩치가 크면 세포도 당연히 클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세포 숫자가 많아진다. 이러니 세포에 에너지를 전달하는 모세혈관의 크기도 거의 같다. 서울과 지방의 작은 도시는 규모에선 비교할 수도 없지만 각 가정에 들어가는 수도관의 크기가 같은 것과 동일한 원리다. 그래서 대왕고래의 대동맥 지름은 30㎝나 되고 땃쥐는 거의 보이지도 않는 0.1㎜ 정도이지만 모세혈관의 크기(0.005~0.008㎜)는 비슷하다. 다른 포유류도 마찬가지다.

뭐 그럴 수 있겠다 싶은데, 이것이 포유류의 크기 범위를 정한다. 덩치가 커지면 늘어나는 세포 수에 따라 에너지 공급망인 모세혈관도 어떤 식으로든 변화해야 하지만 기업의 공급망이 그렇듯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장은 물론 온몸의 구조와 연동돼 있어서다. 이런 구조 변화 없이 덩치를 키우면 에너지 공급이 부족해져 저산소증이 생긴다.

개미만 한 크기를 볼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포유동물은 신기하게도 덩치에 상관없이 혈압이 같다. 땃쥐의 심장은 12g 정도이고, 대왕고래의 심장은 1t이나 되지만 동일한 압력과 속도로 혈액을 뿜어낸다. 그래서 덩치가 작으면 심장이 받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땃쥐의 심장이 1분에 1000번이나 뛰고 수명이 한두 해 밖에 안 되는 이유다. 이 또한 모세혈관의 크기가 고정되어 있어서다. 별 볼 일 없을 것 같은 말단 조직이 생존의 핵심인 덩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 고질라

영화 속 고질라

생존의 원리는 같은 걸까? 요즘 잘 나가는 기업에서도 이런 걸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세 살 꼬마가 엄마와 함께 베스트바이 매장에 들어섰다. 베스트바이는 미국의 최대 유통업체 중 하나인데 이곳에서 산 공룡 장난감이 고장 나 교환하러 왔던 것이다. 엄마의 얘기를 들은 두 직원은 여느 곳처럼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진열대에서 새로운 장난감을 가져오면 바꿔주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꼬마 고객에게 자신들이 마치 의사인 것처럼 하며 고장 난 공룡을 ‘수술’ 하겠다고 카운터 뒤로 가져갔다. 그런 다음 슬쩍 새것으로 교체한 후 “다 나았다”며 ‘살아난’ 공룡을 꼬마 고객에게 건네주었다. 꼬마의 기분이 어땠을까?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마 이런 게 진정한 고객만족일 텐데, 모든 기업이 바라 마지않는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직원들이 착했던 것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사실은 회사의 현장 우선 정책 덕분이었다. 일선에서 뛰는 현장 직원을 중심으로 업무가 돌아가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최근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이 일화를 소개한 이 회사의 전 회장 겸 CEO 위베르 졸리도 “아픈 공룡을 처리하는 절차나 지시 같은 건 없었다”고 했다. 직원들 스스로 했다는 것이다.

요즘 세계적인 기업들은 고객과 직접 만나는 일선 직원을 갈수록 중시하고 있다. 능력 있는 직원을 일선에 배치시키고 재량껏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고객만족의 주인공이자 빠르게 변하는 환경을 현장에서 관찰, 시장에서 멀리 떨어진 경영진에게 전달하는 당사자인 까닭이다. 이들에게 말단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서열의 최하위가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최전선의 촉수다. ‘가장 밑’이라고 여기는 우리의 수직적인 사고방식과는 너무나 다르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성 환경에서는 민첩성이 최우선이고, 이런 민첩성은 말단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서 결정된다. 무조건 잘하라고 하기보다 대하는 방식과 역할을 바꿔야 한다. 피를 뿜어내는 심장은 에너지의 대부분을 아주 가느다란 모세혈관에 피를 밀어 넣는데 쓴다. 이곳이 원활하게 기능해야 우리 몸이 살기 때문이다. 인체역학적 원리를 바꿔 말하면 인간적인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이 알아야 할 중요한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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