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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주가 CB 콜옵션 행사로 대규모 평가 차익, 배임으로 처벌 받을 수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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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4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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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공시의 세계

Y제약사는 지난해 4월 100억원어치의 5년 만기 전환사채(CB)를 발행했습니다. 인수자(투자자)는 신기술투자조합이었습니다. CB는 발행회사 주가가 오르면 투자자가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신주 발행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붙은 회사채입니다. Y제약 주가가 전환가격(1만1700원)보다 높아지면 투자자는 원금을 주당 1만1700원에 주식으로 바꿔 차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CB의 발행조건에는 콜옵션(매도청구권)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회사 측이 투자자로부터 발행금액의 30%(30억)에 해당하는 CB를 되살 수 있는 약정이었습니다. 콜옵션 권리 행사자는 ‘회사 또는 회사가 지정하는 제3자’였습니다. CB 발행 이후 올해 3월 Y제약이 무상증자를 하면서 전환가격은 6040원으로 조정됐습니다. 무상증자로 발행주식 수가 증가하면 무상증자 비율만큼 주가를 인위적으로 낮춘 다음 거래합니다. 그래서 CB 전환가격도 하향조정합니다.

7월 말 주가가 9790원에 이르자 회사 측은 이사회를 열었습니다. 콜옵션 행사자를 회사가 아닌 대표이사 A씨로 지정했습니다. 최대주주인 A대표는 투자조합으로부터 CB를 되사들여 주식으로 전환했습니다. 그가 얻은 주식전환 평가차익은 14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무엇보다 A대표는 이를 통해 지분율을 11.9%에서 13.8%로, 2%포인트 가까이 끌어올렸습니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전환가격보다 주가가 훨씬 높기 때문에 콜옵션을 행사하면 이득을 얻을 것이 뻔합니다. 그런데 이사회는 회사가 아닌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를 권리자로 지정했습니다. 회사가 콜옵션을 행사했다면 주식전환에 따른 차익을 얻을 수 있고, CB를 비싼 가격으로 재매각해 차익을 획득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사회의 결정은 법률적으로 ‘배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3자(대표이사)가 얻는 이익만큼의 손해를 회사에 입힌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죠.

문제는 최근 기업들이 발행한 CB의 대다수가 이런 식으로 발행됐고, 콜옵션이 행사돼 왔다는 겁니다. 코스닥 기업 E사는 2019년 10월 한 자산운용사를 상대로 100억원어치의 CB를 발행했습니다. 이 가운데 40%(40억원)에 대해 콜옵션을 걸었습니다. 주가가 전환가격(5917원)을 넘어 1만8000원대까지 오르자 이사회는 대주주이자 대표이사인 L씨 및 그의 가족을 콜옵션 권리자로 지정했습니다. 대표 일가가 콜옵션 행사로 얻은 차익만 40억원이 넘습니다.

CB는 기본적으로 회사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발행합니다. 콜옵션을 넣고 대주주를 권리자로 지정하는 이유는 주식 전환차익 때문이라기보다는 지배력 유지 즉, 지분율 희석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큽니다. 콜옵션 비율을 60% 이상으로 정하는 등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붙어 있는 신주인수권을 대주주가 투자자로부터 매입했습니다. 그런데 2013년 이러한 신주인수권 분리거래형 사모BW 발행이 금지되자 그 대안으로 콜옵션 CB가 급부상하게 된 것입니다. 어쨌든 CB 콜옵션 행사가 자칫 배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기업과 투자자들은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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